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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상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효과

‘문제는 곧 기회다’라고? 지랄 좀 하지 마라.

by Lyden

라고, 내가 지금 정말로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면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지금 현재 힘들어 뒤지겠는데,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란 소리니까. 너무 힘들어서 삶이 변화되었으면 하는 사람에게 ‘너의 그 고통에 감사하라’라는 말은, 어느 대단한 깨달으신 분의 입장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고통에 허덕이는 우리 중생들에게는 그냥 좆같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듯,


“우리는 모두 삶이 변화하기를 바란다.”


지금 힘든 사람이라면, 미래에는 조금 덜 힘들어 지기를 바라고, 지금 충분히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미래에는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난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현재의 모든 것에 있는 그대로 감사해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 소수이다. 대개는 내가 바라는 미래를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실현해 나갈 의욕이 없거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어(또는 체념하여) 현재에 만족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인간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바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나을 삶을 살 수 있을까?


우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일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란, 첫째로 문제가 해결된 삶이며 둘째로 욕구가 실현되는 삶이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이루어지면 다른 하나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은 사람 때문에 괴롭다. 그리고 무언가 때문에 괴롭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어떠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고통이라는 것은 기대와 욕구가 좌절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그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 ‘타인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었으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주었으면~‘이라는 욕구를 충족시키려 노력하지만, 그것이 왠지 매번 뜻대로 안 된다. 그럼으로써 삶에서 지속적으로 같은 좌절이 반복된다.


이처럼 만약 누군가의 삶에서 같은 패턴의 좌절이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같은 문제의 반복‘이란, 미해결 된 과거의 문제가 망령과도 같이 현재에 재소환됨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같은 패턴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같은 패턴의 행동이 반복된다. 같은 패턴의 행동을 반복해야 하는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법의 주문이 있다. ‘just fuxxing do it’이라는 주문이다. 이 주문은 실제로 매우 잘 작동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이 주문을 외우고 실천하면, 그 사람의 삶은 무조건 바뀐다. 왜냐하면 이 주문은,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주문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반복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조차도, 삶에서 이 주문을 사용하면 다른 패턴을 학습하고 다른 패턴으로 행동을 하기에 삶에서 이전과는 다른 결과를 얻어내게 된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나는 바뀌었다고’. 다른 사람들 역시 생각한다. ‘저 사람은 바뀌었다고’. 그리고 자신은 행복하다고 믿는다. 이것이 이 주문이 가진 힘이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위와 같이, 기존에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어 삶이 괴로웠던 사람이, 저 마법의 주문대로 ‘그냥 x발 x나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고 치자. 그때, 정말로 단지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저 주문을 사용해서 삶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 주문을 사용했을 때, 실제로 나타나는 문제들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지속성에 관한 문제.


만약에, 정말로 저 주문을 사용해서 하게 된 ’행동‘이 나의 진짜 근본적인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라면, 그 행위는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정말로 바라는 것이 아님에도 주변에서 너도나도 좋다고 하거나, 왠지 그걸 안 하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서 시작한 것이라면 그 행위는 절대로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뒤쳐질까 봐, 또는 손해 볼까 봐 ’불안해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불안함에 의한 것’과 내가 ’바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2) 학습의 속도


그런데 만약에,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의지로 그 행위를 이어나가게 됐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 1)의 지속성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면 거기서 끝인 걸까? 그렇지 않다.

이 'just fuxxing do it’을 통해 행위하는 행동자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회피 전략인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이 행동을 통해 얻게 되는 경험과, 그 경험으로부터 얻게 되는 학습이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된다. 즉, 실천과 경험을 통한 변화에 버퍼링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위는 하는데, 왠지 결과는 나오지 않고, 또 삶도 딱히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답답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3) 내면의 이질감(공허감)


인간은 타인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다. 남들은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은 나의 겉모습만 보고 저 사람이 지금 행복하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은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현실에서 체험으로써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리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나의 ‘진정한’ 욕구)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 아닌 경우에는, 그 사람은 스스로 알게 된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심지어 그 사실조차 회피한다 해도, 그 사람의 현실이 고통으로 점철됨으로써 결국 그 사실을 강제로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바라는 것(나의 진정한 욕구)의 실현은, 좌절된 욕구=문제(고통)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에, 현재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마주하지 않고서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실현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행위하기에 앞서, 현재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고통을 마주하여, 지금 나에게 좌절된 욕구가 무엇인지를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사실 현재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고통은, 그 안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좌절된 욕구를 발견할 기회이기도 하다. 즉, 누군가가 현재 너무나도 고통스럽다면, 역설적으로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런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잡다한 망상들과 자기합리화들이 사실이 아니라 말이다. 이것이 저 마법의 주문을 사용했을 때 실제로 나타나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저 'just fuxxing do it’이라는 강렬한 마법의 주문도, 타겟팅을 잘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 주문을 사용하기에 앞서,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문제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기저에 있는 욕구들이 드러나고 나서야 비로소, 저 'just fuxxing do it’이라는 주문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게 욕구가 드러나고 나서부터가 시작이다.


그 이후에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가 지금까지 언급한 마법의 주문 'just fuxxing do it’이다. 이것은 실제로 삶 속에 뛰어들어,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배워,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패턴(전략)을 학습하는 방법이다. 그렇기에, 이 과정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으며 그 시간은 힘들기도 하겠지만 굉장히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러한 시행착오와 고난의 시간 자체가 그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자신에게 자신이 바라는 삶을 선물해 준 ‘그 사람만의 서사‘가 된다. 그래서 이 방법은 충분한 변화가 나타나기까지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나 그 시간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상에서, 기존의 문제를 일으키던 패턴은, 새롭게 학습된 패턴에 의해 서서히 깨질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전략적으로 갈 수는 없을까?


그것이 두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아예 처음부터 문제를 일으켰던 패턴 자체를 끊어버리고 가는 것이다. 사실문제를 일으키는 패턴은 ’자기 방어적인 패턴'이다. 즉, 그 사람이 두 번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결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적인 회피행동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방어행동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욕구의 실현이 아니라, ’나를 괴롭게 했던 어떤 결과에 대한 회피‘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그 기저에 있던 진정한 욕구가 발견되면, 이 착각이 바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언가를 회피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그 사람의 에너지가,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실현하는데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욕구를 발견했다고는 해도 그것만으로 ’회피를 위한 방어행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여전히 그 사람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의 방향성이 물러나는 것에서, 두렵고 힘들지만 ’나아감‘으로 전환된다는 것이 정확한 묘사이다. 그렇기에 욕구가 발견되어도 여전히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회피하고자 하는 어떠한 결과 값에 대한 반응 자체를 해결해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상태에서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까지 있다면? 이때는 욕구를 실현하기가 훨씬 쉬어진다. 왜냐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방해물이 있는 상태에서 나아가는 것보다. 방해물이 없는 상태에서 나아가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역풍을 마주하며 달리기를 하는 것과 순풍의 지지를 받으며 달리기를 하는 것의 차이와 같다. 그렇기에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나아가 그 방법을 사용하여 그 모든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더욱이 이 모든 프로세스의 전제가 되는 ’진정한 욕구의 발견‘은, 그것이 발견되고나서부터 모든 것이 진실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그 진정한 욕구는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의식화하려면, 끝없이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것, 자신이 지금 체험하고 있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스스로 통찰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보통 이와 같은 과정은 적절하게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또한 훈련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최면상담은, 제대로 받는다는 가정하에, 최면분석이라는 기법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소하고, 또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사실은 바랐었던 진짜 욕구가 발견되도록 도울 수 있다.

그렇기에 이 just fuxxing do it’이라는 마법 주문을 사용하기 이전에, 이 마법주문이 작동하는 것을 방해하는 기저의 여러 원인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최면상담은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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