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을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행 가고 싶다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런데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다. 기존의 여행이 유명한 장소를 많이 가보는 것 위주였다면,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그보다는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단거리 위주의 짧은 여행도 좋지만, 한달 살기 같은 현지인의 삶을 여유롭게 누려 보는 여행도 좋을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 세 번의 한달 살기를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경험했던 서로 다른 한달살기 숙소를 기반으로 코로나 이후의 한달살기를 위한 최적의 숙소를 찾아보았다.
지난 10년 동안 아이들과 세 번의 한달살기를 했다. 2012년 프랑스 파리 언니 집에서 한달살기, 2015년 제주도 펜션에서 보름살기, 2018년 필리핀 세부 호텔에서 한달살기를 했다. 숙소의 형태와 기간과 목적이 제각각 다른 한달살기였다. 이 경험들을 기반으로 최고의 한달살기 숙소를 찾아 보았다.
언니가 파리에 몇 년 사는 동안, 여름방학에 아이들 데리고 언니네 집에 한 달간 살러 갔다. 파리도 관광하고 언니 가족이랑 프랑스 남부 쪽으로 같이 여행도 같다. 다양한 것들을 보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아 나에게나 아이들에게 최고로 행복한 경험 중에 하나로 남았다.
친지의 집은 아마 가장 비용이 적게 들면서 안전한 숙소일 것이다. 내 경우에도 언니 집이 없었으면 방값 비싸고 물가 비싼 파리에 한달 가량 묵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프랑스에서 나 혼자서 아이들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프랑스어로 기본 소통이 되고 현지 생활을 어느 정도 아는 언니 가족이 있었기에 편안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구나 국내나 외국 유명 관광지에 친지가 사는 것은 아니다. 또 산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숙박은 민폐가 되지 않을까 망설여진다. 언니 가족도 넓은 집에 사는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 가족이 가 있는 한 달 동안 조카가 자기 방을 내주고 거실 한구석에서 잤다. 사실 언니 가족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같이 보낸 행복한 추억들이 많이 남아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2015년 여름에 제주도 펜션에서 보름 살기를 했다. 원래는 여름방학 한달살기를 하려고 했는데, 제주도 여름의 엄청 더운 날씨를 고려하면 보름살기만 한 것이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달살기 카페를 통하여 제주도에 있는 펜션을 보름간 임대하였다. 자연하우스라고 정말 자연 속에 있는 것 같은 넓은 정원을 가진 펜션이었다. 주인이 정원 딸린 집을 매입해 한달살기 숙소를 처음 운영해 보는 분이어서 모든 것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이랑 같이 바비큐 파티도 하고 맥주도 마시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처음에 아이들이랑 차도 없이 갔기 때문에, 첫날 장보는 것도 집주인이 차로 도와주었다. 숙소가 침실뿐만 아니라 작은 주방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음식을 해 먹기도 좋았다. 주방에는 조리 도구뿐만 아니라 그릇도 넉넉하게 있어서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도 여러 번 했다.
보름 동안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 숙소를 거쳐갔다. 처음 제주도로 내려갈 때는 부모님과 아이들하고만 먼저 내려갔는데, 중간에 남편이 일주일 휴가를 받아서 왔고, 옛 친구들이 하루 놀러 왔다. 마지막 며칠은 나와 아이들만 남아 호젓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생각하는 한달살기의 장점은 현지의 특별한 삶의 체험과 일상적인 삶이 같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인 것 같은데도 참 다양한 체험을 했다. 바닷가에도 놀러 가고, 온천에도 가고, 비자림을 거닐기도 하고, 말을 타러 가기도 하고, 지역 미술관에 가기도 하는 등 현지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들을 했다. 동시에 이곳이 내 집인 것처럼 시장에도 가고, 도서관에도 가고, 산책도 가고, 빨래도 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기도 했다.
한달살기의 단점도 물론 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의 경우에는 한 달을 온전히 휴가 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한 달 정도 가능한데, 덥고 춥고 해서 여행하기가 좋은 계절이 아니다. 또 여름과 겨울 방학 기간은 성수기라서 숙박 요금과 교통비 등 모든 요금이 비싸진다. 결국 가장 날씨가 안 좋은 계절에 가장 비싼 요금을 내고 가장 혼잡한 시기에 묵어야 하는 단점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현실적인 방안은 꼭 한달살기를 고집하지 말고, 날씨 좋은 계절에 일주일이나 보름 정도 머무르는 것이다.
한달살기 숙소는 내 경우에는 한달살기 카페를 통해 정보를 얻었지만,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 에어비앤비의 경우에는 숙소뿐만 아니라 현지 체험도 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체험을 하기에도 좋다.
*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한 달에 한 도시씩 여행하는 부부가 있다. 이 부부가 쓴 책이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한달살기에 현실적 도움이 될 것 같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653544
두 달간 아이들 데리고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었다. 처음 한 달은 세부 시골 지역에 있는 리조트형 어학원에 있었고, 다음 한 달은 세부 시내 호텔에서 있었다.
명목이 영어연수였지 사실은 아이들과 현지 체험하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어학원에만 있지 않고 다양한 체험들을 하러 다녔다. 필리핀은 생각보다 시설들이 열악하고 좋지 않은 점들도 일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친절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좋은 체험들이 가능했다.
호텔에서 한달살기를 해 보니까 장단점이 바로 보였다. 먼저 장점으로는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점이다. 청소도 해 주고, 다양한 식당도 안에 있고, 수영장과 편의시설도 많았다. 또 에이비앤비 숙소에 비해 안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점으로는 며칠 지나고 나니까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호텔이고 편의시설도 많았지만, 전 세계 어느 호텔이나 있는 시설들 이어서 특별한 현지 체험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세부 시골 지역에 있는 리조트형 어학원에 있을 때는 시설이 좀 낡긴 했지만, 지프니 같은 독특한 현지 교통수단도 타 보기도 하면서 현지인들의 삶을 눈앞에서 바로 체험해 보기도 했다. 세부 시내에 있는 대형 호텔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현지인의 삶과는 유리된 관광객의 삶을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비용 측면에서도 현지인들에게 호텔에서 한달살기는 무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물가 차이가 크고, 한달살기용으로 큰 폭의 숙박 할인을 해 주었기 때문에 한 달에 백만 원 정도로 숙박이 가능했지, 우리나라 호텔에서 한달살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코로나 때문에 호텔 운영이 어려워 한달살기 숙소나 공유 주거 등으로 호텔들이 변신하고 있다는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도심에 있는 호텔부터 관광지에 있는 호텔까지 다양한 호텔들이 한달살기 숙소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호캉스족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맨들의 장기 투숙 수요까지 다양한 새로운 수요가 있다고 한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2JQ7LTQFZ
사실 한달살기를 위한 최고의 숙소에는 정답이 없다. 친지의 집에서 같이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갈 수도 있고,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현지인의 삶을 같이 체험해 볼 수도 있고,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호텔에서 안락하게 한달살기를 할 수도 있다. 내가 가진 경비와 내가 처한 상황, 내가 원하는 바에 따라 최고의 숙소는 사람마다 다르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하나가 다인 경우가 많다. 여러 개의 다양한 집을 소유하지는 못하겠지만, 여행 가서 다양한 숙소에 머물러 볼 수는 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의 경우는 단독주택을 빌려서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해 볼 수도 있고, 한옥주택에 머물러 볼 수도 있고, 사막의 텐트에 머무르면서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을 볼 수도 있다. 소유에 대한 집착만 버리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요즘 지자체 지원 한달살기 프로그램들이 많다. 지자체에서 이틀에서 한 달 사이의 숙박비와 체험비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경남 한달살기 프로그램들이 제일 많이 나왔고, 전라도나 다른 지역에서도 군데군데 나오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그 지역 홍보를 목적으로 시작하였지만, 이를 기반으로 그 지역에서 살아보고 정착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돈이 없어 아무 곳도 가지 못한다고 미리 포기하지 말자.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중요한 것은 내 집에서의 익숙한 삶도 좋지만, 가끔씩 다른 지역에 살아보고 다른 체험을 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 지자체 지원 한달살기 프로그램은 노을잎&까망잎 부부의 아래 블로그 글을 참고 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jyh3211/222409340889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