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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Sep 13. 2022

아빠는 나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계속 사랑할 것이다.

힘든 세상에서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

나는 밤이면 생각이 많아진다. 푹신한 이불 위에 등을 뉘일 때에야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서. 하루를 살며 보고 들었던 현실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생각 속을 유영한다. 휴직 중인 요즘에는 주로 일상을 함께 하는 여자친구가 해준 말들 몇 가지를 곱씹는 것 같다.



자기는 겪고 살아온 인생을 보면
정말 바르게 잘 자란 것 같아.
그게 진짜 신기해.



깜깜한 천장을 바라보며 이유를 생각해봤다. 문득 떠오른 사람은 아빠. 나는 아빠가 내 편이고, 나를 사랑한다는 걸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았다. 심지어 사이가 안 좋을 때에도. 아빠는 내가 연락하면 언제든 와 줄 사람이라고 믿고 누구에게나 확신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어릴 때 아빠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은 덕분에, 중심을 잡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내게는 안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는 아침마다 문방구에서 선물을 사줬고, 받아쓰기를 잘 봐도 못봐도 용돈을 줬다. 어느 날은 돈이 너무 많은데, 떡꼬치가 맛있어서 떡꼬치 20개를 샀다가, 집에서 혼나기도 했다. 아빠는 나를 혼내지 않고 허허 웃기만 했다.


아빠는 사장이었다. 사무실에 스무 명 남짓 직원들이 있었는데, 나는 모든 자리를 왔다갔다하며 박카스도 몰래 마시고, 커피도 몰래 마셨다. 회사 회식도 늘 따라갈 정도로 아빠 껌딱지였다. 주말에는 산에 가곤 했다. 올라가며 지난 주에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눴고, 산에서 내려오면 새 책을 샀다. 그리고는 맛있는 걸 먹었던 추억들까지.


아빠는 늘 안아줬고, 웃어줬고, 주말마다 나를 데리고 놀러갔다. 자연스레 나는 모든 가족은 일요일마다 소풍을 가는 줄 알았는데, 가세가 기울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처음 집에서 보낸 일요일은 6살에게도 꽤 쓸쓸했다.





사업이 어려워져서 집에 못 들어올 때도 많았던 아빠는, 이혼을 하고부터 달라졌다. 친척들과 가족여행을 다녀오던 중 산에서 막대기 하나를 줍더니, “이제 아빠도 혼낼거야.”라고 했다. 나는 픽하고 웃었는데, 바로 다음 주에 정말 혼났다.


아빠가 학원에 데려다준 뒤, 나는 친구를 마중 나가는 길이었다. 내가 학원에서 몰래 나오는 줄 알았는지 집으로 끌려와 엉덩이를 맞았다. 내게 반론권은 없었고 이유도 말하지 못했다. 솔직히 이건 아직도 억울하지만, 그만큼 아빠도 나를 혼낼 이유와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한동안 아빠는 무서웠다. 그게 아빠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천성이 그렇지 못했는지 무서운 아빠는 오래가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매는 사라졌고 말로 해결하려고 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역할을 노력하던 아빠에게도  말은  했던  같다. 어느 날은 내가 "친척들 앞에서 “이자식이라고 하지 말라" 기분이 나쁘다고 했는데,   이후로 아빠는 지금도 내게 말조심을 한다.


내가 크론병을 확진받기 전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아빠는 하던 일을 던져두고 빨간 눈으로 응급실에 뛰어왔다. 그리고 한동안 내 손을 잡고 울더니,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묻고 하나씩 처리해줬다.


언제나 내가 아빠를 필요로 할 때마다 아빠는 내게 와줬다.






요즘의 아빠는 내게 사과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얼마 전, 여자친구와 아빠 차를 타고 카페에 갔을 때도 그랬다.


그 오은영 선생님 나오는 프로 보면 너무 미안하고 후회가 되네. 우리도 그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못해준 것 같고. 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지, 못하게 했는지. 그래서 너가 이렇게 소심하고, 상처받고, 위축되어 사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고... 미안해, 아들.


아빠의 사과로 어린 시절의 상처가 모두 아물 수는 없겠지만. 사과하는 아빠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아빠에게 받았던 분에 넘치는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아빠는 여전히 날 사랑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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