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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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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Nov 20. 2020

오늘 밤은 잠을 자고 싶지 않네요.

카페인

카페인 : 알칼로이드의 하나. 쓴맛이 있는 무색의 고체로, 커피의 열매나 잎, 카카오와 차 따위의 잎에 들어 있다. 흥분제ㆍ이뇨제ㆍ강심제 따위에 쓰나 많이 사용하면 중독 증세를 일으킨다. 화학식은 C8H10N4O2


아침, 병원에 도착해 환자 브리핑을 하며 처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커피다. 뜨거운지 차가운지 아니면 좋은 원두에서 추출된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설탕도 크림도 아무것도 섞여있지 않은 진한 커피 용액이 입속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커피는 아직은 잠에 취한 반쯤 처진 눈을 추켜올려준다. 물론 이것으로 하루의 커피 생활이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오전 수술을 시작할 때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 점심식사 후  일층 로비의 커피전문점을 바라보다가, 그리고 이유 없이 또 한잔을 마시고 외래로 돌아와 보면 먹다 버린 일회용 커피잔 사이에 또다시 무심히 올려져 있는 다른 커피잔들. 오늘도 나는 슬기롭지 않았다.

  

 커피는 병원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음료인 것 같다. 보호자들의 손에도 회진을 끝내고 돌아가는 의사의 손에도 한 번은 따듯했던 적이 있던 커피를 담은 일회용 컵들이 들려 있다. 하지만  커피화 함께하는 느리게 가는 시간들은  커피가 병원에 들어오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함께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커피와 관련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일 뿐이다. 커피가 나오는 순간 함께 있던 사람들은 각자의 커피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헤어지며 커피를 입에 머금는다. 뜨거운 커피는 입과 식도 안에서 식히면 된다. 커피와 함께할 시간은 병원에는 남아있지 않다.

 병원의 커피는 불공평하다. 타의로 병원에 살아야만 하는 단기간 거주자들에게, 커피는 금지음료가 된다. 환자복을 입는 순간 커피는 위를  나쁘게 만들고, 심장박동이 빠르게 하며, 두통을 유발하고, 혈압을 올리는 사악한 음료가 된다. "커피 한잔만 마시면 안 되나요?" 대답의 끝은 항상 변함이 금지를 가리킨다.

환자가 올 수 없는 자리, 일층 로비 한 측의 커피전문점, 병원 마당 한 구석의 화단, 왜 있는지 모를 흡연자 전용 벤치에서  보호자들은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한다. 하늘을 보다 눈물을 흘리고 답답해하고 한숨을 쉰다. 공기에 섞여 날아간 깊은 한숨은 일회용 커피잔이 받아낸다. 병원의 커피에는 한숨이 함께 섞인다.


지치고 힘들어 나락에 떨어질 것 같은 밤. 이렇게 환자를 보다가는 내가 지치고 심장이 멎어 버릴 것만 같은 밤. 그런 밤에도 내게 필요한 것은 달달하고 따스하며 나를 감싸 줄 것 같은 위로의 맛이 아니다. 입에 들어오는 순간 쇄골 동맥과 정맥을 타고 정수리와 심장까지 퍼지며 눈을 번뜩이게 할 마법의 힘이 필요할 뿐이다. 입안에 털어 넣으면 지친 뇌세포가 살아나며, 태풍 후의 전신 주처럼 처져 있던 신경 전달 물질들이 순간적으로 살아나 손가락을 꿈틀거리게 하는 기적과 같은 끈적거리는 에스프레소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잠을 자기에는 너무 늦었고 깨어 있기에는 너무 이른 새벽 에스프레소는 마법과 함께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 시간 항상 나를 찾아오는 것은 응급실의 전화벨. 환자가 도착하고 갑자기 수술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 동이 트기에는 이르고 버스가 다니기에는 늦은 시간, 나는 잠을 깨기 위해 세수를 한다. 혀를 깨물어 본다. 내 뺨을 때려 본다. 커피를 연거푸 마셔본다. 다시 거울을 보고 정신을 차려 본다. 그래도 모자라다면 편의점으로 내려간다. 차가운 카페인 음료를 내게 찾아오지 않는 에스프레소 대신 입안에 털어 넣는다. '알칼로이드의 하나. 쓴맛이 있는 무색의 고체로, 커피의 열매나 잎, 카카오와 차 따위의 잎에 들어 있다.' 적어도 오늘 밤은 졸음으로부터 환자를 지켜 줄 테니.


그리고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오늘 밤은 잠을 자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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