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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Sep 20. 2022

아주 작은 우연의 일치로 우리는 다시 만났다.

3화, 가을의 기다림, 겨울의 설레임

프로그램이 끝난 시간은 속절없이도 흘렀다. 이제 두터운 자켓을 입어야 하는 가을의 끝자락, 그녀의 소식은 휴대폰 너머로만 가끔 알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 속 그녀는 치앙마이에 있었다. 푸릇푸릇하고 이국적 풍경이 가득한 곳에서, 여전히 밝고 활기찬 느낌의 글로 소식을 알렸다. 그녀는 독립출판을 준비하며 여행 겸 퇴고를 위해 한 달 살기를 떠났다고 했다.


사실 내가 그녀에게 호감이 있을 뿐,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는 치앙마이, 나는 서울. 물리적으로도 멀고 서로 아는 것도 없었다. 확실한 건 내가 그녀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뿐. 어쩌면 이대로 멀어질 수도 있었다.



갑작스럽지만... 행사 연락이 와서요~
같이 가고 싶지만 치앙마이에 있는터라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연락이 왔다. 그녀가 먼저 연락해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지인이 진행하는 행사가 마침내 업무 분야와 비슷했고, 예전에 내가 실수로 이야기한 직장과 업무를 떠올린 그녀는, 내게 행사를 알려주려고 연락한 것이다.


실수가 이렇게 이어질 수도 있구나, 나를 떠올려주고 연락해 준 것에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행사보다도 그녀의 두 번째 문장이었다. '같이 가고 싶지만' 그녀에게 숨은 뜻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왜인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사실 나는 이미 그 행사에 초대받은 상태였고, 주변 지인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정말 작은 우연의 일치였다.


그녀의 지인이 마침 행사를 했고, 그녀가 내게 알려줬고, 나는 마침 그 행사에 참여할 계획이었던 것. 어떻게 보면 별 볼 일 없는 우연의 우연일 뿐인데. 그 우연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 우연이 인연이 되면 좋겠다는 기대감. 그런 기대감이 내 마음 안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날씨는 겨울에 가까워졌다. 옷은 더 이상 두터울 수 없을 정도였고, 회사에서의 업무도 한 해의 사업을 마무리하느라 더 이상 바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잠시 여유가 생길 때면 그녀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럴 때면 나와 그녀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눴던 메시지를 다시 열어보기도 하고,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보기도 했다.


그녀는 엄청 바빠 보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행을 다녔고, 막바지 독립출판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 인생에 결과물이 무언지 종종 고민하던 나에게, 매번 그녀가 만드는 결과물은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그 당시 나는 그녀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 외에 사람으로서도 동경했었다.


치앙마이에서 책 집필을 마무리한 그녀는, 출판을 위한 텀블벅 펀딩을 진행했다. 당연히 나도 그녀의 프로젝트를 후원하며 응원했다. 혹시라도 책 출판에 방해가 될까 아무 연락도 만나자는 제안도 하지 않았던 나. 그녀가 가끔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단체 문자로 그녀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고, 힘내라는 답장을 몇 번 보냈던 기억이다.


사실, 내 모든 연락의 목적은 그녀를 향한 관심과 보고 싶음이었는데. 나중에 그녀는 내게 "자기가 나한테 왜 연락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가끔 연락은 하는데 관심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만나자는 말도 없었고."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소심하고 용기 없던 나로 인해 우리의 계절은 여름에서 겨울이 되었다.








집에 그녀의 책이 도착했다. 그녀의 출판 프로젝트가 끝난 것이다. 왜인지 책을 핑계로 한 번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책 잘 받았다는 인사와 함께 한 번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단 둘만의 만남은 아니었지만, 몇 명이 만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얼굴을 다시 보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게 너무 좋았다.


12월의 마지막 주, 꽤 추웠던 날. 내가 좋아하고 그녀에게 추천했던 음식점을 예약하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차가 막힌다는 그녀의 연락이 왔다. 몇 달을 기다렸는데 몇 분이 대수일까. 너무 추워서 먼저 들어갈까 생각하던 찰나, 여름과 달리 두터운 점퍼의 그녀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OO님!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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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매거진 '한 번 이혼한 남자의 첫사랑'에 연재하는 글의 3화입니다. 글을 쓰게 된 이유와 앞으로 써 내려갈 글의 주제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프롤로그를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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