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를 울린 마침내

고생만 했어, 내 사랑

by 구름구

요양병원에서는 불규칙한 연락이 잦게 걸려왔다.

그때마다 할미의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어쩌면 오늘을 넘기기 힘들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어떤 날은 출근 후 주차를 하자마자 연락을 받고

다시 차를 돌려 할미를 보러 가기도 했다.

할미의 의지는 '드디어'의 시간이 저물고

'마침내'의 시간으로 기울었다.

마음 같지 않은 결과였다.

매일마다 느닷없이 할미를 보내야 하는 준비를,

속절없이 떠내 보내야 하는 날을 가까이하는 건 크나큰 상심이었다.


하지만 비로소 나는 초연히 다스릴 줄 알게 되었다.

할미가 죽을힘을 다해 버텨준 시간을 넘겨받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묵직한 기운을 느끼곤 했다.

나는 남아있는 손자이자 잘 보내줘야 하는 가족이었다.

이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침착히 깨닫고,

희미한 빛을 깜빡이는 할미를

똑바로 든든히 지켜봐 줘야 하는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결국 할미는 1인 병실에 묵게 되었다.

하루를 견뎌내면 내일이 고비가 되었고,

다음날 넘긴 위기는 또 다음날의 몫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돌아가며 할미의 옆을 지키기로 했다.

낮시간이 자유로운 부모님을 시작으로,

일찍 퇴근한 형이 저녁을 이어주었고

그 뒤로는 내가 합류하는 식이었다.


병원의 부름을 받은 날로부터 나와 형은 간이침대를 놓고,

다음날 출근 전까지 할미 옆에서 쪽잠을 잤다.

2시간마다 한 번씩 혈압을 재던 간호사들의 기척에 일어나,

압의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다.

보통 30 후반대를 보이는 혈압수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40 초중반으로 오를 땐,

아직 할미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는 새벽 5시가 넘으면

나보다 출근이 이른 형을 배웅해 보내고,

10분 정도 병원 앞을 산책했다.

이런 시간을 가진 지 2주 정도 지났다.

공교롭게도 처음 막내작가를 시작할 때 다녔던 음악채널이 있던 자리,

술자리가 더 어울리던 이곳에서

할미를 보살피며 뜻밖의 산책을 하게 될 줄 몰랐다.


그날의 할당된 무더움을 내뿜기 전 새벽,

나는 벤치에 앉아 동튼 하루의 시작을 가만히 바라봤다.

문득 할미는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 궁금했다.

할미도 꿈 많은 시절이 있었을 테다.

웃음기 많은 어여쁜 때에는 어떤 추억을 만들었는지,

지금의 할미는 당신의 연대기를 차근차근 돌아보고

기분 좋은 꿈을 꾸며 허락된 삶을 잘 정리 중인지 알고 싶었다.


이맘때 나는 할미와의 거창한 추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저녁때가 되면 놀이터에서 땀이 흙이 되도록 뛰어놀던 우리 형제를 찾아온 할미.

매번 양손에 빨대를 꽂은 사이다병 두 개를 들고 밥 먹으라 외치던 그녀.

청량하고 시원한 사이다 한 병을 받아 들고 실컷 빨아 마시며 집으로 향하던 그 골목.

근심과 걱정을 떠올리기도 서툴렀을 여덟 살 무렵 아이가 바라본 할미와의 세상.

추억이 될지도 몰랐을 만큼 소박한 해 질 녘 하루가,

어느새 잊힐 수 없는 확증의 추억이 되었음을 먹먹히 깨달았다.


온 가족 모여 식사를 하고 난 며칠 뒤,

불쑥 연락이 와 반드시 올 수 있는 날을 약속받더니

내가 먹는 게 시원찮아 보여 실컷 먹이려 준비했다는 할미의 돈가스와 해물탕.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어딘가로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던 할미의 옆모습.

어릴 적 살면서 본 적 없는, 지금도 신기한 할미의 그 미소.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봤던 그때 그 여유로운 미소처럼..

난 할미가 그렇게 세상과 아쉬움 없는 이별을 하길.

부디 유연하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기쁜 마음으로 떠나기를 소망했다.




할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다,

가끔 기운을 차리고 눈을 떴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왔느냐는 표정이다가도

눈꺼풀을 일으키는 것마저 힘겨워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에서 깬 할미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증손자들의 깨방정과 우리가 함께 지낼 적 찍었던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할미에게 마음처럼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건넸다.

할미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왼팔을 천천히 들어 내 어깨에 올리려 했다.

할미가 건넬 수 있는 최선의 화답이었다.

내 어깨에 살포시 올린 할미의 맥없는 손길에서

무한한 마음이 전해졌다.

말하기를 좋아하던 할미는

내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을까.

평소 할미는 내게 버릇처럼 말했다.


"아무쪼록 이 할머니가 떠나도 잘 살어라...

10원이 있으면 5원을... 아녀! 7원을 저축허고 ....."


나는 유언처럼 말해주던 할미의 주렁주렁 매달은 기나긴 이야기들을,

할미가 떠나고 나면 기억될 몇 십 번의 당부들을,

늘 마음에 잘 담고 살았다.


분명 할미는 "잘 살아라" 말했을 것이다.

나는 다 알아들었다.




회의가 한창일 때 형에게서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목사님의 심방 기도를 받고 있는 할미였다.

화면으로 보니 부쩍 더 마른 할미가

메마른 눈물을 떨구며 목사님의 기도를 듣고 있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늘 오래 못 산다 말하는 만큼 오래도록 살고 싶어 하던 할미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며 결심의 문턱까지 떠밀려왔을지 모른다.

우리 모두 넓게 보면 시한부의 삶을 사는,

언젠가 남아있는 모두를 두고서 홀연히 떠나야 함을 아는데도

정작 할미가 가질 두려움의 정도를 알 수 없어 안쓰러웠다.




다음 주 있을 양일 녹화에 맞춰,

각각 이틀 치로 작성된 대본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를 하며 변경된 구성들만큼이나 수정해야 할 사항들도 늘어났다.

나는 밤 10시쯤 회의를 마치자마자 급히 할미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할미를 지키고 있던 형을 집으로 들여보냈다.

다음날 오전,

쌍둥이 조카에 이어 10살 터울 막내 조카의 탄생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산 예정일을 선택할 수 있던 터라,

할미에게 막둥이 증손자가 태어났음을 알리고 싶어 정한 날이기도 했다.

여전히 할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할머니 푹 자고 있어. 나 일 좀 할게."


나는 노트북을 열고 할미 옆에서 대본을 수정했다.

할미 옆을 지키면서 일을 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하루치 대본을 서둘러 고치고,

잠든 할미를 확인한 뒤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이제는 익숙해진 땀범벅 우비를 벗으니,

뜨거운 8월이 지나간 9월 첫날의 선선한 밤공기가 느껴졌다.

고생스러웠을 할미의 봄과 여름이 지나고,

곧 가을이 다가왔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냄새였다.


잠시 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늘 그랬듯 병원 앞 벨을 눌러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출입문이 열리기 전까지,

할미의 1인 병실에 시선을 두었다.


할미의 맥박을 체크하는 환자 감시장치 모니터에 빨간 불이 깜빡거렸다.

나는 문을 열어준 간호사에게 불이 들어왔음을 알리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간호사는 종종 이럴 때가 있다고 했다.

나는 할미 옆에 앉아 오류가 바로 잡히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마다 측정하는 혈압의 결과를 지켜봤다.

할미의 혈압은 수치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상황을 깨닫지 못했던 나는,

그저 깊이 잠들어 보이는 할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재차 혈압을 재다 분주히 병실을 나간 간호사들을 보다가,

할미를 등지며 일어났다.


나는 허연 벽을 바라보며 과호흡을 느꼈다.

할미가 떠났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그리고 이 순간이 오면 할미에게 해주고 싶었던 준비한 말들을

침착히 가슴 안에서 추렸다.


늘 내게 익숙한,

살짝 입을 벌려 달게 자던 모습의 할미였다.

나는 할미의 앞머리와 이마를 살살 쓰다듬었다.


"할머니. 지금까지 막내손자 잘 키워주셔서 고마워요.

사랑하는 할머니. 정말 고생 많았어.

하나님 나라에서 아픔 없이 마음껏 소리 내고.. 걷고.. 뛰놀고...

그동안 먹고 싶었던 거 다 드시고 평안하세요. 행복하세요.

할머니 말대로 나 잘 살다가 올라가면 나중에 꼭 마중 나오고..

그래줄 거지?

할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많이 사랑해요."


할미 이마에 입을 맞추니 향긋한 살냄새가 났다.

할미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는 내가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