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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원 Jun 20. 2020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어 오면 막상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이 중에 하나만 집어서 말할 수 있느냐'라고 답할 때도 있고, '그때그때 달라요'가 솔직한 답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서 꾸준히 먹어 왔던 아늑한 음식은 있다. 보통 소울푸드(Soul Food)라고 불리는 음식이다. 내 경우에는 금방 만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다. 그냥 만두도 아니고, 마트의 냉동만두는 더더욱 아니고, 그 자리에서 만들어 바로 쪄주는 만두다. 나의 소울푸드인 만두의 역사를 찾아 떠나 보자.



어릴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 중에 하나가 아빠랑 동네 산책을 가는 것이었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셨던 아빠는 시간 여유가 좀 있어셨던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이 어렴풋이 오기 전에 나를 데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셨다.


우리 집은 도심 주택가에 있었지만, 내가 살던 곳은 지방 소도시여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연초록 물이 올라오는 논두렁 길을 걷거나,  봄날에 노란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휘날리는 꽃길을 걷는 것도 좋아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빠랑 동네 산책길에 먹던 맛있는 음식이었다. 아빠는 내게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팥빙수를 포함하여, 동네 빵집에서는 그 당시 유행했던 햄버거와 사라다빵을 사 주셨다. 냉면을 포함하여 상당히 다양한 음식을 사 주셨지만, 내 기억 속에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분식집에서 아빠랑 같이 먹었던 만두였다. 일반적으로 수십 가지의 음식을 하는 분식집과는 다르게 만두를 전문으로 하는 분식집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금방 만든 만두를 쪄 주었다. 사실 이 집 만두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은 군만두였다. 집에서 일반 후라이팬에 굽는 기름기 많은 군만두와는 다르게, 센 불이 있는 화덕에 이중 후라이팬으로 구워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했다.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미에 아빠 따라 열심히 산책을 다녔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랑 같이 산책 길에 먹은 음식들은 아이들에게 추억을 준다. 아이들은 고행 같은 산책길이 아니라, 하하호호 웃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었던 부모와의 즐거웠던 꽃길로 평생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음식을 잘 만드셨다. 주부 대상 요리대회에서 상을 탄 적이 있을 정도로 요리에 재능도 있었지만, 식구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기 위해 엄청난 정성을 쏟으셨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부담스러웠을 때가 있었다. 고3이 되었을 때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학교에 남아서 하게 되었다. 어릴 때 몸이 마르고 약했던 나는 사실 하루 12시간 넘게 학교에 남아 공부할 만한 체력이 안 되었다. 특별히 큰 병은 없었지만, 항상 몸이 약해 감기에 자주 걸려 비실비실 되었고, 입이 짧아 밥도 잘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가 저녁 도시락을 학교에 갔다 주시겠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요즘 같은 학교 급식도 없었을 때라, 아침에 점심과 저녁 도시락 2개를 미리 가지고 가야 했다. 안 그래도 입이 짧은 딸이 저녁때쯤에는 완전히 식은 찬밥 도시락을 먹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던 엄마는 금방 한 따끈따근한 밥과 새로 만든 반찬을 먹이고 싶으셨던 것 같다.


엄마는 저녁때쯤 새로 한 밥에 다양한 반찬을 담은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오셨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밥과 도시락 반찬, 국 정도였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잘 먹는 금방 만든 만두 같은 특별식도 해 가지고 오셨다. 엄마는 내가 먹는 음식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먹는 양까지 고려해 넉넉하게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오셨다. 친구들은 엄마가 무슨 음식을 해 가지고 오는지 기다렸다가, 자신들의 도시락이 아니라 내 도시락 음식을 먹고 싶어 했다.  같은 반 아이들 사이에서는 점점 내 도시락 반찬이 화제가 되었다.


사실 나는 엄마가 학교에 도시락 가지고 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언니와 남동생은 금방 만든 도시락을 학교에 가져다주겠다는 엄마의 제안을 단칼에 뿌리쳤다. 그렇지만 엄마의 정성에 마음이 약했던 나는 엄마에게 차마 학교에 그만 오시라는 이야기를 못했다. 그 대신에 야간 자율학습을 그만두었다.


엄마는 요즘도 나에게 음식을 만들어 택배로 보내신다. 결혼하기 전에 같이 살 때도 항상 식탁이 넘치게 다양한 음식을 차려 주셨지만, 결혼한 후에도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나를 위해 김치를 포함하여 엄청난 양의 반찬과 국을 새로 만들어 바리바리 싸 주셨다. 힘들게 이렇게 안 해 주셔도 된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직장 다니면서 아이 키우는 딸을 위해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게 음식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한사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서울의 직장을 관두고 멀리 남쪽의 소도시로 이사한 후에는 처음에는 거리가 수백 킬로 이상 멀어졌으니까, 엄마가 더 이상 음식을 만들어 보내시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의 병간호로 힘드실 텐데도 택배로 김치와 반찬을 한 박스씩 보내신다. 엄마가 보낸 음식들 속에는 꼭 만두가 들어 있다. 금방 만든 만두를 쪄서 냉동실에 얼려 놓았다가, 아이스팩에 넣어서 보내시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풍경을 보면 엄마가 엄청난 양의 만두를 만드는 모습이 있다. 큰 김치통 가득히 속을 푸짐히 만들어 놓고, 직접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만두피를 만드신다. 금방 만든 만두를 큰 찜솥에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고춧가루를 약간 넣은 초간장을 찍어 먹으라고 같이 주신다. 금방 쪄준 찐만두가 뜨거워 호호 불어가며 먹고 있으면, 어느새 내 앞에는 만둣국도 놓여 있다. 마트에서 파는 냉동 만둣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 탱글탱글하고 안에 들어 있는 부추와 같은 야채들이 살짝 비추는 맑고 투명한 맛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 주는 만두를 제일 좋아하면서도, 엄마가 수백 개의 만두를 만드느라고 고생하는 것이 싫어서 만두를 그만 만들라고 싫은 소리를 하곤 했다.




사실 집에서 만두를 만들 필요는 없다. 만두는 집에서 만들기에는 너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도 모른다. 어설픈 솜씨로 만든 집 만두보다는 유명한 만두 전문집의 만두 맛이 더 좋을 것이다. 나만 해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만두 맛있다는 식당들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명동에 있었던 중국인이 하던 만두 전문점, 이태원의 군만두가 유명했던 쟈니덤플링, 정독도서관 앞에 있는 만두집 천진포자 등 다양한 만두 전문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 갔을 때도 그 나라의 만두 맛있다는 식당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요즘은 굳이 유명한 만두 전문집까지 안 가더라도 비비고 왕교자를 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바삭하게 구워서 시원한 맥주와 같이 먹는 맛도 나름 훌륭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요즘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위해서 만두를 집에서 만든다. 만두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노동집약적이다. 큰 통에 한통 가득 김치 다진 것과 고기 간 것, 양파 다진 것, 숙주나물 데친 것, 부추 가늘게 쓴 것, 파 채 썬 것, 물기 뺀 으깬 두부 등을 넣고 골고루 섞어서 만두소를 만든다. 엄마처럼 만두피까지 직접 밀어서 만들지는 않고, 만두피는 마트에서 사 온다. 내가 만두피를 만들지 않고 사는 이유는 만두피를 밀대로 미는 것이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만든 만두피는 잘 터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먹기 좋게 작은 만두피를 사용하다가, 요즘은 왕만두피를 사용하여 크게 만든다. 만두를 만들고 있으면 엄마 생각이 절로 난다. 엄마에게는 힘들다고 그렇게 집에서 만두를 만들지 말라고 말려 놓고는, 내가 우리 집 아이들을 위해서 수백 개의 만두를 만들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 동안은 나도 아이들에게 마트에서 파는 냉동만두를 한 봉지씩 사다가 먹이려고 했다. 그런데 금방 만든 만두를 김이 모락모락 나게 쪄 먹는 맛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더 이상 냉동만두를 먹으려 하지 않는다. 어릴 때의 나처럼 엄마가 만두 만드는 것을 보고 있다가, 금방 만들어 쪄 주면 몇 접시고 먹어 치운다.


하루는 큰 아이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기에 그 자리에서 만두를 만들어 바로 쪄 주었다. 남자아이들은 엄청난 식욕을 가지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의 맛있는 추억 하나를 만들어 주었을까?


영혼을 감싸주는 음식, 사람들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고향의 맛 등을 흔히 소울푸드라고 한다. 소울푸드는 원래 미국 남부에서 노예 제도를 통해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전통 요리를 말한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김치나 된장찌개, 떡볶이 등 공통된 음식들도 있겠지만, 아마 사람마다 소울푸드가 다 다를 것이다. 밥 한 숟가락 넘기기 힘들 만큼 많이 아플 때 사랑하는 사람이 끓여준 전복죽 한 그릇, 더운 여름날에 지쳐서 입맛을 다 잃었을 때 먹었던 시원한 냉면 한 그릇, 외국 여행하다가 느끼한 음식에 속이 메슥거려 죽을 것 같았던 때 먹었던 라면 한 그릇, 시골 아이가 부모랑 도시에 와서 처음 먹어본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추억들이 음식과 같이 있을 것이다.


흔히 추억은 힘이 세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음식의 맛은 추억의 맛과 같이 간다.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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