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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TOSTEP Apr 23. 2023

김밥은 사이다가 생각나야 한다. 이왕이면 칠성사이다.

먹을 것에 대한 리뷰#3

[엄마표 김밥. 이것이 나에겐 오리지널]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에 가끔 정확히 알 수 없는 부페식당에서 하는 경조사에 나를 데려가고는 하셨다. 보통 그 당시에는 부페식당(뷔페아니고 부페가 어감이 좋다)이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고, 따로 돈들이지 않고 외식할 수 있는 기회이니 나를 데려가시지 않았나 싶다. 사실 그렇게 잘 살지도 못했었고... 그때마다 난 이상하리만큼 맛있는 걸 모두 제쳐두고 김밥을 많이 집어 먹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좋아해서인지 나이가 든 지금도 김밥을 즐겨 먹는 것 같다. 


 김밥. 요즘은 너무 다양하다. 밥과 김으로 두르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김밥이다. 거기에 후토마끼라는 일본식 김밥까지 뭐가 너무 많다. 안에 돈까스도 넣고 튀김도 넣고 제육볶음도 넣고, 어느새인가 참치와 치즈를 넣은 김밥은 클래식이다. 김밥을 먹고 있는 것인지, 돈까스를 먹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김밥의 하이브리드. 이 하이브리드는 김밥이 먹고 싶을 때 내 입이 기억하는 기댓값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물론 김밥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잊고 먹게 되지만, 입 한구석 옛맛을 담당하는 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오리지널의 그 맛을 갈구한다. 


 다행인 것은 내 입안에 아직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그 김밥을 지금도 난 먹을 수 있다. 물론 나이가 너무 먹어버려서 약간은 민망하고 뻘쭘하지만 딱 한마디면 먹을 수 있다. 

 

  "엄마, 나 김밥 먹고 싶어. 김밥 해줘."


여전히 나의 김밥마스터인 엄마는 오리지널을 구현하실 수 있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김밥의 오리지널 그것은 엄마가 해 준 김밥이다. 별다르지도 않고 특별한 것도 없는 바로 그 김밥이다. 그리고 그 김밥을 먹을 때면 반드시 사이다가 생각나야 한다. 칠성사이다여야 한다. 콜라도 안 된다. 스프라이트도 안 된다. 칠성사이다 생각나야만 한다(*칠성사이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 줄만 먹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두 줄이 기본이며 시원한 사이다 원샷하고 한 줄 더 먹으면서 네 줄째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그 엄마표 김밥. 이것이 바로 김밥이다. 


 이 김밥의 레거시를 살리기 위하여 엄마와 인터뷰를 병행하며 엄마의 김밥을 먹었다. 역시나였다. 그 어떤 것도 따라올 수 없다. 이것을 레시피로 남기기 위해 엄마의 조리법을 기록하였다. 깨달았다. 아마도 이 레시피는 전수되지 못할 것이란 걸... 



아들 : "자 엄마 이제 첫 단계부터 시작해 보는 거야~! 밥은 어느 정도로 지어야 해?"


엄마 : "너무 질면 당연히 안되고, 된 밥 쪽에 가까워야 하지만 찰기가 좀 있게 지어야 하지.."


아들 : "음.......(아들 당황한다. 그래서 그게 어느 정도인거지?) 자 그럼 밥 간도 해야 하지? 간은?"


엄마 : "소금 하고 참기름을 넣고 약간 싱거운 듯하면서 짭조름 한 정도로 간을 하면 돼.."


아들 : "음.......(아들 당황한다. 싱거운 거야 짠 거야...) OK 간은 된 거 같네. 대충 하다 보면 되겠지..?"


엄마 : "너가 하게? 뭐할라고 김밥을 다하니.... 김밥이란 게 밥 간하면 김밥 다 된 거지 뭐.."

         "계란은 그냥 조금 두껍게 지단 해서 자르고,,가만보자,,맛살하고 단무지는 그냥 마트에서 사면되고

          햄은 엄마는 불고기맛 김밥용 햄 넣는데...너가 어렸을 때부터 이걸 좋아했어..아주 살짝 구워서

          썰고, 우엉은 너가 못할 거 같은데..그냥 넣지마^^

          오이는 소금물에 아주 살짝 담갔다 빼고, 너무 오래 담가두면 절여지니까 아삭할 정도..."


아들 : "음.......(아들 계속 당황.) 그래 뭐..적당히 하면 된다 이거네.."


엄마 : "그래 맞아 그냥 대충 하는 거지. 김밥이 뭐~ 엄마는 당근은 안 넣는 거 알지?"

         "너가 이상하게 당근만 넣으면 애기 때부터 토해서, 엄마는 안 넣잖아. 당근 넣어야 색이 예쁜데.."


아들 : "맞아 난 당근 먹으면 그랬어.."


엄마 : "이제 뭐 넣고 돌돌 마는 거지. 엄마 김밥 맛있지? 참기름을 좋은 거 써서 그래. 직접 짜오잖아"


아들 : "맛있다."


엄마 : "아유 김밥이 다 똑같지 사 먹는 게 훨씬 맛있다 야. 목멘다 사이다 꺼내자."

         "애기 때 너 소풍 갈 때 김밥 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도 김밥 같은 거 싸고 그러나?"



그 어는 것도 정량이 없다. '적당히' '어느 정도' '대충' 정도로 모든 레시피가 갈음된다. 평소 같았음 '아니 엄마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수가 없고, 몇 그램 몇 숟갈 이렇게 알려줘야 해'라고 물었겠지만, 그렇게 묻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 오리지널은 마스터인 엄마가 해주는 그대로 먹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지만 아마도 먼 미래에는 먹을 수 없을 것이란 걸 안다. 김밥을 두 줄 먹으니 목이 멘다. 원래 엄마가 해 주는 김밥은 목이 메어 사이다를 먹고 또 먹는 맛인데, 사이다를 먹어도 목이 멘다. 우리 모두의 엄마의 김밥은 목에 멜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티나지 않게 세 줄 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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