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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은 신비한 힘인가요?

만약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하세요

by Lyden

많은 경우, 사람들은 최면을 이상한 기술 또는 일반적이지 않은 신비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실제로 최면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상담을 하는 최면상담가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최면은 신비한 힘이 아니다. 최면은 앞선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듯,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자연스러운 인간의 능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기예인 것이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외부 환경과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외부환경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자극이 쏟아진다. 이런 엄청난 자극 앞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사용할까? 그것은 미완성된 뇌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성격은 유전인가 아니면 환경의 부산물인가? 이제와서는 당연히 이 두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우리는 타고난 하드웨어(DNA)에만 의지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족한(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할 아주 강력한 소프트웨어(전략) 또한 가지고 태어난다.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신경과학과 부교수인 데이비드 이글먼은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완성된 상태로 태어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화와 환경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 자연은 인간에게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뇌를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능력인 LIVEWIRED(생후배선)이다. 좀 더 익숙한 용어로는 신경가소성(뇌가소성)이 있다. 저자가 여기서 생후배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뇌가소성이라고 하면, 한번 변화된 상태가 그대로 쭉 유지될 것 같은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소성이 반증하듯, 인간의 뇌는 매우 유연하기에 우리의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변한다. 즉, 가소성의 원리에 의해 우리의 뇌내 신경망이 변성이 되어도, 다시 익숙한 환경으로 돌아오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번 변화한 후 쭉 이어진다는 뉘앙스를 배제하기 위해 저자는 생후배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변화의 정도가 얼마나 유연한가 하면, 실제로 시각적인 데이터를 뇌의 청각피질에 연결하고 경과를 지켜보자, 그 사람은 청각피질로 물체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각데이터를 시각피질을 통해 해석하고 사물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 시각을 담담하는 뇌의 부분이, 다른 감각중추들에게 점령당한다고 한다. 그렇게 뇌가 자신의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형태를 재조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하게 발달되고, 그를 통해 눈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물론 적절한 훈련과 기간이 전제되어야 한다,)


위의 감각데이터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피질을 다르게 연결한 실험은, 이처럼 우리의 뇌가(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데이터와 감각피질의 연결을 다르게 한 것만으로도 시각으로 시각데이터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청각으로 시각데이터를 인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48시간도 채 안되었다고 한다. 즉, 우리의 뇌는 불완전한 만큼 유연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경험과 자극을 기반으로 뇌를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렇게 '특정한 형태로 디자인된 뇌'는. 개인이 '체험하는 현실'이 된다."


심지어 우리 뇌의 유연성은 다음과 같은 특정 조건하에서는 더욱 부드러워진다.


1. 어른일 때보다는 어릴 때 더 유연하다.

2. 마음 놓고 쉬고 있을 때 더 유연하고,

3.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수동적일 때) 더 유연하다.

4. 그리고 매우 놀랐을 때(혼란스러울 때) 매우 유연하다.(이때는 사실 '연약해진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충격적이 경험을 한 짧은 순간에 무언가를 두려워할 수 있는 것이다.)


최면은 이 중, 2,3의 조건(간혹 4번까지)을 이용한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가면 바로 세션에 들어가지 않는다. 일단 내담자의 현재상태와 환경, 과거이력, 그리고 바라는 미래상들, 이런 것들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추려내고 회복의 방향성을 잡는다. 이를 최면상담에서는 사전면담이라고 한다. 그다음으로 하는 것이 본격적인 세션작업이다. 이때 가장 먼저 진행되는 것이 바로 '이완 학습'이다. 왜일까? 왜 최면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몸에 힘을 빼라던지 더 편안해진다던지 하는 그런 연습을 하는 걸까?


'위의 뇌가 부드러워지는 4가지 조건 중 2,3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몸에 힘이 빠지고 나른해지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냥 이대로 푹 쉬고 싶다. 이때, 그 사람은 수신모드(트랜스 상태)가 된다. 수신모드란 외부의 자극을 검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상태이다. 그리고 이 수신모드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사람은 최면가의 제안에 더 잘 반응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수동적이 된 상황에, 자신에게 이로운 안내가 들려오기 때문이다.(문제의 치유를 돕는 사람인 최면가의 안내) 이 상태를 암시반응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렇게 최면가의 말에 잘 반응하게 된 상황에서 이후 적절한 안내를 받으며 그 사람은 과거에 자신이 상처받았던 상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깊은 이완의 상태에서 그 상황을 '재경험(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원리에 대해서는 앞의 포스팅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렇게 생생하게 일어난 '재경험'은, 그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생리적 현상(감각자극)을 통해, 아주 수용적이고 부드러워진 우리의 뇌에 '외부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경험데이터'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극복과 넘어섬' 또는 '오해의 해소', '제대로 표현된 감정과 욕구'라는 새로운 경험이, 기존의 '좌절과 실패', '무력함과 통제 불가능', '요구되지 못해 욕망이 된 욕구'의 의미를 지니고 있던 기존의 경험을 대체해 버리는 것이다. 마치 이전에 그 문제에 의해 고통받지 않았던 상황에서 그 문제로 고통받는 상황으로 넘어갔었던 것처럼. 최면상담은 단지 이 메커니즘을 역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내담자의 뇌는 물리적으로 재디자인된다. 그리고 뇌는 곧 우리가 체험하는 현실이기에 뇌의 디자인이 바뀌면 그 사람이 체험하는 현실도 변한다. 이것이 최면으로 내담자가 회복되도록 돕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다. 그렇기에 최면은 어떤 초현실적인 힘이라거나 이상한 힘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명체로써의 능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기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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