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에는 코로나 때문(덕분?)에 결혼하고 제일 한가로운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추석 연휴 기간에 매일 한 권씩 책을 읽고 있다. 멀리 가지는 못하지만 집에서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통해서 명화 감상을 했다. 10년 전쯤 파리에 갔을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본 작품들도 있었다. 책을 통해서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니까, 직접 보아도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보는 눈이 직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책에서 내 마음에 인상 깊었던 작품 몇 가지를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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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그림을 볼 때마다 그의 공포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아 무서웠다. 특히 <절규>는 해골 같이 생긴 사람이 핏빛 석양이 지는 배경으로 뭉그러져 가는 형상으로 나타나 보는 것이 괴로웠다. 그런데 뭉크의 살아온 배경을 보면 그의 그림이 이해가 간다. 어릴 때 어머니와 누나가 병으로 죽고 본인도 병약하여 매일매일 한 발짝씩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무섭게 느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당시 평균 수명보다도 훨씬 긴 80세가 넘어서 장수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내 친척 할아버지 한 분도 비슷한 분이 계셨다. 어릴 때 생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본인도 병약하여 평생을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사셨다. 내가 처음 뵈었을 때가 60대셨는데 그때도 뵐 때마다 내년에는 본인이 이 세상에 없을지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다. 10년 넘게 매년 그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시지 않게 되셨고, 80세가 넘게 장수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를 볼 때마다 죽는 순간이 무섭다고 말씀하셨다. 막상 돌아가실 때는 집에서 일상생활하시다가 하루 만에 조용히 가셨다. 그렇게 가실 것을 평생을 죽음의 공포에 떠신 생각을 하면 애처롭기도 하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힘을 내어 밝게 사셨으면 본인이랑 가족들에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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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중에는 본인의 고통이 예술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도 본인의 고통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짙은 눈썹만큼 강한 그녀의 의지도 보이지만,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고통도 같이 느낄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신이 있다면 가혹하게도 그녀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소아마비부터 시작해 젊은 학창 시절의 뼈가 다 부러질 정도의 큰 교통사고와 자기 여동생과 바람피운 남편에 유산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진 고통들은 차례로 다 경험했던 것 같다. 신은 고통의 대가로 미술적 재능이라는 신의 선물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프리다 칼로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고통도 선물도 다 받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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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을 어릴 때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림의 붓터치가 거칠고 색이 너무 강렬하다고 생각해서 이 화가의 그림이 왜 이렇게 유명한지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 다닐 때쯤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라는 그림이 인쇄된 담요를 하나 가지게 되었다. 담요의 포근함 때문이었는지 그림 속의 노란색이 주는 포근함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담요를 계속 덮다 보니까 그림도 점점 좋아졌다.
고흐의 그림에는 강렬함과 몽환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것 같다. 그가 압생트라는 녹색 술에 중독되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서 그런지 그림 자체가 정상적이지는 않다. 옛날에 프로방스를 가족과 같이 여행한 적이 있었다. 내 눈에 보였던 환한 햇살에 반짝이는 풍경의 아름다운 프로방스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고통스러웠던 고호의 눈에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새삼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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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같이 언급되는 화가는 고갱이다. 두 사람은 잠시 같이 지낸 적도 있지만, 고갱은 고흐의 미친 짓에 떠나 버린다. 그런데 고흐처럼 미친 것은 아니지만, 고갱도 평범한 삶을 산 것은 아닌 것 같다.
고갱은 파리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10년 가까이 일하였고, 결혼해서 아이도 다섯이나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관두고 머나먼 이국의 섬인 타이티로 떠나서 원시적인 강렬한 그림을 그리다가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도 그렇게 알았기 때문에 고갱이 예술에 미쳐서 충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구석 미술관> 책을 읽다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고갱은 1살 때부터 외가가 있는 페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0대 때는 선원으로 전 세계 바다를 수년간 떠 돌기도 했다. 원시적 자연의 경험이 그의 어린 시절부터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파리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산 세월이 어떻게 보면 그의 인생에서 더 특이한 세월이었던 것 같다. 증권회사도 본인이 관두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주식시장이 안 좋아져서 직장을 더 이상 다니지 못하게 된 것이다. 회사를 퇴사하고도 그림을 그려서라도 가족을 부양하려고 몇 년을 힘들게 노력했지만 잘 안 된 것 같다. 결국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덴마크 친정집으로 가 버렸다. 고갱은 여기저기 떠돌다가 결국 타이티까지 가게 된 것 같다.
황당하기도 하고 뜬금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행동의 이면에 보면 사실은 뿌리 깊은 곳에 그 단초들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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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그림 중에는 왜 유명한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그림들이 있다. 고전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그림만 보아도 잘 그렸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인상파 이후의 그림을 보면 해석을 보지 않고는 도저히 잘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그림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모리스 드니라는 화가는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가 인류를 바꾼 3대 사과하고 언급하지만 사실 수긍하기가 어렵다. 세잔의 사과 그림은 아무리 보아도 잘 그린 그림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예술사적으로는 형태가 아닌 본질을 보았고, 피카소로 이어지는 입체주의 탄생의 밑그림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잘 이해하기가 어렵다.
몇 년 전에 취미로 그림을 잠깐 배운 적이 있었다. 유화를 배울 때 내가 맨 처음 그린 그림이 사과 그림이었다. 잘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초록색과 붉은색이 대비되는 단순한 사과 그림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림이라는 것이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고, 상대적인 느낌이라는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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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