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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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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Oct 11. 2020

기대와 예상

기대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림(표준국어 대사전)

예상   어떤 일을 직접 당하기 전에 미리 생각하여 둠. 또는 그런 내용(표준국어 대사전).


흉부외과 의사란 직업을 갖게 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버렸다. 가족 그리고 흉부외과 관련자들.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렇게 돼 버렸다.


아주 가끔 흉부외과 선후배들과 저녁 약속을 잡는다. 몇년을 동거동락했던 사이니 살짝 기대가 된다. 나름 야심 차게 맛집을 검색한다. 각자의 병원의 중간지점을 세밀하게 조율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약속 시간은 모두 수술이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오후 7시쯤으로 한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니 수술 일정도 조절을 하고 외래 진료도 일찌감치 끝내 놓는다. 약속 장소를 향해 출발한다. 숨겨 놓았던 와인도 한병 손에 들고. 어쩌면 오늘 많이 즐거울 수도 있겠다고 스스로 기대한다.


모두에게 공평한 중간에 위치하는 장소는 모두에게 멀고 막히는 길이다. 막히는 길을 뚫고 골목골목을 돌아 약속 시간이 다가올 때쯤, 문자가 하나하나 도착한다. 응급이 생겼다는 문자, 환자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는 문자, 수술 환자가 피가난다는 문자, 병원에 돌아가고 있다는 문자가 건조하게 쌓여간다. 흔한 일이다. 가끔은 나도 가는 길 중간쯤 문자를 보내야 할때가 있다. "응급이네요."


교통 체증을 뚫고 도착해 보면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없는 경우도 있다. 아예 연락 두절이 된 사람에게 전화해보면 'XXX선생님 응급 수술 중이십니다." 하는 수술장 간호사의 낭랑한 목소리가 마취 모니터에서 나오는 기계음에 섞여 들린다. 맛집 테이블에 앉아 밑반찬만 먹으며 기다리다 보면 이제 수술 끝나서 출발한다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


오랜만에 선후배들을 만난다는 기대는 대부분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진다. 맛집 테이블에 앉아 주인분의 눈치를 보며 두세 명  사오 인분의 음식을 시키고 "수술 잘해..."등의 문자를 보내다가 "허허"거리며 밤이오면 각자의 병원을 향해 헤어진다. 물론 그 사이에 밥 먹다가 병원으로 호출되어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대를 하는 것과 예상을 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항상 기대를 하면서 그 기대를 예상이라고 희망섞인 되새김 질을 한다. 이렇게 하면 살아나실 수 있을 거야. 이렇게 하면 빨리 회복되실 거야. 아직 이 방법은 써보지 않았으니까. 기대와 예상 사이에 들어있는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는 나를 객관적이게 하지 못하는 이기심은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정작 자신이 저녁시간에 응급이 생길지도 예상하지 못하면서.


예상과 달리 힘들단 것과 기대와 달라 힘들다는 것 분명 다른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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