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에도 유행하기는 했지만, 코로나 이후 한달살기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한동안 여행이 어려워졌다. 해외여행은 거의 불가능해졌고, 국내를 중심으로 제주도나 강원도 같은 휴양지에 펜션 등을 이용하여 가족 여행을 가는 것이 그나마 코로나 시대의 안전한 여행 방법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 이전과 이후의 여행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면, 재택근무도 일상화된 지금 워케이션을 겸한 한달살기는 어떨까? 엔데믹 시대의 한달살기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최근에 김해 한달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2일에서 29일까지 머무를 수 있고, 지자체에서 1박에 5만 원 한도로 숙박비를 지원해 준다고 하여, 일주일간 김해시에 머무르면서 여행을 하였다. 6박 7일간의 일정 중 처음 2일은 구도심 지역에 있는 김해한옥체험관이라는 한옥에서 머물렀고, 4일간은 신도시 지역에 있는 새로 지은 호텔에서 머물렀다.
완전히 다른 지역과 다른 성격의 숙소였기 때문에, 장단점이 확실하게 보였다. 처음 머물렀던 김해한옥체험관은 아름다운 외관에 한옥이 주는 정취가 느껴졌다. 처마 끝에 달린 풍경 소리도 아름다웠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소리와 장독대 옆에 핀 꽃들도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틀쯤 자고 나니까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 생활에 익숙해진 몸에는 방바닥에 이불 피고 자는 것도 약간 불편했고, 자물쇠로 방문을 여닫는 것도 약간 불편했고, 사생활 보장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일간 머물렀던 신도시 지역의 새로 지은 호텔은 일단 편안했다. 침대도 편안했고, 욕조도 크고 좋았고, TV도 크고 좋았다. 카드 형식의 호텔 키도 편했고, 일단 방에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다 보니까 별 특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이라기보다는 거의 모텔에 가까웠고, 호텔에서 주는 조식은 거의 매일 똑같았고, 호텔 방 구조가 어디나 거의 비슷할 것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일주일 살기를 하던 한달살기를 하던 다양한 숙소에서 자 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집을 바꾸기는 어렵다. 아파트에 살던 단독주택에 살든 최소 1년에서 평생을 살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얼마든지 다양한 숙소에서 살아 볼 수 있다. 하루는 별을 볼 수 있는 캠핑장에서, 하루는 아주 호화로운 호텔에서, 며칠은 오래된 농가 주택에서 등 다양한 숙소를 체험해 볼 수 있다. 물론 여행 중 숙소를 자주 바꾸면 짐 들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절충점으로 2~3 군데 정도 숙소를 정해 다양한 체험을 하고 그 지역을 알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한달살기를 위한 최고의 숙소는 어디일까? 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기존 내 브런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s://brunch.co.kr/@kw0762/102
김해에 일주일간 머무르면서 제일 많이 고민했던 것은 사실 숙소가 아니라 교통이었다. 숙소는 일단 정해지면 더 이상 고민을 안 해도 되지만, 교통편은 매일매일 실시간으로 여행의 폭과 질을 좌우했다.
처음 이틀간은 남편이 차를 가지고 와서 여행지를 데려다주었기 때문에, 아주 편안하게 이동했다. 조금 먼 거리도 차로 가면 금방이니까 하루에 여러 군데를 둘러볼 수 있었다. 맛집을 갈 때도 차로 가면 되니까 거리가 좀 멀거나 외진 곳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차가 가장 유용했던 날은 밤에 김해천문대에 올라갔을 때였다. 만약 차가 없었다면 밤에 산길을 올라갔다 내려와야 해서 나 혼자 천문대에 가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틀 뒤에 남편이 아이랑 집에 돌아가고 나 혼자 남았을 때 다양한 교통편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남은 5일간 방문할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이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은가? 걸어갈 만한 거리인가?로 바뀌게 되었다. 금란다원이라는 장군차를 내는 호젓한 찻집에 가 보고 싶었는데,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서 생각을 접었다. 진영역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갔는데, 자동차로 가면 30분이면 갈 거리를 중간에 버스 환승하고,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거의 1시간 반이 걸려서 갔다. 여행이니까 그냥 시간이 좀 오래 걸려도 바깥 경치도 보면서 천천히 즐길 수가 있었지만, 매일매일 출퇴근 길이 이렇다면 삶의 질이 팍팍 떨어질 것 같았다.
최근에 보고 있는 드라마 중에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서울에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애환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차가 없는 외곽에 사는 사람들이 삶이 얼마나 불편할 수 있는지 참 잘 묘사되어 있다.
https://tv.jtbc.joins.com/plan/pr10011434
출퇴근하는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겠지만, 여행도 교통수단에 의해 참 많은 영향을 받는다. 집에서 여행지까지 가는 교통편뿐만 아니라 여행지 내에서의 교통편이 여행의 질을 좌우하게 된다. 그런데 여행 교통편은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자가용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교통편을 섞어서 이용해 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에서 목적지까지 장거리는 KTX 기차를 이용하고, 여행지에서는 잠깐씩 쏘카나 그린카 같은 공유차량을 필요한 시간만큼 빌려서 이용할 수도 있다. 또 요즘 지자체에서 지원해 주는 관광택시를 이용하여 반나절이나 한나절 정도 그 지역을 편하게 여행할 수도 있다. 먼 거리가 아니라 1~2km 이내의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경우에는 전동 킥보드나 전기자전거를 이용해 볼 수도 있다. 내가 여행한 김해시에는 김해시가 운영하는 공유 전기자전거와 민간기업에서 운영하는 공유 전기자전거가 보였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속도와 자전거로 여행하는 속도는 같지 않다. 새로운 동네를 잘 알기 위해서는 빠르고 편리한 자동차가 아니라 때때로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걸어 보는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 돈, 체력 무엇일까? 그 모든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여행 가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는 시간은 있었지만 돈이 없었고, 직장 다닐 때는 돈은 벌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이 들어 보면 시간과 돈은 있어도 체력이 딸릴지도 모른다. 여행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들이 완벽하게 갖추어질 때는 아마 평생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가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나머지는 맞추면 된다. 시간이 없는 직장인도 한달살기는 모르겠지만 며칠 정도는 휴가를 낼 수 있고, 요즘은 노트북 하나 들고 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워케이션을 할 수도 있다. 돈이 없으면 버스 타고, 저렴한 숙소에서 묵으면서 돈이 별로 안 드는 여행을 해도 된다. 잘 찾아보면 경남에서 한 달 여행하기 같이 지자체에서 숙박비와 체험비를 지원해 주는 여행 프로그램도 많다.
내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공유경제적으로 보면 숙박은 공유숙박을 이용해 다양한 숙박과 체험 경험을 할 수 있고, 차량은 공유차량이나 공유자전거를 이용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고, 옷은 현지에서 빨래방을 이용하여 세탁하여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무거운 옷들을 많이 가져갈 필요도 없다. 일도 현지에 있는 공유오피스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노트북 하나 들고 가면 된다.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가고 있고,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에 우리는 이제 익숙한 집을 떠나 다양한 지역으로 한달살기를 떠나 볼 때가 되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었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행복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