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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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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May 01. 2020

사식

멀어지다

사식 (私食)「명사」 교도소나 유치장에 갇힌 사람에게 사사로이 마련하여 들여보내는 음식
 (국어 표준 대사전에서)


 H선생님이 아프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었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들었는지는 불분명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선생님에 관한 걱정 어린 이야기를 했고 나도 여기저기서 듣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분이 아프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병세가 심상치 않다는 말들에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여기저기에서 인용되는 선생님의 글들을 보면서, 아프신 중에도 세상에 용기를 주려고 하시는 그분의 마음이 읽혀 혼자 멍하니 하늘만 보기도 했고, 선생님의 쾌유를 마음 한구석에서 빌고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과 가까운 아내의 선배 L이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선생님이 입원을 하셨는데, 전혀 음식을 못 드신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혹시’로 시작된 말의 끝은 사식을 드셔도 괜찮겠냐는 아주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L의 말을 전하며 아내는 내게 전화를 바꿔 주었다.

“그 병원 담당교수님이 있을 텐데…...”

잠깐 사무적으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상황은 꽤 복잡한 것 같았다. 담당의사는 잘 드셔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웬만하면 병원 식사를 주로 드시라고 했다는데, 정작 선생님은 병원 음식을 전혀 못 드시고 계셨고 주변 분들은 그 상황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혹시 평소 좋아하셨던 음식을 드시면 정말 기적처럼 입맛이 돌아오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건강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혹시 담당의사의 의견처럼 음식을 드시고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L누나의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내 분야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대답드리고 싶었다. 비교적 상세히 선생님의 상태에 대하여 전해 들었다. 잘 모르는 어른이었지만 전해 들은 그 간의 이야기 만으로도 강인하고 멋진 분이시며 훌륭하게 이겨내고 계시는 환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어떤 음식을 드시게 하고 싶은지를. 혹시 이상한 보양식이 아닐까 하는 의사로서의 노파심 때문이었다.


“냉면.”


 그들이 선생님께 만들어 드리고 싶은 그리고 선생님이 드시고 싶은 음식은 냉면이었다. 음식을 잘아는 B와 M이 직접 만들어 드리신 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듸시게 하고 싶은, 드시고 싶은 음식이 '냉면'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정말 나는 이상하게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음식, 정말 건강해지시면 친한 사람들과 농담을 하며 휙휙 걸어가 드셔야 할 것 같은 음식.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간절히 도움을 주고 싶은 어쩌면 한 젓가락 밖에 못 드실 지라도 혹시 입맛을 찾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간절함과 정성이 느껴졌다.


“오히려 음식 잘 못 드시고 오히려 악영향을 줄까 봐 담당 의사 분이 말한 것 같은데요.”라고 정말 의사들의 화법으로 말을 꺼내다가 생각을 바꿨다.  

“생각해보면 많이 못 드실 텐데, 드시는 것이 큰 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해요. 조심스럽게 드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의사 분께도 다시 말하면 허락하실 것 같은데요. 내 환자라면 어짜피 계속 사식을 드신다는 게 아니니까 나같으면 한번은 드시게 할 것 같은데……요. 다시 담당 의사 분하고 상의하시면 드시라고 할 거에요 그 정도는.”라고 말을 했다.


한참이 지났다. 나는 아내들 통해서 정말 그들이 직접 면을 뽑아서 평양식 냉면을 만들어 드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냉면을 병실에서 맛있게 드셨다고 했다. 얼마나 드셨는지는 전해 듣지 못했지만 맛있게 드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냉면을 드셨다는 이야기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그리고 여름이 깊어갈 때쯤,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나왔다. 선생님이 남기신 글들을 다시 찾아 읽었다. 왠지 모르게 다시 눈물이 났다.


Ps. 국어 대사전에서 사식이란 말은 교도소나 유치장에 갇힌 사람에게 사사로이 마련하여 들여보내는 음식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외부 음식을 사식이라고 부른다. 병원이나 교도소나 답답한 공간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렇게 부를 수 는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환자들이 죄를 진 것은 아니고 우린 모두 환자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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