모두가 금쪽같은 존재들
저출생이 아닌 무출생에 가까워지는 요즘,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금쪽이가 아닌 비트코인 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쿠바의 남쪽도시 산티아코 데 쿠바의 광장에서도 금쪽이들은 염소가 끄는 마차를 즐기고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 일부 기업들은 금전적 혜택과 동시 각종 지원책을 내놓으며 출산을 독려한다. 그렇지만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 인터넷에 본 댓글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정리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에는 먹을 것이 없고, 서울에는 둥지가 없다]
먹을 것이 없는 새가 어찌 둥지를 틀 수 있는가. 둥지가 없는 새가 어찌 알을 낳겠는가.
행여 알만 낳으면 되는 것인가. 그들의 아기새도 똑같이 먹을 것을 찾는 것과 둥지 만들기가 힘들 것을 알기에 두려운 것이 본질이 아닐까.
두어해 전 캠핑장에서 위험하게 노는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말을 했는데 귀한 자기 새끼한테 소리를 질렀다고 열흘굶은 티라노사우러스 마냥 덤비는 여자가 있었다. 그렇게 금쪽같은 애의 귀에 들리게 상스러운 욕도 서슴지 않았다. 대단한 모정이고 훌륭한 조기교육이 아닐 수 없다. 시시덕거리며 술을 마시던 아비란 자는 뒤늦게 상황도 모른 채 웃통부터 벗어 젖혔다. 대단한 부정이다. 평소 UFC 티셔츠를 즐겨 입었는데 그날은 다소곳한 피케 티셔츠를 입은 것을 순간 살짝 후회를 하기도 했었다.
그 현란한 욕지거리를 듣고 있자니 든 생각이 있었다.
요즘처럼 출생률이 낮은 시점에 태어난 아이들은 당연히 귀하다. 그렇지만 희소성으로 인한 귀함은 절대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라고 덜 귀하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모든 편의점의 알바들, 식당의 이모님들, 택배 기사님들, 배달원 분들, 물류센터에서 땀을 빼는 청춘들, 엄마랑 종일 고스톱을 즐기시는 마을회관의 동네 할머니들 그리고 나도 모두 빠짐없이 누군가의 금쪽같은 새끼들이다. 넷째인 나도 할머니로부터 숱하게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말을 정수리뽀뽀와 함께 들으며 자랐다.
모두 금쪽같은 존재들인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그런 자들이 많다. 자기 새끼만 금쪽이고 나머진 돌멩이만도 못하게 본다.
그 사건이 있던 밤 선배에게 한탄스러운 하소연을 하다가 이 한마디를 하지 못한 것을 꽤나 분해했다.
"우리 엄마한테 이른다. 우리 엄마 칠십 살도 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