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20년 넘게 빌라에 사셨다. 빌라는 2층이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무릎수술한 두 분 부모님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1층에 살고 싶어. 시장이랑 지하철역이 가까운 데로."
엄마가 집에 갈 때마다 소원이라면 노래했다.
"빌라 팔고 시장 가까운 주택 알아볼까?"
엄마는 환영했지만 아버지는 탐탁지 않아 했다. 이사하기 번거롭고 친구들과 멀어지지는 게 싫다는 이유다. 엄마는 아버지 친구들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를 더욱 환영했다.
빌라는 처음 분양받을 때 가격 그대로다. 20년이 지나면 부동산가격이 오르는 게 정상인데 그대로라니. 참 빌라는 부동산으로서 가치가 없다.
"엄마. 빌라 가격에 2배는 있어야 제대로 된 주택을 사겠네."
"전세 안고 가진 돈 합치면 될 것 같은데."
가진 돈은 얼마 없어도 엄마는 눈이 많이도 높았다.
골목 끝집은 안된다.
시장이과 너무 멀다.
네거리 지나면 안 된다.
집이 너무 낡았다.
생각보다 좁다.
어둡다.
원룸 생기면 집값 떨어진다.
주차하기 힘들다.
"엄마. 이사를 하고 싶은 거야? 하기 싫은 거야? 돈에 맞춰 사면 이 정도가 적당해."
마지막으로 본 시장 주차장 맞은편 집이 적당했다. 주차장이 있어 답답하지 않고 단층이지만 문간방을 세줄수도 있고 대문 위에 작은 텃밭도 있었다.
"주차장이 있으면 냄새도 나고. 일단 아버지에게 물어보자."
폭탄을 아버지에게 돌렸다.
아버지와 같이 집을 보러 갔을 때는 이미 그 집을 팔렸다.
한동안 나오는 집도 팔리는 집도 없이 부동산 시장이 잠잠했다. 엄마가 내어놓은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누가 빌라는 보러 오겠단다.
"엄마. 빌라는 일단 팔자. 나온 집은 많으니까 사는 건 지금부터 알아보고."
엄마와 아버지는 살던 집이 먼저 팔리는 게 불안했다. 이사를 나가야 하고 짐을 어떻게 할 건지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 전화가 온다. 나도 당시에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 저녁이나 주말에만 집을 보러 갈 수 있었다. 부동산에도 내 전화번호를 주고 부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전화 달라고 했다.
"엄마. 시장입구에 집이 났대. 전세 사는 사람이 나간다고 하고 전세 안 놓고 판대."
엄마는 일단 밖에서 집을 봤다고 한다. 해도 잘 들고 집 뒤에는 공원이라 공기도 좋을 것 같고 시장이랑 멀지 않고 지하철 역도 가까워 마음에 든다고 한다.
"새시도 새로 하고 전부 리모델링했네."
오래된 2층 주택이지만 전부 리모델링했다. 새시도 바꾸고 벽도 두꺼워 외풍 걱정은 없어 보였다. 엄마는 마음에 들어 했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빌라 판 돈에 전세를 안는다고 해도 많이 보태야 했다.
엄마도 동생의 암 투병에 얼마간의 돈을 사용하고 가진돈이 크게 많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일단 내가 보태고 엄마가 벌어서 갚아."
내가 보탠 돈 중 일부는 돌려받고 일부는 사라졌지만 부모님이 만족하니 다행이었다. 등기비용도 아까워 아버지와 같이 셀프등기하고 인테리어도 아는 사람 불러 싸게 했다. 당연 인테리어 비용도 내가 다 부담했다. 부모님은 작은 마당에 화분을 키우고 농사지은 작물을 마당에 말렸다. 공원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치우는 건 귀찮아했지만 시골에서 사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아버지는 강아지를 데리고 공원에 자주 나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자동차도 집 앞 전용주차장에 주차하여 빌라 살 때보다 훨씬 편하다고 한다. 엄마는 집주인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집값이 많이 올랐대. 미장원 갔는데 우리 집 정말 잘 샀다고 하더라."
이렇게 부모님 집을 옮긴 지 4년이 되었다.
문간방의 총각이 나가고 할머니가 들어오고 전세에서 반전세로 돌리고 어제는 2층이 나갔다. 2층은 방 3칸 올전세라 엄마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여름부터 2층이 나가기로 하고 부동산에 내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부모님의 시름도 커졌다.
"전봇대에 써붙여 볼까"
"다른 부동산에도 내봐."
"아버지는 전화 잘 받고."
괜한 부모님 탓을 했다. 아버지는 군대 있을 때 포병이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귀를 보호할 장비도 제대로 없이 포를 쏘았다고 한다. 그래서 청력에 문제가 있다. 작은 소리는 거의 듣지 못하고 현관벨이나 전화벨도 최대로 해 놓아야지 들린다고 한다.
경증 치매로 약까지 드시니 낮잠을 자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푸들 탄이가 큰 소리가 나면 깨우기까지 한다.
2층이 이사 나가기로 한 날이 다가올수록 부모님은 더욱 초조했다.
"2층 계약했어. LH에서 하는 전세계약으로 2000만 원 적지만 계약하기로 했어."
토요일 오전에 뜬금없이 엄마가 전화 왔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엄마는 출근해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출근하면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청소일을 하는 엄마에게는 전화기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다. 사방에 CCTV가 있어 전화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했다.
지난주 토요일 저녁에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사 오는 사람은 젊은 아가씨이고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다. 정리만 되면 바로 들어올 수 있다고도 했다. 2층이 이사 나가는 날자도 며칠 미뤄지고 이사 나가고 나면 바로 도배와 장판을 한다고 한다. 이사하기 전날 전세금을 달라고 했단다.
"엄마. 2층에서 전세설정 해놓아서 그거 먼저 말소해 줘야 전세금을 줄 수 있어. 2층 아줌마에게 말해."
"그런 게 있어? 일단 말할게."
담당하는 법무사가 전화 와서 전세금을 돌려주면 전세권 말소를 하겠다고 말한다. 나는 말소신청한 영수증을 보여주면 전세금을 돌려줄 것이고 세입자는 전세금을 돌려받고 다음날 이사 간다고 전했다.
법무사는 영수증을 보여주고 전세금을 돌려주는 게 맞다고 하고 일정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이사 나간 2층 사진을 찍어 엄마가 보냈다.
싱크대는 괜찮고 바닥도 괜찮다고 한다. 도배는 새로 하고 베란다에 방수페인트를 칠해야 한다고 한다.
"2층이 추운가 봐. 뽁뽁이를 사방에 발라놓았어. 안방 밑에는 두꺼운 벽지 같은 것도 붙여놓았어. 난방을 안 하고 살았나 봐."
엄마는 퇴근하고 다시 둘러본 2층을 브리핑한다.
"큰일 났어. 안방에 두꺼운 벽지 떼보니까 구멍이 났어. 누가 주먹으로 친 것처럼. 메꿔야 한다고 하네."
"2층 아줌마에게 전화해. 그러니까 짐 나가고 전세금 주는 게 맞다니까. 괜히 먼저 줘서. 다른데도 확인해 보고."
2층 아줌마는 처음부터 그랬다고 한다. 엄마는 어제 그걸 뗀다고 할 때 왜 말렸다며 수리비를 주든지 수리해 주든지 하라고 했다. 다른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도 한다. 이렇게 이사 내보내는 것도 어렵다. 한 번도 집주인인 적이 없던 부모님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다.
몇 년만 지나면 월세를 받아 두 분 생활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을지 생각만 해도 암담하지만 빌라 살 때 생각하면 많이 발전했다.
아무튼 세놓기도 어렵고 세 들기도 어려운 요즘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