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는 자기 어머니의 남편으로 사실상 친부 역할을 하고 있었던 마체라트를 전쟁이 끝나가는 시점에 나치 배지를 집어삼키게 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마체라트를 묻으러 간 묘지에서 오스카는 북을 무덤에 묻고 자라기로 결심한다. 오스카는 화물열차 안에서 90cm 정도의 세 살 어린아이에서 키 121cm의 등에 혹이 난 난쟁이로 성장한다.
성장하고 나서는 석공일을 하며 계모와 어린 아들을 부양하기도 하고, 미술대학의 모델일로 돈을 벌기도 한다. 독립하여 방을 따로 얻어 나와서는 이웃 방에 사는 간호사에게 성적 환상을 품기도 하고, 이웃 음악가와 같이 밴드를 만들어 북을 연주하기도 한다. 북치는 음악가로 크게 성공을 거두었으나, 잘린 무명지 손가락을 가지고 있다가 간호사 살인범으로 오해받아 도주했다가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 갇힌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북치는 난쟁이 소년의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실적인 소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의 살아온 이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귄터 그라스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폴란드의 단치히에서 식료품 가게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나치 소년단원과 히틀러 청년단원 노릇도 했고, 전쟁 포로도 되었다. 전쟁이 끝나서는 고향에서 석공일도 했고, 예술 대학에서 조각도 배웠다. 이런 작가의 살아온 이력과 배경들이 소설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어, 소설 내용이 황당함에도 불구하고,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현실적인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있다.
또 이 소설은 참 많은 비유와 은유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오스카가 세 살 어린아이로 성장이 멈추기로 한 것과, 추후에 좀 더 성장하기로 한 것은 전쟁이 시작된 것과 끝난 것에 대한 메타포로 알려져 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에 대해 성장이 멈춘 어린이로 비유하고, 전쟁이 끝나고 난 독일이 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본 것이다.
가끔씩 책을 읽거나 다른 예술 작품들을 볼 때 책의 내용이나 표현 형식들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역겨운 데도 불구하고, '참 잘 표현했구나, 잘 만들었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 때가 있다. 나의 주관적인 선호와 상관없이 뛰어난 책들이 있는데, 양철북도 그런 책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또 읽고 싶지는 않다.
더 이상 무얼 말하란 말인가. 전등 아래에서 태어나고, 세 살의 나이에 일부러 성장을 멈추고, 북을 얻고, 노래로 유리를 부수고, 바닐라 냄새를 맡고, 교회 안에서 기침을 하고, 루치에게 먹이를 주고, 개미를 관찰하고, 다시 성장을 결심하고, 북을 파묻고, 서방으로 가서 동쪽을 잃고, 석공 일을 배우고 모델 일을 하고, 다시 양철북으로 되돌아가서 콘크리트 요새를 시찰하고, 돈을 벌고, 손가락을 보관하고, 손가락을 선사하고, 웃으면서 도주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서 체포되고,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고, 그 후에 석방되어, 오늘 30회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검은 마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아멘.
-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시대나 공간이 주는 암묵적 합의를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 인간을 광기로 몰고 가는 것은 두려움일까? 아니면 자기 보호 본능일까?
-양철북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북치는 음악을 같이 들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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