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해주던 것들도
작은 것들이 모여서 날 잃을 만큼 커지고
돌아오지 않은 만큼 서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입장이라는 게 있나 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입장,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입장
누군가는 자존감의 차이라고 하지만 평소에 그 상대방을 얼마나 생각했나의 차이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보통 친구, 연인, 가족과 같은 가까운 관계에서 이 감정은 발현되곤 합니다. 그럴 때다마 저는 후자의 입장으로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대했습니다.
좋겠어 너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라서.
이런 속마음을 차마 내비치지 못한 채 외로움과 서운함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없었죠.
솔직한 표현을 통해 인간관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릴 적부터 내 감정을 나 스스로에게조차 쉽게 보이지 않았던 제게 나 자신도 아닌 타인에게 솔직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렵기보단 남들이 보이기엔 내 마음이 옹졸해 보일까 봐.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해버릴까 봐. 그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살면서 서운하다는 감정을 입 밖으로 표현해 본 기억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기대라는 감정을 최대한 죽이고 살았다는 게 맞습니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보면 그러지 않을 거라는 기대에서 오는 거니까요.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도 그 사람이라면 그렇게 안 했으리라 생각되고 그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을 향한 불안함과 서운함은 그와 함께 커져만 갑니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나 서운하다는 사소한 감정은 얇디얇은 내 유리창에 균열을 주고 이 균열은 계속해서 커저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소한 토로에 대해 단절이라는 해답을 내놓고는 합니다.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며, 자신의 안의를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는 건, 그 역시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덕에 많은 희로애락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행복했고 미웠고 아쉬웠으며 고마웠죠.
서운함은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는지에 대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속 좁은 저는 앞으로도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여럿 느끼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서운함이라는 감정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면, 이렇게 생각하려고요.
'내가 상대방을 이렇게나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