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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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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Jun 02. 2020

크로크 무슈와 감자국1


크로크 무슈: 베샤멜소스를 바른 빵 사이에 햄과 치즈를 넣고 빵의 윗면에 다시 치즈를 올려 구운 프랑스식 샌드위치(우리말 샘에서)


 종일 굶을 계획은 아니었다. 애초에 휴대폰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오늘은 밤새 응급실에서 연락도 없네.’ 라며 게으름을 피우며 시계를 보니 7시 44분. 얼굴에 물만 묻히고 어제 입던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방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의 자고 있는 모습을 눈 안에 담아 놓고 “밥 먹고 가야지!” 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집안에 남겨 놓았다. 동부간선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무엇인가 짧게 번쩍거렸다. 과속방지 카메라. 주차장을 두 바퀴 돌아 겨우 한구석 빈자리를 찾아 차를 새웠다. 주차 간격이 좁아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짜증이 밀려왔지만 할 수 없지. 다시 주차를 하고 겨우 운전석 문을 열었다.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지각은 아니었다. 우리 팀원들과 밤새 기다려준 환자들을 만나고 9시 28분 일층 커피숍에서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전자레인지로 치즈를 녹인 크로크 무슈를 사들고 외래진료실로 올라갔다. 비교적 잘 시작된 하루라고 생각했다.


 연휴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외래 환자분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었다. 3분 단위로 쪼개진 외래 시간표에 맞춰 환자분들이 들어오셨다. 쉬지 않고 말하고 쉬지 않고 환자분을 만났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거나 따듯한 치즈 빵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애초부터 없었다. 커피가 다 식어 버린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외래 컴퓨터가 파란 화면으로 변하더니 갑자기 꺼져버렸다. 컴퓨터가 다시 부팅하는 동안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딱딱하게 치즈가 포장지와 엉겨 붙은 크로크 무슈를 뜯었다. 그 순간 외래 전화가 울렸다. 응급실이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말했다.


 “82세 환자고요. 아침부터 가슴 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왔는데 검사해 보니……” 여기까지 듣고 환자의 등록번호를 물었다. 막 다시 켜진 컴퓨터로 환자의 CT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심장 부위의 대동맥이 찢어져 있었다. 남은 아메리카노를 끝까지 들이켰다. 종이컵 밑바닥에 뭉쳐져 있는 커피가루가 입에 들어와 씹혔다. 팀원들에게 문자를 남겼다. “외래 끝나고 바로 응급 수술. 일단 먼저 환자와 보호자 만나고……” 웅성거리는 외래 진료실 앞을 지나 응급실로 뛰어 내려갔다. 할머니 한 분이 팔 여기저기에 수액을 단 채로 끙끙거리며 응급실 침대 위에 모로 누워계셨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보호자를 찾았다. 할머니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절뚝거리며 오셨다.


“할머님 오늘 돌아가실 수 있어요. 지금 상태로는. 빨리 수술해야 해요. 심장과 대동맥을.”


 할아버님은 아무 말씀도 안 했다. 한참을 눈만 껌뻑거리다가 자제분들은 모두 직장에 있다고 말했다. 다시 할머니의 상태를 설명하고 응급 처방을 하고 외래로 뛰어올라왔다. 외래 대기실이 조용했다. 환자들도 덩달아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정신없이 대기 중이던 외래 환자를 보았다. 응급실 환자의 보호자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다시 응급실로 뛰어 내려가 보호자에게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 직장에서 갑자기 연락받고 달려온 아들 딸들도 나도 숨을 고를 여유는 없었다. 아직 외래 대기환자는 잔뜩 남아 있었다.


 마취과 교수님들 덕분에 수술은 지체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외래 진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환자 마취가 끝났고 수술 포를 덮어 수술 준비가 끝나 간다’는 문자 메시지가 울렸다. 박물관에 서 보관해도 될 것 같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 크로크 무슈를 외래 책상 위에 남겨두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복으로 옷을 갈아 입고 물 두 컵을 연거푸 마셨다. 응급 수술 들어가니 연락 안 될 것이라고 집에 전화를 하며 환자의 CT를 다시 살폈다. 아이들도 아내도 능숙하게 ”오늘 집에는 못 들어오는 거지?”라고 물었다. 오후 1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크로크 무슈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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