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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Sep 12. 2022

이혼한 남자와 결혼할 여자친구에게,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받은 상처를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추석 전날은 날이 참 맑았다. 집으로 가던 길, 여자친구가 달이 크다며 좋아했다. "올해 보름달이 진짜 밝고 크다던데. 내일 부모님댁 다녀오는 길에 한번 보자." "그럼 내일 찍어야지~" 늘 불편하고 싫은 날이었는데,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왜인지 그냥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모님도 마음이 편하실 줄 알았다. 여자친구를 만난 뒤, 나도 부모님도 많이 밝아지셨기 때문이었다. 단지 이혼한 아들을 받아주어서가 아니라, 그녀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으니까. 부모님도 그녀의 환한 모습에 근심이 없으실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추석은 어떻게하면 더 즐겁게 보낼지만 생각하면 될 줄 알았다.






추석 당일, 여전히 날은 맑았다. 왜인지 늦잠을 자버린 우리는 급하게 준비하고 나와 화계사로 향했다. 아빠는 4남매의 차남이라 친척 숫자가 꽤 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제들끼리는 잘 모이지 않는다. 명절이면 아빠는 화계사에 모여 할아버지를 모셨다. 합동 제사 시간에 할아버지 성함이 화면에 나오면 앞으로 나가 절 세번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엄마, 아빠의 명절이었다.


여자친구는 천주교 신자이기에, 절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는데. "내가 궁금한건, 절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야." 그녀는 불교의 예법과 제사 순서를 아주 꼼꼼히 물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절에 간 내가 순서를 몰랐고, 엄마의 안내로 그녀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에게 절을 했다.


합동 제사 시간은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고 밖으로 나온 뒤, 아빠는 절에서 만난 벗들과 인사를 나눴다. 여자친구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친구가 엄마를 되게 좋아해." 그러자 엄마는 굉장히 반가워했는데, 나는 엄마가 왜 그렇게 반가워했는지 알 수 없었다.





제사를 마치고,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고깃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시덥잖은 농담을 즐기는 아빠 특유의 농담이 이어졌고, 엄마는 꾸중으로 응답했다. 각자 먹고 싶은 술을 마시며 화기애애한 와중에 그래도 가끔 보는 고모네 식구에게 연락이 왔다.


부모님 집으로 자리를 옮겨 기분 좋게 과일과 커피, 술 등을 취향껏 마시며 고모네 식구까지 모두 모였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임영웅이 나오는 TV소리를 배경으로 늘 그렇듯 고모는 나를 놀리고, 사촌 동생 부부의 80일 된 아기와 함께 즐거운 분위기였다. 모든 식구가 여자친구를 의식하긴 했지만, 꽤 잘 어우러졌고 불편함이라곤 없었다.


집에 갈 시간을 계산하며 다들 슬슬 집에 가려는데 엄마가 여자친구를 붙잡았다. "따로 조금 할 말이 있는데..." 엄마는 찢어진 종이 한 장을 손에 꼬옥 쥐고 있었다. 일어섰던 사람들이 다시 앉았고 여자친구와 엄마만 방 안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궁금했지만,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냥 밖에서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온 신경은 방에 들어간 엄마와 여자친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야기를 마친 엄마와 여자친구가 나오고, 우리는 짐을 챙겨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난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엄마의 이야기를 여자친구 입을 통해 전해 들었다.





결혼 준비하면서 힘든 것 없냐고 하시더라구. 그냥 다들 있다고 하는 엄마와의 의견갈등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마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신 것 같아. 아무래도 우리 엄마 입장에서는 더 좋은 모습으로 결혼하기를 원하실 거라고, 부족해서 많이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아버님이랑 결혼 허락 받을 때, 당신의 어머님 그러니까 외할머니한테 앞으로 함께 할 아이들이 안쓰럽다는 말씀을 들으셨대. 어머님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셨고, 이런 말씀도 들으셨대. 자기 아이를 낳지 못하고 사는 건 정말 외로울 거라고, 너는 나중에 평생 외롭게 살게 될 거라고...


사실 나는 그게... 딸에게 할 말인가 싶긴 해. 결혼하시고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계속 마음에 남아있는 거잖아. 어머님이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외로우신건지 가늠이 안 되더라고.


친할머니한테 상처받은 것도 많으신 것 같았어. 처음에 모진 말을 조금 들어서 아직도 서운한 마음이 있다고 하셨는데. 나는 자기한테 미리 들어서 내용을 알고 있다보니까 괜히 더 속상하더라고.


어머님이 자신은 잘하려고 노력할건데, 혹시 잘못하는 게 있으면 꼭 말해달라고 하셨어. 고치시겠다고. 잘하실 수 있다고.


그리고 당신이 좋은 엄마인 줄 모르겠다고, 늘 자기랑 자기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하셨어. 그래서 저번에 자기한테 들었던 말을 전해드렸지. "ㅇㅇ이는 자기한테 엄마는 단 한 명뿐이라고 했어요." 이 말 듣고 우시는데 왠지 착잡했어.


자기가 전에 말해줬잖아. 아버님이 '너네 엄마가 언젠가 혼자가 될 걸 두려워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아마 외할머니가 말씀하신게 큰 이유이지 않을까. 지금도 외로우시기도 두려우시기도 한 게 아닌가 싶고...




엄마가 손에 쥔 조그마한 종이는 계좌번호를 묻기 위함이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크고 비쌌던 엄마아빠의 돈을, 우리에게 가장 편한 방식으로 주고 싶어서. 우리의 계좌가 적힌 종이는 곱게 접혀 안방 침대 위에 놓였다고 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엄마의 이야기는 내가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이었다. 어쩌면 여자친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꼭꼭 숨겨져있었을 이야기. 엄마도 이혼한 남자와 결혼한 여자이니, 자신과 비슷한 입장인 여자친구가 더욱 신경쓰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자신이 겪은 고초는 돌려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받은 상처는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치유가 되겠어.


여자친구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남았다.


전철은 달리고 달렸다. 우리는 해가 지고 나서야 바깥세상으로 나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100년만의 선명하고 밝은 보름달이라더니... 구름 뒤에 숨어 보이질 않았다.


앞으로 엄마 마음의 구름은 어떻게 제쳐야 할까.
엄마 마음에 보름달을 띄우고 싶은 추석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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