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상담사가 말하는 심리상담이 효과가 없는 이유

최면상담도 효과 없는 이유.

by Lyden

무언가의 쓸모란 곧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본인이 바라는 효과를 보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상담가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가를 고려하기 이전에, 상담을 받음으로써 내담자가 정말로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졌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돈과 시간을 사용했음에도 내담자가 변화가 별로 없거나, 오히려 상처가 더 깊어졌다면 그 심리상담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누군가의 마음이 치유가 되도록 안내하고 싶다면(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으로 돈을 번다면) 이 부분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심리상담 세션들과 최면 세션들이 효과를 보지 못할까? 또는 효과를 보더라도 왜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감정의 해소. 그러나 프로그램은 그대로


심리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삶 속에서 어떤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가 나를 지독히도 고통스럽게 만드는데 나는 첫째로 그 이유도 모르겠고 둘째로 벗어나는 방법도 모른다. 그래서 마치 이것이 내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고 이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내 삶은 그대로다.


그러마 이런 반복되는 삶의 양상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여기저기 헤매게 된다. 그 과정상에서 심리상담 최면상담 각종 오컬트적 방법론들(타로나 점술 등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타로상담을 받고 났더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던가, 굿을 하고 나니 문제가 좀 개선되는 것 같았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최면상담이나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별 효과가 없이 돈만 날렸다거나.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심리적인 문제로 힘들다는 것은 어떠한 감정이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우울감이라던지 분노라던지 아니면 보호받지 못하는 느낌, 특정대상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이 때때로 올라오고(심한 경우 늘 그러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한 감정과 느낌들 때문에 삶 속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감정적 증상들은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도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나의 삶을 제한함으로써 내가 바라는 꿈, 소망, 목표를 이룰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이 감정, 이 감정만 발생하지 않으면 이 문제적 증상들만 해소가 되면 모든 것이 잘 돌아갈 것만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뮨제적 감정이나 증상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이 발생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에 있다.


프로그램이란 쉽게 말하면 습관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세상에 대비하기 위한 자원들을 완벽하게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뇌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을 훌륭하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완벽하게 셋팅된 상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매우 유연한 상태로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고(태어나게 되고) 그 뒤에는 외부의 환경과 상호작용을 해가며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발달시켜 간다. 생존을 위해, 번식을 위해,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욕구인 '의미(가치) 있는 삶'을 위해, 그렇게 세상에 반응하는 패턴을 만들어간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인 '생후배선(신경가소성)'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이러한.'학습'능력을 주었지만, 어찌 됐든 우리 인간도 생명체 이기 때문에 가장 본능적인 수준에서는 번식을, 그리고 번식을 위한 생존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발생한 어떤 경험이 나에게 아주 큰 고통을 느끼게 했다면, 우리의 뇌는 이 고통을 유발한 경험을 죽음의 위기로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어린 시기에 경험된 고통일수록 뇌의 가장 본능적인 부분에서는 그렇게 인지된다.


그리고 그렇게 어떠한 경험이 생존에 위험이 되는 것 즉, 죽음을 유발하는 경험으로 인식되게 되면 우리의 뇌에서 본능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은 그 경험을 유발한 대상을 죽음의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본능적 기능을 담담하는 부분의 수준에서 '죽지 않기 위해(생존하기 위해)' 그 경험을 유발한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즉, 그 경험을 유발한 대상으로부터 '회피'하는 반응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특장 경험을 유발한 대상과 상황에 대해 회피하는 패턴(프로그램)이 생성된다. 그런데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뇌가 그 경험을 유발한 특정 대상과, 그 경험을 유발한 특정대상과 유사한 (그러나 명백히 다른) 대상을 비슷하게 인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연인에게 폭력을 당한 여성의 경우, 남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남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그 여성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잘못을 한 것은(그 여성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전 남자친구 A 씨인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전 남자 친구 A 씨와 남성이라는 개념은 성별이라는 속성을 공유한다. 그럼으로써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 B 씨는, 남성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특히, 전 남자 친구 a 씨와 교집합 되는 부분이 많은 남성에게는 더 두려움을 느낀다.


이것은 남녀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어떤 여자에게 배신당해 크게 상처받은 남성이 여자 그 자체를 경계하고 불신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크면 클수록 더 강하게 발현된다. 즉, 너무 아파서(그리고 너무 죽을 것 같다고 인식이 되어서) 두 번 다시는 그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경계의 바운더리가 너무 넓어진 것이다. 그 넓은 바운더리에 걸리는 대상으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하게 하면, 다시 과거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특정한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꼭 사람이 아닐 수 있기에(발표공포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이 특정한 상황적 조건이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 경계를 위해 쳐놓은 바운더리에 걸리는 대상이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일상생활자체가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점철된다. 당연히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사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발생한 감정을 회피하고(억압하고) 긍정적인 말을 듣는다거나, (당신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인 것들에 집중하세요~라는 말이 이에 해당), 아니면 그 감정이 누군가에게 공감받아 해소된다고 한들(공감위주의 심리상담), 이미 형성된 프로그램에 의해 발생한 '감정'은 해소될 수 있어도, 프로그램자체가 건재하다면 삶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정말로 심리상담을 통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운명의 굴레(프로그램의 반복적 활성화)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프로그램을 부숴버릴 수 있는 심리상담세션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많은 경우에 심리상담세션들과 (최면세션들도 마찬가지) 주술, 타로와 같은 방법들이 이렇게 하지 못한다. 프로그램을 수정하여 내담자가 좀 더 자신다운 삶을 애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지 못한다. 애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무의식 수준에서 세상에 반응하는 대응 프로그램이 변화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프로그램에 의해 발생한 감정 수준에서 그것을 억압하게 하거나(멘탈을 강화하세요 등), 감정만을 해소하고 끝난다.(일시적 카타르시스)


가장 교묘한 것은 그 부정적인 상황에서 희망적인 관점을 발견하는 방식인데, 이는 기존의 프로그램이 충분히 해체되고 난 이후에는 더 적절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아주 유용한 전략으로 기능 수 있지만, 기존프로그램이 충분히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저 회피를 강화하는 회피전략일 뿐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사용되어야 하는 시점이 다를 뿐 유용하게 기능하는 전략인 것은 맞기 때문에, 이러식의 긍정적 관점변화야 말로 굉장히 교묘한 함정인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내담자의 삶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고통받음으로 인해서 이 전략이 적절한 시점에서 작절하게 사용된 전략인지 단순히 회피 강화 행동인지는 드러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상담이 정말로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일단 반드시 이 첫 번째 조건인 '내담자의 삶에 이제는 적합하지 않은 기존의 프로그램을 해체' 해야 한다.


그 뒤에 두 번째 필수 조건인 '내담자의 현재 삶에 적절한 새로운 프로그램의 생성'을 이루어 내야 한다. 이 두 번째 조건은,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된 후, 프로그램을 확장시킴에 따라 가능해진다. 물론 실제 상담상황에서는 이 붕괴와 생성을 동시에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조로 보면 기존 프로그램의 해체->새로운 적절한 프로그램의 형성의 구조가 맞기에 정말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내담자나 상담가라면 이 구조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다시 돌아와서 그래사 결론적으로 심리상담이 효과가 없는 이유는, 위의 기존 프로그램의 해체와 새로운 프로그램의 생성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기존프로그램의 붕괴와 새로운 프로그램의 생성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다루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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