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멈아, 나도 쌍피가 있다

올해도 건재한 최고령 아귀

by 구름구

할미와 같이 살며 맞이하는 두 번째 추석이 돌아왔다.

내가 꼬맹이때 친척들로 북적이던 명절은

어느샌가 가족끼리 조촐히 보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예전 명절이 찾아올 때마다 할미와 생전의 오빠들이 만나면,

각자 집이 부서질 기세로 안부 인사를 나눴다.

저 정도면 단단히 화가 나신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큰 목소리로 서로가 서로를 반가워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더 이상 따로 살던 할미를

명절 첫날 아침에 데리러 가지 않아도 됐다는 점이다.

할미를 데리러 가던 설이나 추석이 밝은 아침은

어쩐지 그때만의 기운이 있었다.

대체로 날씨도 모질지 않고,

할미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흘러나온

라디오 선곡마저 들뜨고 신났다.

하지만 당시의 할미만 그 설레는 감정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며칠 전부터 매번 신박한 이유들을 들어

이번 신정과 구정에는 또 이번 추석은 쇠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

언제나 혼자 출발해 둘이 도착하는 결말을 알고 있는 나는,

늘 같은 대답으로 할미를 살살 달랬다.


"할머니 없으면 내가 무슨 재미로 명절을 보내?"


이 정도면 짜고 치는 수준의 대화들인데도,

그렇게 기다린 내 말을 들은 할미는 마지못한 척 차에 몸을 실었다.

할미는 이렇게 삐지고 저렇게 토라졌다면서도

명절마다 다 같이 나눠먹을 떡 한 상자를 맞춰놓는다.


"니가 모처럼 쉬는데 우두커니 있는 게 안쓰러워서 가는겨.

니가 떡도 좋아하잖여?"


나는 내심 기다리던 떡을 차에 실을 때마다 듣게 되는

할미의 말에 기분 좋았다.

그리고 이제는 할미와 한집에서

본가로 출발하는 시절이 왔다.




할미는 잘 차려진 음식과 법주 마시는 맛에,

그리고 증손자들 재롱 보는 맛으로 명절을 보냈다.

나는 모처럼 시끌시끌한 집을 지켜볼 때마다

할미와 함께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다 같이 식사도 하고 덕담도 나누고 훈훈한 명절 행사가 끝나면

이윽고 할미가 슬슬 발동을 걸었다.


"다들 뭐 허고 앉았어~ 요 깔어야지!"


다름 아닌 화투였다.

우리는 할미를 위해 이놈의 화투를

단 한 번의 명절도 거른 적이 없다.

형과 내가 어릴 때 덮었다던 옛날옛적 담요는

수십 년째 마흔여덟 장의 화투가 섞이고 찰싹 맞부딪히는 동안

반들반들 보기 좋게 닳아있었다.


할미는 7장의 패를 받아 든 순간부터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 플레이어로서

어떻게 해야 가장 먼저 3점을 날 수 있는지

모든 방법을 강구한다.

나는 어차피 용돈과 더불어 판돈까지 잃어드리는

환장의 1+1 효도 대단치중이었기 때문에,

또 잘 칠 줄도 모르므로 속수무책 잃기만 했다.


할미는 쑤시는 뼈마디를 새로 갈아 끼운 사람처럼,

손목에 스냅을 걸어 찰지게 그림 맞추기를 시작했다.

화투도 쳐본 사람이 따는지 조커도 본인 몫이었고,

쌍피와 광을 곁들이며 공격적으로 피를 쌓아나갔다.

가끔은 스텔스 모드로 초단, 홍단 등의 3점을 획득해

상대방 패에 초를 쳤다.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 바퀴만 더 돌면 엄마의 3점이 확실시되던 순간,

할미는 아끼던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똥피 한 장을 내려놓았다.


"뒷장이 붙어야 혀!

.....

고렇지!!!!"


뒷장을 확인한 할미가 자신의 이마에 문제의 패를 붙였다.

그 순간 절실했던 똥 쌍피였다. 할미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돼지어멈아. 500원 가쥬와."

*어릴 적 통통했던 형 때문에 붙여진 엄마의 별명


어쩌다 한 번 내가 따나 싶은 순간엔

"우리 손주 수(手) 덕이 좋은데 어떡허면 좋으냐"

걱정하는 척 광을 완성하며 저격했고,

아버지가 끝내나 싶던 때엔

"잠깐! 손 저짝으로 치워봐유!" 하더니

열 끗을 못 만든 아들의 눈속임을 간파하는 최고령 아귀도 되었다.


나는 신바람 난 할미를 볼 때마다

상반기, 하반기에 나누어 치르는 치매 테스트라 생각하고 안도했다.

눈대중으로 삽시간에 "4점 400원씩! 가쥬와!"

힘주어 말하고 패를 섞는 할미의 모습을 보니,

이 정도의 계산력이라면 나를 못 알아볼 날은 오지 않겠다 여겼다.

게다가 몇 시간씩 앉아 집중할 수 있는 할미를 보는 즐거움 또한 크다.

나는 예전 할미 집 벽지에 적혀 있던

'칠백 원, 사천 원 받아야 한다' 같은 메모가 우리 집에도 남지 않도록

잃은 돈계산도 기분 좋게 해 드렸다. 다음에 또 잃어드릴 결심과 함께.




며칠 뒤 할미의 걸음걸이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할미는 다리가 저린다고 했다.


"양쪽 다 그랴.. 서 있기가 힘들다."


아무래도 연휴 내내 엉덩이 무겁게 붙이고 앉아

즐겁게 치던 화투 때문에 사달이 난 것 같았다.

나는 할미를 데리고 집 근처 정형외과로 가 진료를 받게 했다.

엑스레이 촬영을 마친 후 의사가 내려준 진단은 뜻밖이었다.


"할머님, 척추 협착증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