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foten Norway
어느새 낭만적인 이름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게 된 히치하이킹은. 그러나 북유럽에서는 여전히 여행자들 사이에서 성행하고 있다. 나 자신도 오대산에서 서울까지 히치하이킹을 한 적도 있고(그땐 트럭을 타고 왔다) 소백산 희방사 아래에서 제천까지 입대를 앞둔 청년의 승용차를 얻어 탄 적도 있다. 해서 내가 운전할 때 누군가 길가에서 손을 흔들면 잘 세워주는 편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가장 아름다운지는 모르겠 지만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의 레이네를 지날 즈음, 코너를 돌자 한 젊은 여자가 차를 세웠다. 생기 발랄한 금발의 여자였다.
"오(Å)까지 가세요?"
"네, 여기서 가까워요. 타세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서 태워준 건 아니다. 물론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서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차를 세우기를 했겠지만. 남자들은 대개 운전 중 눈에 띄게 아름다운 여성(들)이 길가에 서 있으면, 여성이 차를 세우지 않아도 스스로 서려는 준비를 하는 듯 속도를 낮추고 차마 액셀레이터를 꾹 밟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튼 그 여자를 태워준 건 결코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차를 세우자, 여자는 길 건너편에 대고 뭐라고 소리친다. '이봐, 드디어 걸려들었어'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는 내게
"친구가 있는데 함께 타도 될까요?"
하고 묻는다. 그러라고 했다. 뭐 난 애초에 다른 뜻이 있었던 게 아니니까.
그런데 일순간 난감해졌다. 그녀의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길 건너편에서 성큼 도로를 건너 내게 인사를 건넨다.
"신세 좀 질게요."
다른 뜻이 있어서 차를 태워준 게 아닌데 내가 괜히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동시에 낚였다는 패배감도 엄습해 왔다.
그래도 남자 친구는 밝은 성격의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도중에 간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 로포텐엔 얼마나 머무느냐 등등. 예의 바른 친구임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히치하이킹을 해서 차를 얻어 타게 되면, 얻어 탄 사람은 '중도'를 유지해야 하는 법. 말이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말이 너무 없어도 안 되고. 즉 종일 도로변을 따라 걷다가 서다가 하면서 세워주지 않고 휙-지나치는 차들을 보며 세상을 원망하고 신세를 한탄했을지 모를 자신을 구출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운전자에 대해 얼마간의 예의를 표하는 게 좋다. 처음 타고 나서의 간단한 대화, 그리고 잠자코 있다가 이따금 지루해질 무렵 시답잖은 말이라도 꺼내는 예의.
아이슬란드 스나이펠스외쿨Snæfellsjökull에 갔다가 귀여운 퍼핀들과 놀고 돌아올 때였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이 계속되던 그곳에서 웬 젊은 이탈리아 친구를 태웠다. 그는 말이 너무 없어서 문제였다. 사실 말이 없는 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큰 문제는 그가 끊임없이 몸 구석구석을 긁어댄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며칠 씻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그런 가능성은 희박하다. 스나이펠스외쿨은 매우 외딴곳이라 히치하이킹으로 그곳에 갔다 나오려면 최소 3일은 잡아야 한다. 오래 안 씻어본 사람은 알리라. 처음 하루 이틀은 좀 괴롭지만 사흘째가 되면 평화가 찾아온다. 안 씻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최소한 스스로 느끼기에는 말이다) 차 앞유리에 한가득 붙어 있는 벌레들의 사체 때문에 알레르기 같은 게 일어나서였을 수도 있다. 말없이 내내 몸을 긁적이는 그 때문에 한 시간가량 불편한 여정이 계속되었다.
그에 반해 같은 아이슬란드 후사비크Húsavík 가는 길에 태운, 고래 보러 그곳에 간다는 마시모Masimo 역시 이탈리아 친구였는데 그와 동행한 두어 시간 남짓은 내내 즐거웠다. 딱 적당히 말을 걸어주었고 딱 적당히 잠잠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이제 곧 아르헨티나로 일하러 간다는 그를 내려줄 때엔, 정이 들어버려서 빵집에라도 가 함께 빵이라도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오(Å) 인근에서 만났던 커플의 수법은 히치하이커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것이었다. 보통 운전자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을 태우는 것보다 한 사람을 태우는 것에 부담을 훨씬 적게 느낀다. 생각해 보라, 대가족이 이삿짐만큼 많은 짐을 쌓아 놓고 손을 휘저어 차를 위협한다면 누가 그들을 태워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