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조선인 하멜
2010년에 자전거로 노르웨이를 거쳐 스웨덴의 스톡홀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내려오는 경로가 애매해서 폴란드로 오는 페리를 탔었다. 사실 경로의 문제보다는 살인적인 북유럽의 물가 탓인 이유가 컸다.
스톡홀름과 폴란드 북부의 그단스크를 오가는 폴란드 국적의 페리를 타고나서야 고뮬가의 지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북유럽에서는 비싸서 맘껏 마시지못했던 맥주부터 마실 요량으로 면세가 되는 매점에서 500ml 캔맥주 2개를 계산하려고 들고 서 있는데내 뒤에 서 있던 폴란드 현지인이 그 유럽 맥주 네 캔 값이면 폴란드 맥주 24 캔들이 한 박스 살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 유혹을 이기지못하고 사람들과 나눠먹음 되지라고 되뇌이며 한 박스를 덥썩 사버렸었다. 일반적인 맥주는 알콜 도수가 4도 언저리인데 폴란드맥주는 맥주임에도 10도가 넘는 효도르 마냥 센 녀석들이었다.
스톡홀름에서 해질 무렵 출발해서 아침에 그단스크에 내리는 일정이라 늦은 오후에 승선하자마자 배의 갑판에서 크루즈를 탄듯 여유롭게 저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였다. 내가 맥주를 내어놓자 저들은 보드카를 보탰고, 배에서 눈에 띄는 유일한 동양인이라 그랬는지 지나는 이들마다 악수와 건배를 하고 지났는데 부산한 소리에 깨 눈 떠보니 객실도 아닌 복도 구석 어디쯤에 웅크린 아침이었다.
배에서 내려 숙취로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가 햄버거가게가 눈에 보여서 인터넷으로 생존신고도 할 겸 들어갔었다. *당시는 로밍도 잘 안되고 햄버거가게가 좋은 무료 인터넷 이용처가 되었다.
햄버거 가게에는 꼬마 단체 손님들이 있었는데 동양인을 처음 보는지 힐끗힐끗 내 눈치를 살피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잔뜩 산발한 머리에, 면도도 하지 않은 숙취에 찌든 동양인 아저씨는 마치 그들 눈에는 몽골의 타타르족처럼 무섭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래의 사진에 아이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앞에 녀석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도저히 참기 힘들어서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는데 더 긴장을 한다. 그래서 애들이 좋아할 만한 만국 공통 "메롱"을 날려주니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뀐다.
경계심이 풀어진 탓일까, 이후로 제일 장난스럽게 생긴 저 녀석을 선두로 나를 빙빙 돌며 구경하고, 머리카락도 만지고, 수염도 쓱 쓰다듬고, 턱을 괴고 앞에서 한참을 구경했다. 구경을 하러 유럽에 온 내가 일방적으로 구경을 당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글자 그대로 역관광을 당한것이다.
조선시대에 서양에서 표류한 하멜이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깔깔거리며 나를 구경하던 녀석들에게 코리아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7-8살쯤으로 보이던 녀석들이니 지금은 24~25살쯤 되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고딩 때 K-POP을 들으며 자랐을 것이 분명하니 코리안이라고 안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우리나라보다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 나라들을 여행할 때면 왠지 모르게 느꼈던 불편함의 이유가 이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경당하는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느꼈던 듯하다. 나는 그저 호기심에서 그들의 내밀한 것들을 보고 싶어 한 것인데, 그저 일방적인 내 욕심이었나 하는 생각이다.
역시나 역지사지, 역관광을 당해봐야 무언가를 깨닫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