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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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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Aug 12. 2020

기호품

기호품


기호품 (식품) 독특한 향기 나 맛이 있어 즐기고 좋아하는 물품. 술, 담배, 커피 따위가 있다(표준국어 대사전)

기호품: 인체에 필요한 직접 영양소는 아니지만, 향미(香味)가 있어 기호를 만족시켜 주는 식품. 특별히 자극성 마취성 ·방향성이 있으므로 미각 ·촉각 ·후각 ·시각 등에 쾌감을 주고, 필요한 흥분을 일으켜서 식욕을 증진시키며, 식생활을 윤택하게 해 준다. 주요 기호품을 열거하면 차 ·커피 ·코코아 담배 ·알코올음료가 있다(두산 대백과)  


나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

왜 사람들이 담배를 피는 지 이해 할수 없다. '담배는 기호품이야.'라고 고등학교 때 누군가가 담배를 손가락에 끼우고 연기를 뿜으며 했던 말 때문에 기호품이 무엇인지 찾아 본적이 있다. '기호를 만족시키는 식품?' 진정 그들은 담배를 뜯어 먹고 사는 종족 들인지. 정말 담배를 식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사전을 편찬한 사람들과 꼭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의 3년 차였나, 나는 폐식도 담당 주치의였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수술 후 폐렴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수술 전 적어도 2주간은 담배를 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물론 몰래 담배를 피우시거나 끊지 못해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비교적 정확하게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1인실에 환자가 입원을 하셨다. 식도암이 환자였다. 수술이 크고 환자의 폐 기능은 몹시 좋지 않았다. 환자는 평생 담배를 피웠다. 하루에 한 갑도 피고 두 갑도 피고 많이 태우는 날은 네 갑까지 핀다고 말하며 태연히 그는웃었다(네 갑을 피운다면 십 분에 한대는 피워야 한다).

“기호품인데 어때. 내가 좋아서 피는 것인데.”

입원하던 날 환자분께  내가 들은 이야기였다. '그놈의 기호품...' 분명 2주 전 금연을 교육했지만 환자는 담배를 전혀 끊지는 않고 입원 했다. 그의 들숨과 날숨에는 지독한 담배냄새가 났고 그의 손톱은 노랗게 니코틴이 껴 있었다. 그의 1인실 테이블 위에는 당당하고 소중하게 담배와 라이터가 놓여 있었다. 담배와 라이터를 보호자에게 건넸다. 절대 다시는 담배 피우지 말씀드리고 담배를 피면 폐렴 위험성 때문에 수술을 연기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다. 환자의 입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욕이 섞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수술 스케줄을 조정했다. 다만 퇴원은 흡연 관리를 위해 며칠 뒤에 하기로 결정했다.

환자는 대한민국에서 기호품을 갖고 의사가 월권행위를 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내가 담배 하나 못 끊을 것 같으냐는 소리, 어린놈이……로 시작해서 개새끼로 끝나는 말을 그는 내게 했다.


며칠이 지나고 당직을 서고 있는데 병동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그 환자분이 1인실에 혼자 있는데 방문을 닫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나쁜일이 생겼나? 급하게 환자의 방으로 가 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고 복도 가득 담배 냄세가 났다. 한참을 두들겼다. 그가 나왔다.

“무슨 일이요. 전공의 양반.”

잠이 깊이 들었었다는 환자의 방은 창문이 모두 열린 채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왜 담배를 피웠냐고 물었다. 생각해 보면 가장 멍청한 질문이었다. 담배야 '독특한 향기 나 맛이 있어 즐기고 좋아하는 물품인 기호품'이어서 핀 것인데 그것을 물어보다니. 환자는 창문으로 담배 연기가 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 7층 병동인데요?” 환자는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환자의 손끝에서도 입에서도 머리카락에도 담배 냄새는 지독하게 묻어흘렀다. 도무지 담배는 어디서 구하셨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는  지나가는 데 모르는 환자가 한 가치를 준 것을 핀 것이라고 했다. 라이터는 엘리베이터에서 주웠고...... 우연히 얻은 담배를 우연히 주운 라이터로 딱한대 피웠는데 7층 창문으로 담배연기가 왕창 들어왔다. 그가 말한 흡연 사건의 재구성이었다.

“겨우 담배 하나 가지고 이 밤에 난리를 피우나. 참 별난 의사네.”


그가 창 밖으로 라이터를 던져 버렸다고 해서 창문을 바라보다 모든 창문이 빠짐없이 열려 있는 것이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서였겠지만 모든 창문을 하나하나 모두 열어 놓은 것은 이상했다. 난간 위로 올라가 창틀을 살펴 보았다. 열린 창틀 틈 구석구석 곳곳에 일렬로 기차처럼 담배가 하얗게 박혀 있었다. 어림잡아 두 갑은 넘을 것 같았다. 환자분은 생활지도 선생님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린 고등학생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라이터 주울 때 담배 몇 갑을 같이 주웠고 라이터랑 버리려다가 아까워서 그냥 늘어놓은 것이라던 그의 변명은 병실 커튼을 흔들자 커튼속에 숨어 있던 라이터들이 투두둑 하면서 떨어지면서 중단되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호자에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퇴원 처리를 했다. 어르신은 1인실에서 한 시간도 넘게 소리를 질렀다. 내 몸이고 내가 좋아서 하는데 네가 왜 참견이냐느 게 욕설의 주 내용 이었다.

“담배를 피우면 환자분의 수술 후 예후가 달라져요. 제가 싫어도 두 주는 끊으셔야 해요.”

환자의 가족들이 도착했고 환자는 그날 밤, 퇴원을 했다. 내가 나빴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할 수 없었다. 2주가 넘게 지난 후 어르신은 다시 입원을 했다. 그의 몸에서는 더이상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고 조금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다행히 그는 수술은 받은 후 빠르게 회복해서 퇴원 할수 있었다. 입원 내내 그는 나를 아주 독한 의사라고 불렀다.


담배가 과연 기호품일까?

며칠 전 병동에서 그때와 같은 전화가 걸려 왔다. 병동 화장실에서 환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전화였다. 심장과 복부대동맥 수술을 동시에 받은 환자였다. 나는 화가 잔뜩 나서 담배 피우시고 나면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화가 잔뜩 나있는 내게 환자는 힘든 표정을 보이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나도 아는 데 그게 잘 안되네요.”

한숨이 나왔다. 외래에서는 갈비뼈를 일곱 개 부러지고 죽을 것 같다는 환자가 마음이 답답해서 담배는 핀다는 말을 들었다. 이래도 담배가 기호품일까? 독특한 향기 나 맛이 있어 즐기고 좋아하는 물품일까?


좋지 않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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