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지나간 자리

또 만나요

by 구름구

2021년 9월 1일 새벽 1시 50분.

나는 할미의 자유함을 바라는 마지막 인사를 속삭였다.

더는 할미가 눈을 뜨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시간이 왔다.

의사는 할미의 응답 없는 동공을 확인한 후 그녀의 작고를 알렸다.


간호사는 내게 잠시 자리를 비워주길 부탁했다.

육신만 남겨진 할미의 뒤처리를 위해서였다.

나는 병실을 빠져나와 가족에게 할미가 떠났음을 알렸고,

후배에게는 못다 한 하루치 대본의 수정을 부탁했다.

그동안 간호사는 할미의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주었다.

아버지가 미리 알아봐 두었던 파주의 장례공원에 할미를 모시기 위해서도 필요한 서류였다.

나는 이 모든 일에도 시간의 흐름이 계속되는 것이 생경했다.

아마도 내 남은 삶동안 뭉근하게,

어쩌면 점점 더 몸집이 커지게 될 슬픔을 두고두고 느끼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이윽고 부모님과 형이 병원에 도착했고,

일산의 한 병원에서 할미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나는 눈감은 할미의 얼굴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올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할미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이 병실 어딘가에서 얼굴을 잔뜩 찌푸려 흐느끼고 있을지,

이제는 아픈 곳 없이 성큼성큼 걸으며 홀가분함을 느낄지,

할미의 삶 너머 모습이 몹시도 궁금했다.




할미와 우리 모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장례에 대한 설명과 선택의 과정들은 순탄히도 진행됐다.

요즘의 영정사진 등록은 간편하기도 하다.

모바일로 이미지만 첨부하면 알아서 사진을 만들어준다는 걸 처음 알았다.

15년 전 가을, DSLR 카메라를 샀을 무렵의 나는

우연히 할미의 사진을 여러 장 남긴 적이 있었다.

그때 담은 할미가 곱고 예뻐서,

먼 훗날 할미가 돌아가실 때 쓰고 싶은 사진이라 여겼다.

언제고 급작스럽게 필요할지 모를 그때 그 할미의 사진을

노트북에, 메일에 고이 담아두고 살았었다.


이 사진, 배경은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수줍게 웃는 할미 뒤에 담긴

있는 그대로의 푸릇한 나무들을 그냥 두는 게 어울리려나.

할미는 어떤 사진을 좋아하려나.




2시간 뒤 부모님과 나는 파주시청에서 만났다.

할미를 모시기 위한 장례공원을 분양받으려면,

사망진단서와 함께 신청해야 하는 곳이었다.

원래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북도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었는데,

파주에 거주하는 시민에게도 일부 자리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생전에 화장이 뜨거울까 싫다던 할미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는,

할미의 회복이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나서 이곳을 둘러보았다고 했다.

떠나시고 나면 다 무슨 소용 인가 싶은 마음을 갖고 살던 나도,

부디 할미가 마음에 드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모든 신청을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막둥이 조카가 건강히 잘 태어났다는 소식이었다.

갓 태어났음에도 새까만 머리카락이 몹시 풍성한 예쁜 아들이었다.

할미가 돌아가시고 10시간여 뒤 태어난 막내 조카의 생일은

곧 할미의 기일이 되었다.

탄생과 죽음이 동시에 이뤄진 하루.

할미가 태어날 막내 증손자를 지켜보며,

창조주에게 "머리카락 좀 더 심어유!" 억척스레 다그치는 상상을 해봤다.

슬픔이 가득할 할미가 조금은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도감도 들었다.


평소 할미를 향한 나의 마음을 잘 알던 지인들은,

할미가 병원에 있을 때부터 많은 걱정을 해주었다.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친구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함께 울어주었고,

경황이 없던 나 대신 주위에 연락을 돌려준 선배가 참으로 고마웠고,

새벽까지 진행됐던 녹화에도 할미를 위해 지정헌혈을 해준 아끼는 후배를 비롯해,

소중한 시간을 내서 장례식장을 찾아준 동료들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몇 년째 연락을 못 드렸던 선배는 느닷없이 꿈에 내가 나왔다고 안부연락을 줬다가,

소식을 듣고 놀라워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마주하는 할미의 영정사진은 비현실적이었다.

내게도 찾아오게 될 일이 기어코 일어난 그날,

어떻게 실감할 수 있을지 깨닫는 게 고작 3일로는 너무도 부족했다.




정성스레 염을 마친 할미를 만났다.

그동안 곱게 화장한 할미를 본 적이 없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할미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시간,

나는 생전 할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다해서 덧붙일 이야기가 없다고 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언제나 내 걱정이 많았던 당신이

편히 떠나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눈물도 내기 어려웠다.

모두가 슬피 울고 있을 때, 나는 할미를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었다.

앞으로도 평생 건넬 이야기가 많을 텐데,

언제 어디서든 내 멋대로 말을 걸면 될 일이었다.




할미의 장지에 도착한 날은 더위가 한풀 꺾인 초가을이었다.

하늘이 파랗고 맑아서 아팠다.

흙으로 덮이는 할미에게 미안했다.

서로가 땅에 붙어 지낼 때 내가 조금 더 잘했어야 하는데,

할미의 갈급한 이야기들을 살뜰히 들어주고 더 많이 안아줬어야 했는데...

내 인생의 가장 회피하고 싶었던 순간을 마주하고서야

어리석은 후회가 밀려왔다.


누구와도 말하기 좋아하는 할미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목청껏 웃으며 행복하기를,

그리웠을 부모형제와 친구들을 만나 기쁘게 어루만져지기를 바랐다.




할미는 계속해서 내 꿈에 나타났다.

예전처럼 거실 화장실에서 빗질을 하는 할미를 돌아 세워 부둥켜안고 울거나,

흰자가 없는 시커먼 두 눈의 할미가 숨을 헐떡이며 나를 찾아와

다급히 팔을 톡톡 치며 첫 말을 떼려는 순간 깨기도 했다.

그렇게 눈을 뜰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떤 날은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병원 밖을 나서는 할미도 만났다.

이제 다 끝났다고 밝게 웃는 할미였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함께 소리 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잊고 있던 혼자가 됐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 연세에 나와 함께 먹겠다고 담아놓은 두 포기의 김치.

아끼지 말고 입으라 사줬지만 끝끝내 아끼다 입지 못하게 된 겨울 외투들.

몸에 좋다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냉장고 속 환약들.

손으로 때려잡고 달라붙은 현관문의 모기 사체.

깨진 주방 대리석, 프라이팬 자국이 선명한 거실 테이블.

함께 적어 내려 가던 돌봄 노트.

억센 줄로 묶어놓은 출입키.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 찍었다던 고운 사진들.

나와 통화하던 휴대폰, 나와 가족들의 연락처가 삐뚤삐뚤 적힌 낡은 수첩.

예전에도 지금도 쓰지도 않으면서 바리바리 들고 왔던 갖은 접시들.

아무도 찾지 않을 다양한 공과금 영수증들.

나는 모든 게 있던 자리에 있도록 둔 채로,

이 공간에 혼자만 쏙 빠진 할미를 꿈에서 실컷 만났다.

그리고 가끔 소리 내 울었다.




출근길에 주문하고 받은 커피 한잔을 들고 차에 타려는데,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바쁘게 날았다.

나는 한참 동안 얼굴에 앉을 듯 말 듯 날아오던

우연이었을 나비에게 많은 의미를 두었다.


언젠가 반드시 헤어짐을 전제로 만난 우리는,

종국엔 반드시 만날 수 있음을.

정말로 보고 싶었던 동안 이렇게 살아왔다고.

나도 이제 다 내려놓고 마음껏 놀고 싶어 왔다고.

서로를 와락 안고 달뜨게 말하는 순간까지 안녕히 지내자고.

내 시야에 사라지는 나비를 보며 다짐했다.


또 만나요.

당신의 자랑이고 싶었던 사랑하는 내 연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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