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놀라고 들을 자신 있슈?

진실에 가까운 오해들

by 구름구

할미의 양다리가 저린 이유는

노화로 인한 퇴행성 척추협착증이라는 게 의사의 소견이었다.

척추관이 점차 좁아지면서 척수와 다리로 이동하는 신경이 압박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다리 저림 등의 증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그랬냐는 의사의 물음에 할미는 말 뒤끝을 흐렸다.


"화투에 미쳐가지고 그냥 몇 시간을 내리 쳤슈..."


세상에 영원한 거 없다지만,

할미가 멈출 수 없는 회춘의 화투가

오히려 고통을 주는 놀이가 된 셈이다.

할미의 나이가 나이니만큼 수술은 결코 권할 수 없다는 의사는,

오늘 드리는 약을 복용하면서 주기적인 물리치료를 받으시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물리치료를 받고 나오니 다리가 훨씬 부드럽다는 할미에게,

나는 이 증상에 대해 다시금 자세히 설명했다.


1. 먼저 다리가 아픈 이유는 허리 때문이야.

2. 이제 날이 추워질 건데 저번처럼 눈길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3. 아빠가 사준 새 신발이 두 켤레나 있는데 제발 그거 신고 이건 버려.

4. 되도록 물리치료는 매일매일 받아야 지금처럼 통증도 덜하고 좋아.


친구들과 밤을 따러 갔다가 굴러서 허리를 다친 전력과,

눈길에 넘어져 부러진 팔에 철심을 박은 할미에게

앞으로의 타박상에 더는 자비가 없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내 이야기를 그토록 잘 기억하더니,

언젠가부터는 할미에게 건네는 말이 잘 흘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어쨌거나 본인이 체감하는 건 다리의 통증이었으니

허리로부터의 원인이라는 건 잘 입력되지 않아 보였고,

새 옷이 많은데도 입지 않다가 얼룩이 지고 나서야 울거나

오래된 영수증 한 장도 쉬이 버리지 못하는 그녀는

남아도는 신발도 아깝다고 신지 못했다.

나는 뒷굽이 닳다 못해 신으면 기우뚱해질 만한

할미의 낡은 운동화를 버리고 좋은 착화감의 새 신을 꺼내줬다.




할미는 물리치료를 받고 와서는 한결 나아져 기뻐하다,

해가 지면 깨어난 통증으로 눈물을 보였다.

나는 물에 적신 수건을 따뜻하게 데워 할미 다리에 올려주었다.

무력하게 누운 채로 다리찜질을 받고 있는 할미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성큼성큼 잘도 걸으며 운동을 다녔었다.

퇴근길의 나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챙모자를 쓴 할미가

저만치 앞서 걷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백세를 넘긴 할미를 상상해 봤다.

꽤 빠른 속도로 점점 멀리 그리고 작게 보여가는 할미가

그렇게 계속해서 건강히 백세의 문턱을 넘길 바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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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나는 전처럼 할미의 운동 코스를 따라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더 허락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가졌다.

따로 지낼 때의 할미는 가족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돌아가신 분들을 모셔놓은 산소를 보며 걷는 곳으로 날 데려갔다.

그녀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찾은 운동코스를 돌며,

어느 묘자리가 좋고 어디가 별로인지를 품평하더니

뜬금없이 자기가 죽으면 이쪽으로 묻으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할미 말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그저 오늘의 대화는 이렇구나 흘려보냈던 것들이,

이제 내 기억 어딘가에서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잔잔히 남아 상기되었다.




이제 매일 오전의 할미는

나와 함께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는 일정을 소화했다.

1시간가량의 다양한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한쪽 의자에 앉아 넉살 좋은 할미의 대화들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보호자로서의 삶은 낯설지만

지금처럼 할미를 든든히 기다려줄 사람이 된 것 같아

스스로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물리치료로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 생기며,

우리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늘 맛집을 찾아 점심을 함께 했다.

영양상태가 부실해 일어나는 질환은 아니었지만,

오늘 치료도 성실히 잘 받았으니 맛있는 걸로 기분 좋게 보상받자는 생각에서였다.


할미는 옆 테이블 참견을 하고 싶어서 음식점에 간 것처럼,

늘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려왔다.

솥밥에 밥은 어떻게 덜어냈는지 빤히,

밥 덜어낸 솥에 부으라는 물은 부었는지 기웃기웃,

자신의 이름을 간판에 걸고 영업 중인 50년은 훌쩍 넘긴 주인장처럼

붙임이 좋다 못해 어느 인류애 넘치는 맘씨 좋은 할머니가 되었다.


본인의 추어탕은 언제쯤 드시려나


예전의 나는 필요이상 참견하면 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 타박을 줬었다.

그럴 때마다 할미의 서운한 기색이 미안해

이제는 할미 참견하고 싶은 만큼, 하시던 대로 지켜볼 뿐이다.

특히나 오늘은 저렇게나 주위를 살필 에너지가 있다는 게

저린 다리가 온전하다는 의미 같아서 괜히 나까지 옆테이블 어르신께 한마디 거들 뻔했다.

참견 좋아하는 그 할미의 그 손자이니 맛있게 드시라고.




그동안 언제까지나 옆에 있어줄 내 할미라고 여겨왔다.

언젠가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날이 온다는 사실이야 안다지만,

그걸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10년 전쯤이었다.

좋아하던 육개장을 맛있게 먹고 일터로 돌아가던 어느 한낮,

오늘도 어김없이 할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날따라 목소리가 가라앉은 할미에게 긴한 용무가 있어 걸려온 전화였다.


"바쁘냐. 이 할머니 부탁이여. 지발 놀라지 말고 들어."


놀라지 말고 들으란 말은,

충분히 놀라운 내용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으란 뜻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는디..

겨란만 한 동그란 혹이 보인댜. 나랑 병원에 좀 같이 가야 되것다."


나는 그게 어떤 증상인지 어떻게 고쳐줄 수 있는지도 모른 채,

달걀만 한 혹이 발견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미 할미를 잃은 손자처럼,

상암의 어느 인적 드문 곳으로 잔뜩 얼굴을 구기고 들어가서

걱정하지 말라고 꺽꺽 울며 말했다.

할미 집에 부랴부랴 도착해 살펴본 검사지에는

'위점막하 종양'이라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이후 xx성모병원을 가장 신뢰하는 할미 뜻에 따라

병원에 연락해 진료예약을 잡았고,

전날 할미 집에 도착해 둘이 번갈아 한숨을 내쉬며 내일을 기다렸다.


다음날 할미의 차례가 되어 들어간 진료실에서

의사는 검사한 CD를 가져왔는지 물었다.

이런 경우를 처음 겪는지라

할미가 위내시경을 받을 당시가 촬영된 CD를 챙겨 올 생각조차 못했던 나는,

어떻게 잘 말씀드리고 졸라서 될 상황이 아닌 걸 직감했다.

결국 CD를 챙겨 와 다시 예약 후 진료를 받기로 하고,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진료의 비용을 결제하고 할미의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왜 미리 그 병원에 연락해서 정확한 상태도 여쭤보고

다음 단계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놀라고 경황없다는 이유로 똥멍청이 짓을 한 것 같아서 더 착잡했다.

게다가 정작 할미가 검사받은 병원에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아 벌어진 큰 실수는 따로 있었다.


"할머니 위내시경 CD 받으러 오셨죠?

근데 크게 걱정하실 게 아닌데??"


할미의 동네 병원에 도착해 침울해하던 차에,

의사의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나는 일어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의사가 보여주는 영상을 보며 귀를 기울였다.


"여기 보시면 새끼손톱 반만 한 지방종이 있어요.

몇 번 눌러보니 푹푹 들어가는 거 보이시죠?

양성 종양이니까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되고 따로 큰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됐을 건데..

내년에 검진받으면서 상태 지켜보시면 될 것 같아요."


할미는 검사를 받고 나서 '종양'이라는 단어에 쇼크를 먹은 상태로,

위내시경 카메라가 식도를 지나가는 영상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촬영을 하며 보이는 그 식도의 공간을

마치 달걀 크기의 종양으로 인식한 것이었다.

분명 의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말했다는데,

유난스러운 그녀에게만큼은 그렇게 들렸을 리가 없다.

이미 몸속 어딘가 있지도 않은 달걀 하나를 품고

내게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을 게 뻔하다.

어쨌거나 그저 지켜봐도 될만한 온순한 종양이라는데,

달걀이면 어떻고 공룡알이면 어떠한가.

나는 진료실을 나오며 새끼손톱을 내려다봤다.

그 반만 한 사이즈가 어느 정도인지 마지막으로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할미는 병원을 훑고 다니며 따뜻하게 웃어주시는 간호사들에게까지

자기가 죽일 년이라고 웃으며 외쳤다.

나는 내년 검진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린다는 표정으로 인사하고

할미와 함께 병원 밖을 나왔다.

그날따라 바삭하고 쨍한 햇빛이 얼마나 좋은지,

기쁘고 다행스럽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 새삼 알 수 있었다.


20250104_160427.jpg 아직도 소장 중인(?) 문제의 CD


나는 추어탕집에서 옆 테이블에 참견하는 할미를 보며,

말로는 할미를 꾸짖고 입가엔 웃음을 띠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양쪽 다리가 저려오는 건 극한의 화투로 인한 일시적 아픔이라고,

두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누군가 걱정할 필요 전혀 없다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슬픔이 일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의 크기가 달걀에서 새끼손톱의 절반으로 덜어져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갈 때처럼,

필요이상 큰 목청으로 불필요한 참견을 하고 다니는

내 할미로 오래 남아주었으면 했다.


진정으로 놀라운 일 따위 없이,

결국 놀라지 않아도 되는 놀라운 오해들을 더 겪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