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달살기가 유행이다. 많은 지자체에서 한달살기를 지원해주고 있는데, 특히 경남에서는 모든 지자체가 한달살기를 지원해 주고 있다. 명칭은 한달살기이지만, 실제로는 2일부터 ~ 29일 사이에 본인이 원하는 기간만큼 머무를 수 있으며, 지자체에서 숙박비와 체험비 일부를 지원해 준다. 4월 말에 경남 창원에서 공유경제 강의를 해 주기로 한 게 있어서, 그 옆 도시인 김해시에서 일주일 살기를 해 보았다. 김해에 일주일간 머무르면서 했던 특별한 경험과 일상적인 소소한 경험들을 같이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밤하늘의 별을 보다 : 김해천문대
도시에 살면서 별을 보지 못한 지 참 오래되었다. 물론 밤하늘의 별은 어디서나 존재 하지만, 도시의 밝은 불빛 때문에 도시에서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장면을 보기가 어렵다. 김해로 여행 가면서 밤에 김해천문대에 가 봐야지 생각을 했다. 남편과 아이랑 같이 밤에 김해천문대로 올라갔다. 조그만 천문대이긴 했지만 천체 관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약간 흐려 별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서, 직접 관측하는 것 대신에 가상별자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천문대 의자에 반쯤 눕다시피 앉아서 가상으로 비치는 별자리들을 보았다. 별자리에 대한 해설을 들으면서 천문대 천장에 비치는 무수한 별들을 보았다. 우리 눈에 보이는 저 별빛은 실제로는 몇억 광년 전의 빛이 온 것이고, 지금은 그 별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삶이 괴로우면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우주 속에서 나의 위치와 시간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광활한 우주에 내가 존재하는 시간은 아주 찰나에 불과할 텐데, 무슨 고민을 그리 많이 하고 살았나 싶다. 천문대를 내려오면서 길에 비친 "별을 본다는 것은 바쁜 일상에서의 작은 휴식이다"라는 글을 보았다.
김해천문대
2. 조상의 기원 : 허황옥 이야기
어릴 때 아버지가 조상의 기원 이야기를 해 주셨다. 김수로왕과 수로왕비인 허왕옥의 이야기인데, 일반적인 이야기에서 약간 변주가 있었다. 가야의 김수로왕이 인도에서 온 공주를 만나 결혼하여 10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중 일부는 아버지 성을 따라 김해김씨가 되고, 일부는 어머니 성을 따라 김해허씨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손 중에 한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황제의 성을 하사 받아 이씨가 되어 내 조상인 인천이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해김씨, 김해허씨, 인천이씨는 동성동본이 아니지만,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고 하여 같이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 세 성씨가 합쳐서 6백만 명 정도 되니까 우리나라 사람 약 10명 중 하나에 해당된다.
어릴 때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약간 전설 따라 삼만리 느낌으로 들었다. 그런데 김해에 와 보니 수로왕릉도 있고, 수로왕비릉도 있다. 더 결정적으로는 허황옥의 조각상 옆에는 김해김씨, 허씨, 인천이씨의 시조모가 허황옥이라는 이야기가 돌에 적혀 있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다는 허황옥은 참 대단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2천 년 전에 배를 타고 멀리 다른 나라에 결혼하러 왔고, 자식들 일부는 본인 성을 따르도록 했다는 것을 보면 요즘 기준으로 보아도 시대를 많이 앞서간 것 같다.
2천 년 전이라 실체적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수릉원에서 수로왕릉, 수로왕비릉까지 이어진 가야의 길들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했다.
허황옥과 가야의 길
3. 일상의 발견 : 동네 여행자
김해시청 옆의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면서 방전된 휴대폰도 충전시키면서 잠깐 쉬어가고 있었다. 내가 김해를 일주일간 여행 중이라고 하니까, 시원한 물도 더 챙겨 준 상냥한 여주인이 '김해 뭐 볼 것 있다고?' 오히려 반문했다. 김해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니까 여기를 왜 여행하느냐 싶겠지만, 나는 사실 김해 여행이 참 좋았다. 평범하지만 하천을 따라 동네 공원을 산책하고, 도서관에 가고, 목마르면 동네 카페에 들르고 하는 동네 여행자로서 무수히 많은 소소한 기쁨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행 중간에 하루는 비가 많이 와서 야외 강변으로 나가려던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숙소 근처에 있던 율하도서관에 가서 책도 몇 시간 읽고, 근처 꽃집에서 꽃바구니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도 들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새로운 동네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즐거움도 컸다.
김해율하도서관
계절이 4월이라 그런지 동네 어디를 가더라도 하얀 꽃이 만개한 이팝나무 가로수길들이 있었다. 이팝나무는 원래 물푸레나무과인데 하얀 꽃이 폭죽처럼 핀 모습이 쌀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팝나무라고 불린다고 한다. 옛날 배고프던 시절의 조상들은 이팝나무의 하얀 꽃이 많이 피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하얀색 꽃들이 연초록의 주변 나무들과 어울려 4월의 싱그러움을 빛내고 있었다. 사실 이팝나무는 내가 사는 우리동네에도 많고, 전국 어디에나 많은 나무다. 옛날에 읽었던 어린이 동화책 파랑새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행복은 원래 내 주변에 있는데, 멀리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도 있지만, 여행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다. 내 경우에는 사실 김해에서 워케이션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김해를 관찰하면서 글도 쓰고 강연 준비도 했다. 경남연구원에서 했던 강연에서는 공유경제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이나 사례도 소개했지만, 내가 경남 김해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김해에서 직접 타 보았던 공공과 민간 공유 전기자전거의 장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고, 김해시청 옆에 있던 남산벽화마을을 보면서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느꼈던 이야기도 해 주었다. 오래된 낡은 마을에 벽화를 그려서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김해의 신도시 지역인 율하지구에서 본 도서관, 스포츠센터, 공연장 등이 같이 있는 김해서부문화센터 같은 복합문화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김해 남산벽화마을
김해서부문화센터
이번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일주일 여행 동안 이틀은 남편과 아이와 같이 했고, 오일은 나 혼자 있었다. 이틀은 김해한옥체험관이라는 전통한옥에서 묵었고, 사 일간은 신도시 호텔에서 묵었다. 구도심을 여행했고, 신도시 주민들처럼 일상을 살았다. 길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과거, 현재, 미래를 보았다.
모든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여행 첫날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즐거운 나의 집전시를 보았다. 집에만 머물면 집의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 특별함과 평범함이 같이 결합되어야 삶이 완성된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아이를 돌봐야 해서 등등 여행을 가지 못할 현실적인 이유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다 해결될 때가 있을까? 삶에서 가끔씩은 내가 사는 동네를 떠나 여행을 떠나 보자. 삶이 주는 뜻밖의 선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 돈이 없거나 공식적으로 여행 갈 핑계가 없어서 여행이 힘드신 분들은 경남형 한달살이를 신청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