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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Aug 28. 2023

나도, 좋은 아들이고 싶어서

실패한 결혼의 흔적은 모두에게 오래 남았다

나는 아주 가끔, 용건이 있을 때만 부모님에게 연락하는 아들이다. 먼저 전화하는 횟수가 일 년에 열 번을 채 넘기지 못할 정도.



지난 일요일,

딱히 용건도 없고 특별히 안부 물을 일도 없었지만 그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아들. 무슨 일이야?"
"아니, 우리 이번 휴일에 여행가기로 해서... 엄마 아빠도 광복절에 여행간다며?"
"아~ 아빠가 너무 피곤하다고 하셔서 우리는 그냥 집에서 쉬기로 했어."
"그렇구나."
"그, 아빠랑, 오늘 할아버지 납골당 갔다왔어~"
"할아버지 납골당이면 우리집이랑 가까운데 왜 연락 안 했어? 저번에 하라고 했잖아."
"너희 피곤할까봐 연락 안 했지."
"..."


갑작스런 전화에 엄마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할 말 없는 나도 덩달아 당황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엄마의 안부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왠지 연락해야 한다는 부채감으로 통화버튼을 누른 것이었다는 걸.



이래 저래 처갓댁에는 자주 연락하고 찾아가는데, 정작 내 부모에게는 그러지 못했다는 미안함. 할말은 없는데 해야 할 것 같은 부채감.



아빠는 택배일을 하고 있는데 일 년 중 쉬는 날이 며칠 되지 않는다. 다행히 *2년 전쯤 택배 없는 날이 생겨서 광복절 연휴에는 편히 쉬게 되었다던데. 일 년에 한 번뿐인 장기 휴가라 여행을 가실 거라더니 너무 힘들어서 쉬기로 했다고. 게다가 마침 오늘, 우리집 근처까지 왔지만 피곤할까봐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엄마.


괜히 연락했나... 마음이 답답했다.


이후에는 뜻없는 이야기만 조잘거리다 짧은 통화는 끝났다. 나름 길게 통화한 것 같은데 휴대폰에 찍힌 시간은 고작 3분. 전화를 끊고나니 이유 모를 답답함과 짜증만 커져갔다. 시끌시끌한 TV소리에 집중하려 해봐도, 내 마음 속이 더 시끄러웠다. 저녁밥을 앞에 두고도 체할 것 같아 거의 먹지 못했다.



너무 더운 여름, 멀리까지 출퇴근하는 엄마도 안쓰럽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택배일을 하는 아빠 건강도 걱정이다.
나만 잘 지내는 것 같아 미안하다.
여행을 다녀온다길래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빠가 피곤해서 여행을 포기했다니 마음이 더 불편했다.
게다가 나는 다음주 내내 여행가서 쉬다 온다.
그냥 모든 생각이 뒤엉켜 버리고 말았다.


"엄마랑 전화하고 기분이 안좋아..."

식사 중인 와이프에게 말했다.


"전화할 때도 어쩔 줄 몰라하더만"

와이프가 말했다.


"그래?"


"음, 자기가 기분이 안 좋은 건 어떤 무력감 아닐까? 자기는 부모님이 편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


"음... 그게 맞는 것 같다. 무력감"

한참을 생각한 나는 무력감에 동의했다.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 좋지 않을까. 아버님 배달하시는 중에 시원하시라고 뭘 사 보내거나, 하다 못해 음료라도 보내거나."

 

"음..."




나는 한 차례 이혼을 했고 또 재혼을 했다.


첫 번째 결혼 생활은 너무 힘들었고 또 내내 괴로웠다. 이혼하고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재혼했지만. 지난 결혼생활은 내게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그리고 내 실패한 결혼 생활과 지난한 이혼 과정을, 부모님은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내 이혼은 상처이지만, 아직 한국사회에서의 이혼은 흠이다. 그래서 지금의 처갓댁에 결혼을 허락받는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나도 모르게 처갓댁에 잘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도 꽤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내 부모보다는 처갓댁에 더 자주 연락하고 찾아가게 되는 것 같다.


어쩌다보니 이번 여름 휴가도 이틀 간 처갓댁 식구들과 보내게 된 상태. 그나마 택배 쉬는 날이 있어 쉴 수 있고 또 부모님이 여행을 떠난다기에 마음 가벼워했는데, 아빠가 피곤해서 여행을 취소했다니 되려 더 불편해졌다. 내가 너무 부모님에게 소홀한 것일까. 심란했다.


이제 나는 행복하니까 부모님의 상처도 아물었을 거라고, 멋대로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전화를 통해 엄마는 여전히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커졌다.





돌이켜보면 이전 결혼 생활 때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그 날도 부부싸움을 하고 냉랭한 일요일 오전이었다.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 일요일인데 뭐해?"

"어... 그냥 집이야."

"그래? 엄마 아빠 지금 할아버지 납골당 갔다가 너희 집 근처인데, 집은 부담스러울테니까 밖에서 같이 점심 먹을래?"

"......엄마, 오늘은 내가 약속이 있어서 안 될 것 같다. 다음에 보자."

"그래? 알았어."


그 통화에서 부부싸움 때문이라는 여지는 두지 않았다. 다만 부부싸움이 반복될수록, 미리 했던 약속이 파토나거나 참석을 못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친척 결혼식을 혼자 다녀오는 일처럼 혼자 간다는 게 어떤 숨겨진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들도.


그럴 때면 '그 사람은 일 때문에' 라고 변명을 했지만, 아마 부모님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과 상처가 부모님에게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정작 이번 결혼생활 중에는 납골당 다녀오는 길에 우리 집에도 온 적 있었고, 와이프가 납골당 방문하면 꼭 연락하시라고 당부까지 했는데.


어쩌면 엄마도, 거절 당하고 상처받는 게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마음만 무겁고 아무것도 못하는 내 옆에서, 와이프는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게 좋겠어. 아버님 택배 차에 설치할 수 있는 쿨시트 보내자. 이미 있으시거나, 싫다고 하시면 홍삼 같은 음료를 보내는 거지. 어때?"


내 동의를 구한 뒤, 와이프는 쿨시트를 바로 구매하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님. 요즘 너무 덥잖아요. 저희도 바깥 날씨 볼 때마다 아버님 걱정했거든요. 그래서 아버님 차에 설치할 수 있는 쿨시트를 보내려고 해요. 그래서 혹시 이미 있으실까 해서 여쭈려고요."


"아, 너희 아빠가 차에 뭘 설치하는 걸 싫어하는데..."

(뒤에서 듣던 아빠) "아 그냥 받아~ 며느리가 보내 준다는데~"

"어~ 어~ 그래 보내줘. 아빠가 고맙다네."


그 뒤로 엄마와 와이프는 한참을 통화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매우 밝게 들렸다.


엄마와 전화 통화를 마친 와이프는 나를 꼬-옥 안아주며 말했다.


"좋은 아들이고 싶어서 그런가봐. 이제 좀 마음이 편해?"

"응. 고마워"


오늘만큼은 무력한 아들이 아닌,

뭐라도 해드릴 수 있는 자식이 된 기분이었다.




나도, 좋은 아들이 될 수 있을까.




*택배 없는 날은 전국 주요 4개 택배사의 화물 집하 및 배송이 중단되는 날로, 광복절 연휴 기간인 8월 14일 하루이다(휴무일인 경우 8월 13일로 지정). 국내 택배 산업이 시작되고 28년 만에 지정되었으며, 택배 근로자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아직 끝나지 않은 아빠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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