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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Jan 13. 2023

해본 게 없는 남자, 해주고 싶은 게 많은 여자

4화 그녀와의 첫 호캉스, 그리고 양갈비


이것도 안 해봤어?


일상에서 그녀는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내가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지 않아서다. 어딜 다녀 본 경험도 거의 없고, 음식도 먹는 것만 먹어서 경험이 적다. 무엇보다 돈이 있어 본 경험이 없어서 먹고, 체험하는 등 소비에 금액 지불하는 걸 아까워한다.



12월 31일, 양갈비를 먹고 영화 아바타2를 보러 가자는 그녀.



“웬 양갈비 먹고 아바타?” 내가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 전에 동네 산책할 때 양갈비 가게 하나 찾았잖아~ 그리고 거기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고. 오늘 맛있는 것 먹기로 했으니까, 거기서 양갈비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아바타는 보돌이 영화 보는 것 좋아하잖아. 3D로 보러 가자.”





지난 달일까. 동네를 산책하다가 꽤 괜찮아 보이는 양갈비 집을 발견했었다.



“양갈비 구워 봤어?” 그녀가 물었다.

“아니. 한번도. 전에도 점원 분이 구워줬고.” 내가 말했다.

“그럼 오늘 내가 구울게.”



우리가 사귄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녀 덕분에 양갈비를 처음 먹었다. 너무 맛있었고, 좋았어서 그녀에게 종종 말하곤 했었다. 그녀는 나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고, 또 한번 양고기를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그녀는 영화를 안좋아한다. 안봐도 뻔한 내용이고, 영화 볼 시간에 자기개발하는 게 더 좋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친구들이 극장 가자고 해도 근처 카페에서 혼자 기다린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나 때문에 종종 극장엘 가고 2~3시간을 꼬박 함께 한다. 내가 좋아하는건 같이 하고 싶다면서.



“어때 맛있었어?“ 그녀가 물었다.

“응. 이런건 처음 먹는데, 진짜 맛있네.”

“보돌이 처음인 것 참 많지~? 앞으로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줄테니까, 행복하게 살자~”



그녀가 제안한 양갈비와 영화관람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이벤트였다.









언젠가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사귄걸까? 누가 고백한 것도 아닌데?"

그녀가 말했다. "나는 우리가 호캉스 다녀 온 다음인 것 같아. 그 전까지는 자기가 나랑 있으면 좋은건지, 뭘 좋아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거든. 근데 호캉스 때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게 보였고, 호캉스 이후로 자기가 마음을 연 것 같았어. 그래서 나도 그 때부터는 오래 만나겠구나라고 생각했었지."


연애 초, 그녀는 내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하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등 많은 질문을 했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말하길 그때 어떤 제안을 해도 내 표정이 떨떠름했다고 하더라. 돌아보면 나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녀의 이야기에 충분히 호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어느 날 호캉스를 제안한 그녀. 둘 다 서울에 자취방이 있는데 왜 호텔에 가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나에겐 돈 문제도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녀는 먼저 호텔을 예약해버렸다. 체크인을 할 때까지도 마음 불편해했던 나.



이제 나는 호캉스의 추억을 종종 그녀에게 말하곤 한다.



깨끗하고 조용한 공간, 그리고 탁 트인 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모습. 호텔에 들어간 순간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그때서야 왜 호캉스를 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 덕분에 낯선 공간에서도 안정감을 느꼈다.



오랜만에 잘 쉰 느낌이었다.



나는 마음의 벽이 참 많은데, 그래서 경험해 본 것이 별로 없고, 작은 상처에도 마음의 문을 닫는다.
하지만 그날 호텔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와 추억들로 인해,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나는 마음을 열었고, 우리는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난 주였나. 그녀는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가 보이는 바닥에 누워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마침 유튜브에서 다음 주 유퀴즈 예고편으로 김혜자 배우의 남편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툭 던진 말.



"자기야, 내가 죽기 전에 자기한테 뭘 남겨야 할까?"



그녀가 말했다.

"죽긴 왜 죽어. 난 안 죽을 건데. 그리고 당신도 죽으면 안되는데? 살면서 자기랑 할 게 너무 많은데?"



그녀는 진심이었다.

그녀는 내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너무 안정적이고 편하다.

이런 하루하루가 사랑이고, 행복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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