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한 주말 오후의 기상이 익숙해질 때쯤,
6개월 동안 나의 주말 오전 스케줄을 책임져주던 영어 스터디를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시작은 내가 런칭 초기 때부터 즐겨하던 모바일 게임을 그만뒀을 때부터였다.
'너 요새 그 게임 안 하더라.'
'응 게임도 지치더라고.'
사실 2년 넘게 이 게임을 하면서 재밌다고 느낀 시간은 시작한 후 일주일 정도?
그 이후부턴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성격 때문에 흥미 다 떨어진 게임에 지속적으로 시간과 체력을 쏟아온 것이다.
'뭐든 시작하면 끝을 봐야지.' 작심삼일도 열 번하면 한 달이라는 생각으로 부실한 내 의지를 잡아온 것도 몇 년 내 앞에 '번아웃'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들어서면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내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다
업무강도가 강했기 때문일까?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의욕이 충만했던 주니어는 9시에 출근해서 9시에 가는 업무를 의욕 하나로 헤쳐나갔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다.
본인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자리 역시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와서 남들보다 늦게 가며 벌어져 있던 거리를 좁혀나갔다.
의지력과 체력이 충만했던 주니어를 번아웃으로 몰은 건 단순히 업무가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체력이 무한적인 건 아니었지만 일을 하는 중에도 영어 스터디와 게임을 꾸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퇴근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번아웃은 정신적인 부분에서부터 오기 시작했다.
직속 팀장이 나가고 그분이 맡고 있던 다량의 일을 분배받은 이후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점점 내 기분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아직 주니어인데' 왜 이런 일이 내게 자꾸 들어오는 거야?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기 시작했다.
주니어 레벨에서 팀장직 업무를 겸직하니 받는 스트레스는 내가 알아차리기 전부터 내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 영향이 회사 밖에서까지 받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했던 일.
내가 해야 하는 일.
회사 외적의 일을 회사 내적의 이유로 못하게 되었을 때, 아니 안 하게 되었을 때의 그 책임은 온전히 내 탓이 되고 내 루틴을 망가트리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내가 조금 더 의지가 있었다면 할 수 있었던 일이었기에 그 상실감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일이 나를 죽이고 있다.
일은 생업임에 동시에 나약한 나를 죽이고 있다. 양날의 검처럼 나를 발전시킴과 동시에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정답은 내가 알고 있겠지. 내 기분이 알고 있겠지.
지금 내 기분은 더럽다. 매우 더럽다. 내 자신에게 그리고 번아웃이라는 핑계를 만들게 만든 회사에게도...
답도 알고 있다.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 하면 된다는 걸 하면 재밌다는 걸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