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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Sep 08. 2022

처음 만난 그녀는 햇살같았다.

2화, 호감의 씨앗이 심겼다.

여름과 가을 그 어디 즈음, 퇴근 길 저녁 하늘은 가을이지만, 피부에 닿는 공기는 여전히 여름인 그런 날들의 연속. 무기력하고, 갈 곳 없는 마음만 이리저리 방황하는 그런 날들의 연속. 어느덧 약속한 프로그램 참여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날 마침 약속이 있어 프로그램이 진행될 건물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늦은 밤에도 불켜진 곳을 보며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드디어 프로그램 당일. 퇴근 후에도 생각보다 남은 시간은 길었다. 혼자 저녁도 먹고, 거리를 한동안 걸어도 시작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 생각만 참 많았다.


이 프로그램이 내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미술과 우울 두 가지 전부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고, 온전히 동료의 추천에 응답하기 위해 신청한 프로그램이었기에. 괜히 시간 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있었다. 또 미혼만 참여 가능하다고 했는데. '내가 괜히 다른 분들을 방해하고, 조사 표본을 흐리는 건 아닐까' 라는 고민도 있었다. 괜찮다고 하니 방문하지만, 여차하면 프로그램 신청을 취소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아무리 걸으며 생각을 정리해도 도무지 시간이 흐르지를 않아서, 먼저 가서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프로그램 진행 장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처음 그녀를 만났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보고 생각했다.



정말 밝은 사람이네,
되게 이쁘다.



환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너무 밝아서 그 밝음에 어색했던 나도 조금이나마 웃게 만들어주는. 애써 무시하려 노력했지만, 내 마음 안에는 첫 만남에서 햇살같고 이뻤던 그녀의 모습이 남아버렸다. 분명 남았다.


하지만 그녀를 만났을 때의 나는 이혼한지 얼마 안 된 상태. 내 마음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냥, 너무 밝은 햇살같고 이쁜 분. 그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단 한 번도 마음에 드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거나 연락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단순한 일정을 조율하는 연락이 기다려지는 것조차 낯설었다.


어디서나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호감을 가지자 오히려 더 그녀에게 말걸지 못했다.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얼굴이라도 더 보고싶었던 내 마음과 달리 그녀는 2회부터 프로그램에 나타나지 않았고, 마무리되는 시점에야 간간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일정 때문에라도 가끔 문자를 나누기는 했지만, 나오지 않는 이유를 먼저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녀에게 연락할 이유를 찾아 맛집을 소개하는 척 안부를 묻기도 했고, 언제일지 기약없는 만남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그마저도 자주하지는 못했지만 내 나름 최선의 노력이었다.








그렇게 약 8주간의 프로그램이 마무리되고, 그녀를 평생 못볼 수도 있는 이별이 찾아왔다. 아쉽지만 헤어져야했다. 내게는 그녀에게 다음을 기약할 여유도, 마음도, 명분도, 용기도 없었다. 누구나 으레 할 수 있는 '다음에 기회되면'이라는 기약 없는 여지를 두고 그녀와 헤어졌다.


함께한 횟수는 적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을 때의 모습들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진행팀에 와인을 선물했을 때,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와인을 들고 사진을 찍었었다. 또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그날은 너무 긴장했는지 유독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멀뚱히 앉아있기만 했다. 술을 좋아하고 꽤 잘 마시는 편이었는데도.


프로그램이 끝난 때는 완연한 가을이었다. 셔츠 속을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 말고, 일상에서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조금 다른 생각들이 피어날 때가 많았다.


때때로 우울해하다가 때때로 그녀의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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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매거진 '한 번 이혼한 남자의 첫사랑'에 연재하는 글의 2화입니다. 글을 쓰게 된 이유와 앞으로 써내려갈 글의 주제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프롤로그를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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