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병원의 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Z Jul 10. 2020

레빈 튜브

비위관(레빈 튜브) 코를 통하여 위(胃)로 넣는, 고무나 플라스틱 재질의 관. 위의 내용물을 빼내거나 위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사용한다(국립국어원 우리말 샘에서).


처음 레빈 튜브(L-tube)에 대하여 들은 것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밥을 잘 먹지 않고 멍하니 있는 내게 누군가가 '밥을 먹지 않으면 콧줄로 강제로 죽을 줄 거야.'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공포스러웠다. 내 코를 통해 이상한 관을 넣고 밥을 먹는다니. 그리고 시간은 금방 흘러 버렸다.


의대를 다니면 각과를 돌며 실습을 하게 된다. 흥미로운 과목도 있지만 대개의 시간은 긴장만 한 채로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그 시간 동안 의대생들은 멀끔한 가운만 입고 의사처럼 돌아다니지만 자신이 얼마나 이 공간 안에서는 무능하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지를 환자에게 화장실의 위치가 어디인지 조차도 설명 못하는 비의료인이라는 것을 모두 금방 깨닫게 된다.


본과 3학년 외과 실습이었다. 외과에는 수술을 끝나고 콧줄이라고 부르는 L-튜브를 넣고 있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 환자들은 소화기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안정될 때까지 l-tube를 몸에 지닌 채로 다닌다. L-tube는 코에서 시작해서 위까지 들어가 있다. 그날의 실습수업은 L-튜브의 삽입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 환자에게 삽입하는 건가?' 우리 조원들은 간이 강의실안에 모여 떠들고 있었다. 교육담당 교수님이 오셨다. 그리고 L-튜브가 무엇이고 어떻게 넣는 것인지를 설명해 주셨다. 어차피 시험에 안 나올 내용. 다들 들리는 이야기를 한귀를 통해 흩날리고 있었다. 설명이 끝나고 교수님은 무작위로 한 명을 지명했고, 아주 빠르고 능숙하게 콧속으로 사정없이 L-튜브를 집어넣었다. 지명된 친구는 구역질을 하며 눈물, 콧물을 흘렸고 그 장면을 보던 나머지 학생들은 그의 불행에 환호했다. 그리고 교육담당 교수님은 말했다. 절대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서로 짝을 지어서 실습을 하라고 했다.  


 우리는 당황했지만 출석번호에 따라 서로 마주 했다. 나의 상대는 여학생이었다. 5년이나 같이 의대를 다니며 볼 것 안 볼 것 다 본사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남의 콧구멍을 그것도 성별상 여성의 콧구멍을 쑤셔가며 l-tube를 넣는 것은 조금 민망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은 옆자리에서도 그리고 그 옆의 옆에서도 보였다. "이건 쫌......" 하는 몇 번의 손사래와 구역질 소리, 그리고 "교수님 꼭 해야 해요? " 그런 소리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시끌거리던 분위기는 점점 잠잠해졌다. 바닥에는 입에서 흘러나온 눈물과 콧물 침으로 뭉쳐진 타액이 흘러 미끈거리기 시작했다. 교육 담당 교수님은 "웃을 일은 아닌 것 이제 알았지?"라고 말했다. 나도 상대의 코에 L-튜브를 넣었다. 그녀는 거의 울고 있었고 입에는 침이 흘렀고, 눈 주위의 마스카라는 번져 있었다. 내 손과 옷에도 에도 번들거리는 그녀의 침과 콧물이 흘러내렸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난 사실 코뼈가 휘어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코가 잘 막혀 이비인후과에서 확인해 보니 한쪽 비강이 내부로 휘어 좁아져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게 어느 쪽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의 상대는 마스카라가 번진 충혈된 눈을 하고 한쪽 코에는 L-튜브를 낀 채로 내 코안으로 콧줄을 넣기 시작했다. "꿀꺽 삼키세요. 물 마시듯이 삼켜 보세요." 교수님이 추천한 대사였다.  나도 삼키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아니 L-튜브는 코에서부터 들어가지 않았다. 코를 찢어놓는 것 같은 통증,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넣었다 뺀 L-튜브에는 피가 맺혀 나왔다. 그제야 확실히 어느 쪽 코가 막혔는지 알게 되었다. 냉정해진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이쪽으로 안 들어가네. 왜 그러지."라고 혼잣말을 하며 반대 콧구멍에 L-tube를 넣었다. "잠깐만 쉬었다 하자."라고 말해도 그녀는 쉬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음식이 아닌 것을 코를 통해 넣고 목구멍을 통해 삼켰다. 삼키고 또 삼켰다. 딱딱하지만 부드럽기도 한 특유의 촉감이 위에서도 느껴졌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코에 레빈 튜브를 고정하고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10명 모두 콧물 눈물 침으로 범벅된 얼굴을 하고 콧줄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튜브 속으로 자기 손으로 물을 주입했다. 정말 기분 나쁜 느낌의 차가운 액체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 몸 한가운데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수업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콧줄 끼우기 수업 왜 한 것 같아?"

교수님의 질문에 "괴롭히려고요."라고 누군가 대답했다. 다들 고개를 끄떡였다. 정말 괴로운 한 시간이었다. 재미없는 설명을 하셨다. "소화기관은 몸의 내부이지만 외부 공간과 이어진 외부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고...." 왜 저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실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교수님은 이야기를 이어 갔다.   

"병원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콧줄을 끼고 있어. 이걸로 밥을 먹고 물을 먹고. 밥을 먹기 위해서 준비를 하지. 힘들었냐? 환자들은 매일 이렇게 힘든 거야."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L-튜브를 빼고 각자의 집에 갔다. 의사가 되고 인턴이 되고 나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수많은 환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L-튜브를 넣는 일이 되었다. 밤새 L-튜브를 빼는 환자에게 붙어 앉아 넣어보기도 하고,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 밀어 넣다가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물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학생 때 내 좁아진 비강을 통해 집어넣던 L-튜브의 느낌이 생각이 났다. 매일 힘든 것이구나. 환자는.


오늘 문득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보다가 그때 교수님이 수업 마지막에 덧 붙여 주셨던 말의 기억이 났다.

"힘든 거야. 환자는 이런 게 매일 이거든."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의 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