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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원 Nov 22. 2022

공간 업사이클링

일반적으로 업사이클링이라고 하면 버려지는 물건에 디자인과 활용성을 더해 가치를 높이는 일을 말하는데, 공간에도 동일한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버려지거나 노후한 건축물을 활용해 디자인 요소를 접목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공간 업사이클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버려진 창고나 공장 등을 활용해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나주에도 많지는 않지만 오래된 건물들을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시킨 공간 업사이클링 사례들이 있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공간 업사이클링 사례들을 통하여 공간 업사이클링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공간 업사이클링 외국 사례


잘된 공간 업사이클링 사례들을 보면, 기존 건물의 외관 모습을 어느 정도 살리면서도,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원래의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업그레이드하고 공간 활용성을 높이는 것 같다.  

 

프랑스 파리에 가면 오르세 미술관이라고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이 있다. 원래 기차역이었는데,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기차역 건물을 활용해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화가들 작품을 모아 놓았다. 파리에는 루브르 박물관이라는 오래되고 큰 박물관이 있지만, 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그림들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그림들이 좋았다. 공간이 주는 영향 때문인 것 같기도 한데, 루브르 박물관의 어둠침침하고 사방이 막힌 답답한 공간에서 보는 그림들보다, 오르세 미술관의 밝고 탁 트인 공간에서 보는 그림들의 느낌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사진 출처 : 오르세 미술관, 위키백과


기차역과 미술관은 일견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지만, 기차역의 길쭉한 공간과 사방이 유리로 되어 빛이 잘 들어오는 공간감을 잘 살려 특히 빛의 감각이 중요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잘 전시한 것 같다.


사진 출처 : 오르세 미술관, 위키백과


2. 공간 업사이클링 국내 사례


(1) 나주 영산나루

나주에는 영산나루라고 일제시대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 건물 주변을 리모델링하여 찻집과 레스토랑, 펜션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 있다. 주인이 차에 취미를 가지고 오랫동안 차 공부를 해 오신 분인데, 나도 이분에게 몇 년 전에 차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가끔씩 방문하였는데, 최근에 여기서 공유경제포럼도 개최하였다.


https://brunch.co.kr/@kw0762/131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차 수업을 다시 받고 있어서 매주 가고 있다. 아름다운 영산나루 공간을 계속 보다 보니까, 그 역사와 변천사 그리고 공간 업사이클링이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 제시해 보고 싶어졌다.


나주 영산나루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일제시대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 건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영산재의 경우는 191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 그 옆에 찻집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류정의 경우는 1940년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영산나루의 본체에 해당되는 빨간 벽돌 지붕의 서양식 레스토랑 건물은 비교적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그 옆에 여러 명이 숙박할 수 있는 펜션 건물도 있다.


사진 :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
사진 : 나주 영산나루 성류정과 본관 건물


건물의 역사도 오래되고 하나하나 아름답지만, 그 안의 인테리어도 남다르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여주인의 취향을 반영하여 소품 하나하나도 우아하고 색다르다. 차를 좋아하는 주인의 취향을 반영하여 차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고, 다양한 문화행사도 개최되고 있다.


사진 : 나주 영산나루 영산재 차수업


(2) 3917마중

나주 구도심에 보면 3917마중이라는 독특한 복합 문화공간이 있다. 1939년에 지어진 가옥을 1917년에 리모델링하였다고 3917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메인은 카페인 것 같은데, 고택 숙박체험도 하고, 의상 대여, 다양한 만들기 체험행사도 하고 있다. 나주향교 옆에 4000평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어 단순히 차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천천히 산책하면서 계절을 느끼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사진 : 3917마중


3917마중은 음료와 디저트에 있어서도 일반 카페와는 좀 다른 특이점이 보였다. 나주의 가장 유명한 특산품인 배를 활용한 음료와 배 양갱과 같은 디저트를 메인 메뉴로 선 보이고 있었다. 특히 나주배 한상이라고 다양한 음료수와 배로 만든 디저트를 고택에서 한가롭게 앉아서 먹어 볼 수 있는 메뉴는 일반 카페와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보고 있으면 지역의 특산품과 공간의 특성을 잘 살린 노력은 정말 칭찬해 주고 싶다.


사진 : 3917마중 나주배 한상 디저트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음료를 포함하여 숙박, 체험 등의 가격이 조금 비쌌다. 넓은 공간을 유지 관리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 비용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손님이 점점 많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음료와 체험 서비스의 비용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내릴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전주 한옥마을의 경우 마을 전체가 한옥마을로 운영되고 있어 볼거리도 훨씬 많고, 체험의 종류도 다양한데 가격은 더 저렴한 비용을 받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가성비로도 환영받고 있다.  


사진 : 3917마중 체험 안내


3. 공간 업사이클링이 나아갈 방향


(1) 공간 역사성의 보전

건물이 오래되었다고 헐어버리는 것 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건물이 가진 역사성과 세월이 주는 느낌,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수많은 사건사고들과 추억들을 잘 보존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영산나루 정원에 보면 250년이 넘은 아주 오래된 큰 팽나무가 있다. 시에서 나무를 보전한다고 큰 쇠 막대기를 받치고 가지치기도 이상하게 해서 나무 모양을 망쳐 놓았다고 영산나루 대표는 볼 때마다 한숨을 쉰다. 공간을 보전한다는 것은 건물의 외형적인 보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 한그루, 꽃 한그루, 그 안의 소품 하나하나까지 그 공간의 역사성을 살리면서 공간과 잘 어울리게 만드는 것도 의미한다.


사진 : 나주 영산나루 팽나무


3917마중을 지나가다 보니까 금목서 향이 났다. 향수의 원료로도 사용되는 향인데 향기가 참 좋다. 사람이 공간을 추억하게 만드는 것은 꼭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건축물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 공간에 지나가다 은은하게 스쳐 지나가는 독특한 향기가 오래된 추억을 소환할지도 모른다.


사진 : 3917마중 금목서 향기


(2) 공간의 새로운 해석

영산나루의 가장 오래된 건물인 영산재는 일제시대 문서고로 사용되었다. 원래 그 건물의 용도로 보면 문서 보관이나 도서관 정도가 그 용도에 적합해 보이지만, 지금은 퀸즈 티 아카데미라는 차 교육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내부 구조를 그 용도에 맞게 일부 개조한 영향도 있지만, 오래된 공간에서 우아한 차 세트를 앞에 두고 차 교육을 받고 차를 마시는 것도 나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 나주 영산나루 영산재 차교육 공간


나주 영산나루는 주변에 홍어의 거리가 있고, 홍어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의 끝에 찻집과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동네와 전혀 이질적인 장소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앞에 아름다운 영산강이 흘러가고, 아름다운 정원을 보면 충분히 고급화 가능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 나주 영산나루와 영산강


3917마중의 경우에도 옆에 나주향교가 있고, 주변에 아름다운 금성산이 있고,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 주변여건을 살린다면 더 아름다운 공간으로 업사이클링 가능할 것 같다.


사진 : 3917마중 산책로


(3)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의 접목

모든 건물은 지어지는 시대의 건축기법과 소재를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옥 건물이라고 옛날식으로 건축 자재를 쓰고, 옛날식 내부 구성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겉은 기와를 올린 한옥 건물이라도 안에는 편리한 수세식 화장실과 현대식 주방을 가져갈 수도 있다.  3917마중에 있는 근대문화유산인 목서원의 경우도 1939년에 지어진 건물인데 서양과 한옥, 일본 가옥의 성격을 모두 합친 건물 구조라고 한다.


사진 : 3917마중 목서원


특히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게 될 경우 외형적인 부분은 기존의 모습을 살리더라도 내부 구조는 현재의 용도에 맞게 다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오래되었다고 꼭 더 나은 소재나 기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이라는 비디오 아트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기존 1980년대에 생산된 CRT 모니터 1003개를 탑처럼 쌓은 기념비적인 작품인데, 사용된 TV 모니터들이 노후화되어 꺼지고 해서 가동이 중지되기도 했다. 더 이상 생산되지도 않는 TV 모니터 원형을 고집하느라고 작품을 제대로 켜지도 못하는 것은 원제작자인 백남준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시대를 앞서간 백남준이라면 요즘 나오는 첨단 모니터를 사용하여 작품을 업그레이 하는데 호탕하게 동의했을 것 같다.  원형 그대로의 보전이라는 집착만 버린다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예술작품을 더 임팩트 있게 관람객들에게 선 보일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백남준, 다다익선, 나무위키, 위키백과


영산나루 이희정 대표와 이야기하다 보니까, 영산재와 성류정 같은 100년 가까이 된 건물들은 아무리 그 시대에 최고의 자재로 지었다고 해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단열이나 냉난방에 어려움이 있었다. 건물의 원형 보전만이 답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의 더 나은 기술과 디자인으로 보강하면서 더 나은 용도로 활용하게 하는 것이 공간 업사이클링이 나아갈 방향인 것 같다.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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