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할 것 같던 마음의 준비
나는 요양병원으로 함께 이동 중인 할미를 내려보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두려울 수 있을 할미에게,
재차 더 좋은 병원을 가고 있다며 걱정을 덜어주었다.
창문 사이로 뜨거운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난 할미에게 눈을 감으라 말했다.
할미는 두 눈을 꾹 감았다.
차창밖 풍경이 암담히 느껴졌다.
비로소 난 다가올 상황들을 예감할 수 있었지만,
할미의 시점에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내 멋대로 놓을 마음은 아니어야 한다.
도착한 요양병원의 주차장을 통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할미는 입원실에서 수속을 밟았고,
나는 형의 교회로부터 소개받은 간호실장을 만나
병원장실로 함께 들어갔다.
병원장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었다.
미리 전달받은 할미의 곤경한 몸상태를 잘 알고 있었고,
동시에 현재 상황도 잘 이해해 주었다.
다만 그는 내게 확고히 말했다.
"보호자의 마음으로 생각하기보다
할머니 입장에서 헤아려줘야 할 시기가 왔다.
연명치료는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
고 말했다.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의 마음을 먹고 왔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알고 있으니 고개는 끄덕일 수 있었다.
다만 울컥 밀려든 서러움,
불쌍한 할머니를 향한 마음이 뒤섞여
얼굴이 일그러지는 건 감출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눈물이 난 적이 언제였더라.
평생을 함께 마주한 사람과의
더는 마주할 수 없는 끝점을 각오해야 하니,
소리를 내어 울어도 요란할 건 없었다.
병원장실의 무거워진 공기를 밀어내고
우리는 할미가 있는 입원실로 향했다.
병원장은 할미를 따뜻하게 맞았다.
그는 할미의 두 팔을 잡아 서서히 위로 올리며,
"할머니! 기운 내서 치료 잘 받고 이렇게 스트레칭도 자주자주 해주면서 나아봅시다!"
힘주어 환영인사를 했다.
할미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이제 막 초점이 맞추어진 갓난아기를 보는 것 같은,
세상이 궁금해 죽겠는 표정으로 느껴졌다.
할미가 요양병원에서의 치료를 시작한 때에,
우리 집 바로 밑에 터를 잡았던 제비들은
낮에는 새끼들과 함께 시범비행을 하다가
밤에는 다시 모여 잠이 들었다.
몇 번을 반복했을지 모를 어느 날 밤,
제비 가족은 둥지만 남겨두고 떠났다.
떠나야 할 시기는 누가 알려준 걸까.
이제 때가 되었으니 가야만 한다고,
내년의 따스하고 풍요로운 계절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척도 없이 멀리 떠나버렸다.
그렇게 그해의 7월도 마무리되었다.
요양병원의 특성상 연세가 많으신 환자들이다 보니,
보호자는 더욱 코로나 예방에 신경 써야 했다.
코에 면봉을 찔러 넣어 음성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는
눈물나게 시큰할지언정 익숙해졌고,
마스크와 위생장갑과 비닐우비까지 착용하는 완전무장이 필요했다.
할미는 낮은 혈압 때문에 몇 번의 위기를 맞았고,
그때마다 힘겹게 고비를 넘겼다.
요양병원으로부터 할미의 혈소판이 부족해,
지정헌혈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도 나는 할미와 같은 A형이었다.
마침 다음날은 할미가 있는 요양병원과 가까운
일산의 녹화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이 있는 날이었고,
오전에 서둘러 헌혈을 하고 할미를 만난 뒤 녹화장에 오면 되는 일정이었다.
다음날 헌혈의 집을 찾아 혈압을 잰 뒤,
내가 사는 지역을 말했다.
별안간 직원은 헌혈이 불가하다고 답했다.
내가 거주하는 파주는 말라리아 감염 위험지역이므로
더욱이 여름철에는 헌혈을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이왕 뽑는 피, 허락만 해주면
목숨을 부지할 만큼만 덜어놓고 빼라 해도 될만한 위급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피 한 방울 마음껏 못 나눠준다.
우리의 딱한 사정은 방침에 가로막혀 위로가 최선이 되었다.
나는 애초에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마음이 조급해져,
미리 부탁해 놓은 주위 사람들에게 다시금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할미를 만나러 갔다.
나는 할미에게 여차저차 헌혈을 못해줘 미안하다 했다.
할미가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잡은 내 손에 힘을 주고 입술을 오므려 말했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할미가 어떤 마음인지 미안한 나는 안다.
내가 어떤 마음인지 고마운 할미도 안다.
나는 몸을 숙여 할미를 꼭 끌어안았다.
내가 할미를 위해 기도할 때
내 목숨을 나눠서라도 오래 살게 해 달라 했으니까
잘 털고 일어날 수 있다고 농을 던졌다.
할미는 웃으며 연신 고마움을 건넸다.
우리 둘 사이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가혹한 마음의 줄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아픔으로 흘러넘쳤다.
나는 할미에게 더는 미안하다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할미가 미안해할 것 같았다.
그 대신 한집에 같이 살면서도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마음 깊이 지니고 있어도 표현하지 못했던 고백은
몇 번을 반복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할미와 함께 살고자 했던 건,
할미와 행복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할미를 외롭게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순간에 내가 꼭 옆에 있어주겠다고 다짐했었다.
나는 땀방울이 가득 맺힌 비닐 우비를 벗고 녹화장으로 향했다.
이제 생각만 해도 질식할 것만 같았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