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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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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Oct 14. 2020

비건 베지테리언

비건 「001」 「명사」 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그녀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철저한 비건이었다. 그녀가 비건이란 것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면접 자리였다. 나는 면접 자리의 막내 면접관이었다. 흉부외과에서 같이 일할 간호사를 뽑는 자리였다. 무엇이든 자신 있어 보이는 그녀였지만 무엇인가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이지? 하고 고민하다가 면접이 끝났다. 내가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다른 지원자보다 무엇을 보아도 그녀는 훌륭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와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그녀의 첫 근무 날, 과에서는 환영파티를 해 주었다. 오랫 만에 새로 들어온 신입직원을 위해서 조금 멀리 떨어진 횟집에서 저녁 회식을 했다. 나는 당직을 섰다. 다음날 아침. 누군가 내게 그녀가 조금 다른 사람들하고 식성이 다른 것 같다느 이야기를 했다. 전날 회식자리에서 생선회를 안 먹길래 싫어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해초만을 먹고 있는 다고 했다. 튀김도 생선구이도 함께 나온 돈가스도 먹지 않고 해초만  먹는 것 같다고 했다. 같이 점심시간에 병원 식당에 갔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 대해서 소개했다. "저는 비건이에요."


그녀는 완벽한 비건이었다. 어떤 육식성 음식도 먹지 않았다. 계란도 생선도 과거에 움직였던 형태의 생물에서 유래된 어떤 음식은 먹지 않았다. 완벽하게 음식을 분리해서 먹었다. 누군가 "운동화나 가방의 가죽은 괞잖고 먹는 것은 안돼요? "하고 물었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수백 번은 대답해 본 적이 있는 듯 신발도 가방도 어떤 것도 동물에서 유래된 제품은 입지도 신지도 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설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녀는 감자튀김조차 먹지 않았고 케첩도 입에 대지 않았다. 혹시 동물성 기름으로 튀기거나 동물성 첨가제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녀의 취향인데 설득이 필요할까? 하지만 그녀는 병원 식당의 밥 조차 먹을 수 없었다. 함께 식당에 가면 그녀는 흰밥을 먹었다. 김치는 먹을 수 있지 않냐고 물어보면, 젓갈을 넣었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야채 무침이나 나물도 소스에 동물성 성분이 있을 수 있다고 먹지 않았다. 그저 가지고 다니는 간장을 휑하니 밥만 담은 식판에 비벼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난 후 그녀는 결국 퇴직했다. 그 당시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그녀와 같은 비건을 도와줄 수 있는 식단은 없었다. 간장과 흰 밥 밖에는.


나는 문어를 먹지 않는다. 2년 전 우연히 읽게 된 문어에 대한 책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산낙지 마니아였고, 펄펄 끓는 물에 낚지나 문어를 통째로 넣고 뚜껑을 닿은 후 침을 꿀꺽거리던 사람이었다. 책에 따르면 문어는 꽤 지능이 높고 감정을 느끼며, 공포를 가지고 있는 우리와는 다른 형태로 진화된 다른 영역의 생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친절하기까지 하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었다. 책을 다 읽은 날부터 '두족류'를 먹지 않게 되었다. 대단한 철학이나 심오한 논리보다는 책 속의 생각들이 내 취향을 막아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나는 철저하게 문어와 낚지를 안 먹는 사람이 되었다.

병원의 식판에는 한 달에 한두 번 낚지 복음이나 문어 샐러드 같은 것이 배식된다. 그날은 김치와 밥을 먹는 다. 예전 같으면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조금만 더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했을 텐데 난 그저 김치와 밥을 먹는다.

며칠 전 무심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샐러드와 함께 문어 한 조각이 입속에 들어갔다. 문어의 식감이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이었는데 2년 만의 느낌은 고무지우개를 자르다가 반쪽이 입안에 들어가서 씹히는 느낌이었다. 같이 먹던 동료들 때문에 뱉을 수는 없었다. 물을 들이키며 함께 삼켜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이 났다.


취향이란 것은 그런 것인데. 먹고 싶지 않은 것은 그렇게 삼키고 싶지 않고 삼킬 수 없는 것인데. 그녀에게 그때의 병원은 너무나 잔인한 정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방관하던 나조차도 폭력적인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세상 여기저기에 비건을 위한 베지테리언을 위함 식당이 있고 식당마다 그들을 위한 음식이 늘어나고 병원 역시 그런 환자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지만 지금부터 10년 전 혼자 흰밥에 간장으로 식사를 해결해야 했던, 그리고 그마저 비난과 비슷한 눈길을 받았던 그녀의 마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부끄러워 졌다.


사람을 감싸주지 못할 때 병원은 외롭고 웃긴 곳이 되어 버리는구나. 환자에게도 함께 일하는 우리에게도.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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