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무너진다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재난에
마스크 구하는 것도 버겁던 무렵의 여름이었다.
할미는 그렇게 잘 열어두던 창문까지 꼭꼭 닫았다.
집 아래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하필 어쩌면 우연히 우리 집을 향해 재채기라도 하면 어쩌냐는 논리였다.
코로나라는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노인에게 절대적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것쯤은 인지한 모양이다.
마침내 오늘이다.
반차를 낸 형이 교회의 목사님과 함께 집을 찾았다.
어쩌면 팬데믹을 핑계로 방문을 거절할 거라 생각했던 할미는,
별안간 진주 목걸이까지 걸치고 손님들을 반갑게 맞았다.
"코루난가 지랄인가땜에 어떻게들 지내셔~~
어서 오셔유."
처음 보는 어떤 이와도 이물감 없이 대화할 줄 아는 할미를 두고,
난 거실 에어컨을 틀고 음료를 내어드린 후 방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문제가 있을 때마다 혼자만의 기도로 전전긍긍하고
할미와 더불어 거듭날 방법을 찾지 못한 자책이 들어서였다.
스스로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한 내 마음은 점차 쪼그라들었다.
목사님은 할미의 나이를 듣고
연세에 비해 엄청 고우시다는 인사를 건넸다.
칭찬 앞에 쑥스러움을 모르는 할미는
있는 그대로 흠뻑 받아들이며 한껏 달떴다.
"젊을 땐 대단했쥬!"
할미는 칭찬의 마중물이 길어 올린,
지금보다 훨씬 더 고왔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어릴 때 소학교에 가고 싶다 말했다가
증조할머니에게 어림도 없는 소릴 한다며 흠씬 혼나고 있을 때,
당시 군인이었던 큰 오빠가 말을 타고 와서
자신을 소학교에 데려다준 썰.
외동이었던 아버지를 낳아 홀몸으로 키우며 고생한 날들까지
그중 몇 개는 나조차도 처음 듣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잠깐만 움직여도 땀이 맺히던 20년의 어느 한여름날.
할미는 손자들과 처음 보는 이에게
부모님, 형제들을 앞세워 떠나보낸 막내딸이 되었다가
하나뿐인 아들의 엄마도 되었다.
목사님은 그런 할미의 오만가지 이야기들을
그저 묵묵히 듣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구태여 밤마다 찾아온 꿈속의 여자와
뾰족한 칼 두 자루를 수건에 감고 잔 이유에 대해 묻거나
그에 대한 변명을 듣지 않아도 충분해 보였다.
대신 목사님은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막내 손주분이 효손이네 효손!
할머니가 손주랑 같이 지내고 싶으셨나 봐요."
"이이~ 손주가 잘해줘유. 아주 저엄잖구.
근디 어릴 때 큰 애는 조금만 혼내켜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비는디,
저 작은 애는 아무리 혼을 내고 방에다 혼자 냅두고 그래도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안햐.
고집도 고집도 저런 황소고집이 없슈. 싹바가지도 없고..
그래도 저것이 할매 위한다고 여리로 데려와 살아유"
나를 향해 어깃장 놓듯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는 것에 매몰돼,
할미와 소용없는 다툼을 했던 나는 뭘 얻었을까.
내가 그토록 그런 게 아니라고 신나게 긁히는 동안,
나는 나대로의 이야기들을 날카롭게 갈아내 쏟은 만큼 괜찮아진 게 있을까.
할미는 그저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 것 같다.
때때로 살면서 단단히 망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가끔은 나오려던 말이 슬피 막혀 울음으로 대신하던 순간마다,
할미의 "울지 말어" 단단한 한 마디에 모든 게 꿋꿋해지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할미를 이해하기보다 차라리 와해되기를 선택한 것 같다.
내 마음만은 거꾸로 시간을 걷는 아이같은 할미를
눈물자국 없는 하얀 말티즈처럼 애지중지 가꾸며 사랑만 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힘듦을 멈추려다 더 힘들어지고야 말았다.
나 역시 지금처럼 할미가 위태로울 때 단단한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무너질 줄 아는 취약한 내가,
할미를 돌보고 헤아리며 같이 사는 법을 조금씩 깨닫는 순간이었다.
할미는 돌아오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길 약속하고
돌아가는 목사님을 짧게 배웅했다.
이후 그녀는 일요일마다 아침 일찍부터 형을 기다렸다가
함께 차를 타고 가 예배를 드렸고,
코로나로 인해 대면 예배가 힘들어질 땐
우리 집에 모여 함께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그때마다 할미의 일용할 맥심 모카골드 향이 거실을 가득 메웠다.
커피를 넘기는 '호로록' 소리 한 번에 '아멘' 한 번씩 곁들이며.
여전히 할미의 '상상 속 그 여자'는 존재했지만,
점차 혼자 보내는 시간을 곧잘 쓸 줄 알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수건에 둘러진 두 자루의 칼들은
요리용으로만 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