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보기 : 무관심의 미학

상대를 오롯이 눈에 담기 위해서는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by 외계인










가끔 드는 비뚤어진 생각이 있다. 관심이 과연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애정이 관심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끼니 한번, 한숨 한 번이 나의 심장을 요동하게 만드니까. 하지만 당연한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닌 것처럼, 요즘에는 지나친 관심에 상처를 받는 거 같다. 이 상처가 무서운 이유는, 나에게 관심이 있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과, 그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탓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관심이 가슴 아파졌을 까. 이유는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나를 믿어준다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다. 당연히 이 사람이라면 기다려 줄 거라고 믿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질문으로는 "그런데, 요즘 [ ]은 괜찮아?"가 있다. [ ]에 들어갈 말은 많다. 취업, 연애, 성적, 심지어 걱정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 이 경우가 더욱 상처가 되는 경우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는 사실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보자. 수능이 막 끝난 학생이 있다. 다행히도 한 개의 대학에 합격하였지만 이 학생이 만족할 만한 대학은 아니었고, 재수를 하기에는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재수를 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마음에 걸렸고, 재수를 하지 말자고 생각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결국 이 학생은 오랜 시간 고민을 결정한 끝에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수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이후에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옆집 사는 아주머니가 한번, 뒷집 사는 아저씨가 세 번. 질문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가족들은 더욱 지원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더해져 갔고, 학생은 재수를 결심한 것에 미안함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그만해 달라고 하기에는 야박해 보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가족 안에서의 분위기만 날카로워질 뿐이었다.







다음 이유는 떠올리기도 싫은 상처의 복기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라도 다시 생각하기 싫은 상황이 있다. 그 사건을 계속해서 들쑤시는 관심이다. 이런 상황을 보통 2 차가해라고 부르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성범죄의 피해자의 경우 사람의 관심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가해자에 대한 관심보다, 누가 피해를 당했는지 궁금해하는 일은 피해자에게 또다시 그날, 그 자리, 그 장소로 회귀하게 만든다. 그나마 회복되었던 마음조차 다시 난도질하게 되고 다시 회복의 출발점으로 사람을 끌고 온다.







필자의 경우,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이겨내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쌍하다고 말하거나 동정 어린 눈빛으로 보는 것조차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무관심 속에 두고 도움을 주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성경을 보면 "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본래의 뜻은 착한 일을 하고 그 일을 과시하지 말라는 겸손의 중요성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이 도움을 받고 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도와주는 행위가 보다 더 섬세하고 세심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적인 관심을 주되 적당한 선까지는 상대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무관심도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상대의 무관심에 감사함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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