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미지의 서울 명대사
[작전명: 계단] 10화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의 등장인물 '호수'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반신을 거의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과격한 운동이나 등산, 너무 오래 걷는 것도 금물이며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라는 진단을 받은 이후 많은 것들을 포기한 체 살아왔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학교 행사였던 '두손봉 등반'이 있던 날, 꺼져가던 호수의 인생에는 반전의 등불이 켜졌고, 그 불은 계단을 오르고 올라 겨우 도착한 정상에서 만난 미지(박보영 분)의 환한 미소처럼 호수의 앞날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두손봉의 작고 큰 계단과 산길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서 있는 호수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한숨이 났다. 어깨가 움직이지 않아서, 목감기에 걸려서, 생리통이 심해서, 그리고 야근하느라 바빠서 등의 자기 합리화 진단서를 잔뜩 발행해 놓고 목표했던 일들은 훠이 훠이 멀리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열외'를 허락한 후 다 미뤄두거나 못 본 체하며 지내오다 보니 내 마음과는 다르게 엉망인 나와 내 주변과 함께 그냥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올라가면 뭐 달라져?"
"너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우리가 저기 못 올라간다고 아무도 관심 없으니까 괜히 유난 떨지 마!"
극 중 심장이 약해 그늘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던 미래(박보영 분)가 굳이 등반을 하려고 일어서는 호수에게 핀잔을 주며 건넸던 말이다. 하지만 호수는 계단 하나하나를 올랐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두손봉 꼭대기까지 가서 환하게 웃고 있는 미지(박보영 1인 2역)의 인사를 받았다. 물론 나는 미래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 그렇지'라며 주저앉아서는 열외를 받으면서도 이게 최선이었노라 생각하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저렇게 살아온 터라 평탄한 길 위에서 둥글둥글 살아가는 평범하기 짝이 없어 아마도 내 역할은 '제주 출신 엑스트라 1'인 나라서. 그래서 자꾸만 호수와 미래가 앉아 있던 나무 밑이 생각이 났다.
호수는 나랑은 달랐다. 쓰러지면서도 기어이 오르고 또 올라 '정상'이라는 성취감을 이뤘고 거기에서 깨달음도 얻었다.
"살면서 이딴 산 하나도 못 오를 바엔 살고 싶지 않아서"
'이딴 산 하나도 못 오를 바엔...'이라는 말에서 호수가 오른 수많은 계단들이 더욱 크게 다가왔고, 호수가 정상에 올랐듯 성공한 많은 이들의 인생들 속에서 '죽기살기로'가 아니라 '죽을 정도로' 오르고 또 올랐던 계단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일단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단한번도 없는 것 같다.
"그날 전교생 중에 내가 꼴찌였어. 다들 내려가는데 나만 올라가고 나중에 내려가는 애들도 안 보이고 나 혼자였거든. 몇 번이고 포기하고 내려가려고 했어. 근데도 계속 올라가는 건 내려오는 애들 중에 미지가 없었거든. 나도 나를 못 믿었는데 내가 올 거라고 믿고 계속 기다려준 거야. (-'미지의 서울' 中-)"
물론 내 인생의 등반도 소강상태이지 정상을 밟지도 못한 채 하산 중인 것은 아니다. 다들 정상 찍고 비행기도 타고 우주선도 타면서 더 높은 곳을 찾는 중이라 '내가 올라가는 이 속도가 맞나?', '계속 올라가는 게 이유가 있을까' 수없이 되뇌게 되지만 절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호수가 자신을 믿어준 미지를 생각하며 오르고 또 오른 것처럼 늦더라도 저만치 위에 있을 정상을 향해 나는 오늘도 계단 위에 있다.
언젠가는 정상에 도착하여 마지막 계단을 밟아낼 나를 향해 손 흔들어줄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용기를 내 본다. 당장에 두손봉 완주는 어렵지만 계단 하나하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비록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지만 그 또한 내가 이겨내야 할 또 하나의 계단이라고 생각한다.
변화와 성공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늘보다 조금 더 올라가고 싶은 마음 하나만 있다면 제자리의 선 나도, 언젠가는 내 삶의 정상에 닿을 수 있을지도. 지금은 그저 오르고 있던 계단 중 하나에 앉아 잠시 산바람 맞으며 쉬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