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위한 전부. 전부를 위한 하나.
환자식: 병원에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조절하여 환자에게 주는 음식(국립국어원 표준국어 대사전)
병원에 입원을 하면 누구나 환자식을 먹게 된다(물론 환자식 조차도 못 먹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네모난 식판에 차려 나오는 공기 밥과 국 그리고 반찬 서너 가지를 자신의 병상에서 받게 된다. 병원에 따라서는 양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거나 가끔 특식을 제공하는 병원도 있다. VIP실이 있는 병원은 호텔의 룸 서비스처럼 꽤 좋아 보이는 식기에 말끔하게 차려진 음식이 담겨 나오기도 한다(물론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어떤 형식의 음식이 나오던 환자의 밥은 기본적으로 치료식이다. 모든 음식은 매일 영양사의 꼼꼼한 계산에 맞춰 제공된다.
밥은 2100kcal, 죽은 1700Kcal, 미음은 650Kcal, 영양사들은 적절한 칼로리와 영양소의 조합을 매 끼니 기어코 찾아낸다. 하지만 그들이 고려할 것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모든 식단은 ‘의료 보험’이라는 제도하에 있다. 모든 음식은 그 칼로리와 영양이라는 영역 아래서 의료보험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영양사의 일주일 식단 계획표에는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해 수십 번을 적고 지우고 다시 적은 메모들이 꼼꼼히 적혀 있다.
음식 식단을 정했으면 환자가 어떻게 음식을 먹어야 할지에 대하여 고민한다. 어떤 환자는 씹지 못한다. 어떤 환자는 씹기는 하지 넘기지를 못한다. 다른 누구는 덩어리 음식은 넘기지만 물을 넘기지를 못한다. 씹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서 조리사들은 모든 반찬을 가루처럼 잘게 갈아 내보내고, 그 보다 씹는 기능이 회복된 이를 위해서는 중간중간 씹는 연습을 할수 있는 덜 다진 반찬을 제공하기도 한다. 덩어리를 못 삼키는 분을 위해서는 넘기기 쉬운 젤리 형태의 음식만으로 식단을 만들고, 물을 마시면 자꾸 기도로 넘어가는 분을 위해서는 물에 타면 물이 젤리처럼 변하는 약물을 동봉해 준다.
짜게 먹으면 안 되는 분, 혈당을 올리면 안 되는 분, 짜게 먹어야만 하는 분, 신장이 나빠 전해질 성분을 뺀 음식을 먹어야 하는 분, 때로는 단백질이나 지방이나 섬유소 조차도 제한을 받아야 하는 환자를 위한 식단도 필요하다. 매일, 매 끼니를 이렇게 준비하 고 환자들에게 일일이 보내 주지만 환자들은 그 음식을 먹으며 대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선생님도 드셔 보세요. 이건 정말 맛이 없어요.”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젠, 콧줄(비위관)을 통해 주입해야 할 유동식도 준비해야 하고, 유동식의 농도도 요구에 따라 맞추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죽만 먹는 환자도 있다. 하얀 쌀죽과 야채죽 단백질이 포함된 죽을 나누어 만들어야 하고, 밥그릇 바닥이 비칠 만큼 투명한 미음도 끓여 놓아야 한다. 유아식에 들어갈 아이들 마음을 풀어줄 앙증맞은 디저트가 필요할 때도 있다. 산모를 위한 미역국도 필수다. 잠시 쉬는 시간에는 위나 식도 수술을 한 환자를 위한 끼니 중간식도 준비해야 한다.
간혹 환자들 중에는 특수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선천적인 소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특정 성분을 먹으면 소화 과정 중 몸 안에서 그 성분이 독소로 바뀌는 희귀병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특수 성분의 분유를 부모 대신 찾아 줘야 할 때도 있고, 모든 음식을 무균 살균 과정을 거쳐 거쳐 환자의 식탁까지 무균 상태로 배달까지 끝내야 임무가 끝날 수도 있다.
“하나 위한 전부, 전부를 위한 하나.”
이를 위해서, 환자를 위해서 새벽부터 모두들 분주히 움직인다.
병원의 모든 환자들을 위한 음식을 배식했다고 주방의 아침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밤새 일한 병원의 식구들, 새벽 출근한 직원을 위한 아침식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 마저 식당을 떠나고 나면 스스로의 아침밥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밀려올 온 병원의 환자와 의료진과 함께일하는 직원 들과 병원을 찾아올 보호자를 위한 넉넉한 양의 점심식사를 만드는 일은 곧 시작된다.
불쑥 찾아가 음식을 만드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 내게 조리사 한 분이 대답을 해 주셨다.
아침 식사를 드리러 병동으로 찾아갔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시신이 운구 되는 것을 보았고, 매일 보던 할머님이 안계셔서 물어보았더니, 방금 전 장례식장으로 내려간 시신이 할머니라는 말을 듣고 멍하니 주인 잃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아침식사만 빈 침대에 놓고 내려왔던 어떤 날이라고.
하나를 위한 전부. 전부를 위한 하나. 가장 쓸쓸하지만 가장 따듯할 음식.
환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