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라도 빠지면 변화 안됨.
"기존 프로그램(패턴)의 붕괴와 새로운 프로그램의 생성"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을 학습한다. 그렇기에 과거의 경험은(특히, 5세 이전의 가족들과의 관계 경험은) 그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이 영향이 얼마나 강력하냐 하면, 거의 대부부이 이 5세 이전에 형성된 관계 맺는 방식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물론 살면서 기존에 형성된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변화시킬만한 긍정적인 경험이 있다면,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떠하든, 그 사람의 관계를 대하는 방식은 보다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관계 내에서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이라면, 이렇게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긍정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긍정적이기 않은 관계경험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자기 인식과 연결된다. 그럼으로써 이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소속과 사랑)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뿐 아니라, 일(능력)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애착대상과의 관계에서도 고통이 발생한다.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이때 이렇게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 외부환경(사람, 일, 사회 등등)에 대응하기 위한 패턴을 '무의식 수준에서 형성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무수한 프로그램들의 집합체가 바로 우리가 '나'라고 인지하는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나를 바꾸는 것' 즉, 변화하는 것이란 이 기존에 형성되어 있었지만 내 삶을 힘들게 하는 외부세상에 대한 대응 방식(프로그램)을 변화시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기 위해 사용해온 대응 전략이다. 즉, 생존을 위해 (비록 내가 바라는 방식이 아니었더라도) 만들어진 도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바꾸기란 굉장히 어렵다.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의 구조를 이해하고 적절한 전략을 사용하여 접근한다면 변화시킬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 말인즉슨, 이 프로그램에는 과거의 경험이 포함되어 있다. 경험은 몇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 경험을 경험하고 있는 주체인 '나'가 있고, 그 경험을 하게 만드는 외부자극인 '타인', '환경'이 있다. 그리고 그 외부자극으로부터 유발되는 '감정'이 있다. 감정은 외부자극으로부터 발생한 감각(느낌)이 보다 간단한 형태로 묶인 결과이기에 감정이 발생했다는 것은 그에 따른 감각이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다시 한번 생각을 일으킨다. 한마디로 우리가 외부자극을 경험할 때 생각/감정/느낌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이 세 가지 역시 포함된다. 그리고 그 외부 환경과 타인에 의해 일어난 자극 중에는 '사건'이 있다. 타인과 상황을 재료로 삼아 어떤 '일(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경험은 '나' '타인' '상황' '사건' '상태(감각/감정/생각)'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시스템처럼,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경험을 구성하고 이 경험이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에 따라 이 경험을 반복해서 일으킬지 회피할지가 결정된다. 그리고 이 경험이 부정적이었다면, 우리의 뇌는 두 번 다시 이러한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구축하게 된다. 그 전략이 바로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은 다시 경험+대응방식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이유 자체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지만, 이 프로그램대로 행동함으로 인해서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불안정한 애착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분리된 느낌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애착대상에게 다가가는 패턴을 보일 수도 있고, 아무리 요구해도 애정이 돌아오지 않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회피하기 위해, 애착대상에게서 멀어지려는 패턴을 보일 수도 있다. 전자는 불안형 애착이고 후자는 회피형 애착이다. 그러나 대개 그렇게 다가가거나 멀어지려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피하고자 아주 작은 신호에서 과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 형성된 프로그램이라도 그것이 내 삶을 괴롭게 만들고 있다면 그 프로그램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아도 되는 프로그램이다. 그보다 현재 자신의 상황에 더 적절한 프로그램을 새롭게 생성하여, 보다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얻어내는 삶을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기존의 프로그램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생성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의문자체가 심리치유의 모든 것이다. 심리치유란 이처럼 기존의 문제를 일으키는 프로그램을 붕괴시키고 그 자리에 새로운 더욱 적절한 프로그램을 생성함으로써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심리상담 전략들은 반드시 이 둘(기존 프로그램의 붕괴와 새로운 프로그램의 생성)을 모두 해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심리상담을 받아도 삶에 변화가 없거나 변화가 있어도 일시적인 수준의 변화만 있게 된다. 이것이 아주 많은 경우에 심리상담세션이 별로 효과가 없는 이유이다.
이번 장에서는 위의 두 요소 중 한 요소인, 기존 프로그램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앞에서도 말했든이 기존의 프로그램은 '나', '타인', '상황(배경)', '사건', '상태(감각/감정/생각)'의 집합인 경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험에 대한 판단의 결과로 좋고 싫음이 구분되고 좋은 경험이면 추구, 싫은 경험이면 회피의 패턴이 형성된다. 그런데 사실 이 프로그램은 마치 젠가와도 같아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겹겹이 쌓여 프로그램이 기능하도록 돕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렇기에 프로그램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젠가를 무너뜨리는 방법과 같다. 우리가 젠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젠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블록을 뺄 필요가 없는 것처럼,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 붕괴되기 위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를 다 건드릴 필요는 없다. 핵심적인 것들을 건드리다 보면, 마치 특정 임계점에 다달았을 때 젠가가 무너지듯, 프로그램도 저절로 붕괴하게 된다.
이때, 젠가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세 가지가 바로, '사건'.'상태(감정/생각/느낌)',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다룰 수 있으면 기존의 문제를 일으키던 프로그램을 붕괴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도 다른 요소들을 마치 접착제처럼 붙여 프로그램이 튼튼하게 잘 돌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 그렇기에 특정 프로그램을 유발하는 과거의 사건(기억)에 충분히 몰입한 채로, 그 사건으로부터 일어나는 감정을 해소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점차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 기억(사건)에 연관된 감정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것은 마치, 젠가의 블록을 하나하나 빼는 것과 같다. 접착제 역할을 하던 감정이 사라지며, 그 접착제에 의존해 존재하던 사건(기억) 역시 힘을 잃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을 해소하여 프로그램의 구조를 약화시킨 후, 그 기억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을 다룬다. 이때 다루는 '사람'이란,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담자가 기억하는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이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을 다루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그 사람이 현재 여기에 없음에도 불고하고 지속적으로 내담에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제의 그 사람이 아니라 트라우마적 상황이 발생했을 당시에 존재했던 그 사람에 대해 남아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을 여러 전략을 통해 다루고 나면, 그 사람에 붙어있었던 감정이 해소되고 접착제 역할을 하던 감정이 해소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향력도 약해진다. 그 사람 역시 '타인'으로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한 요소였기 때문에 그 구성요소였던 '사람'의 힘이 약해짐으로써 프로그램은 한 번 더 약해진다. 보통 이쯤 오면 기존의 프로그램은 이미 무너진 상태가 된다. 왜냐하면 트라우마를 유발했던 과거의 사건과 사람이 그것들을 마음속에 남아있게 하는 힘이었던 '감정'이 해소됨에 따라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핵심 3요소 중 세 가지가 사라진 것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이미 기존의 프로그램은 붕괴된 상태이다. 그리고 이렇게 프로그램이 붕괴되고 나면, (사실 붕괴해 나가는 중간중간) 이 프로그램을 현재 내담자의 상황에 적절한 더 유연한 프로그램으로 확장시키는 절차를 밟는다. 나는 최면 상담가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리프레이밍(관점 변화)을 통한 직접암시 또는 '긍정적으로 형성되는 미래상으로부터의 확신'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글은 최면상담기법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변화란 결국, 기존의 프로그램을 붕괴시키고 그것을 현재 내담자의 상황과 맥락에 맞는, 또는 내담자가 바라는 미래를 현실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확장하는 것이라는 것.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그 상담은 반쪽짜리 상담이 되고 효력을 크게 잃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인 프로그램이 변화하면, 당연히 그 프로그램의 집합체인 '나'도 변화한다는 것.
그렇기에 정말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위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자기 계발 방법론 또는 심리상담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누군가가 치유되도록 돕고 싶은 상담가라면 위의 두 가지 조건을 반드시 충족시키는 상담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