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제1장 악연(惡緣) - 불운한 사건
늦은 밤에 광화문광장에서 돌아온 동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게 대체 뭘까? 나는 왜 늦은 밤에 광화문광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을까?’
‘광화문광장으로 달려가기까지의 기억은 왜 사라지고 없는 걸까?’
광화문광장에서 인사동길로 돌아온 시간은 밤 11시 50분, 침대 이불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분명 급히 이불을 걷어차고 뛰쳐나간 흔적이었다.
‘결국 오빠의 마음은 그만큼이었구나!’
그 말을 남기고 재희가 방을 나간 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쉬 잠들지 못했다.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아주 잠깐 잠들었다가 무슨 일로 다시 깨어나 곧바로 이불을 걷어차고 달려 나갔고, 정신을 차렸을 땐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도대체 왜 그곳이었을까. 재희를 찾으러 나갔다면 안국역 쪽이어야지 광화문광장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 안국역도 마찬가지야. 그때는 이미 재희가 떠난 지 한 시간이나 지난 때여서 동선으로도, 시간으로도 모두 맞지 않아.'
세종대왕 동상 뒤에서 퍼뜩 정신이 든 순간, 차가운 빗방울이 이마에 떨어졌다. 맨발이었다. 신발조차 신지 않은 채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왼편에는 동아일보 건물이 우뚝 서 있고, 바로 눈앞에는 세종대왕 동상의 등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저만큼 큼직한 기와지붕 아래 ‘광화문’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광화문광장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밤,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무엇을 향해 걸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그 시간, 그에게 광화문광장은 목적지가 아니었고 재희는 그의 의식에 없었다. 그것은 충동도 아니고 본능도 아니었다. 단지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이끌려 움직였고, 그 힘이 빠져나가자 그 자리에 멈춰선 채 깨어났을 뿐이었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아. 어떤 불온한 인자가 어느 시기에 내 몸속에 들어와 기회를 엿보다가, 때가 되었음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그 음모를 실행에 옮긴 걸까? 아니면 돌변한 운명의 징조일까?’ 아무리 궁리해 봐도 밀폐된 방에 갇힌 듯 막막할 뿐 그 어떤 생각의 실마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동지에게는 크게 무서웠던 기억이 두 번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불량배에게 유괴된 뒤 스승님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의 끔찍했던 하루와, 그 일로 인해 크게 몸을 상한 스승님께서 2년 후 어느 날 저녁, 어린 제자의 등에 손을 붙이고 있다가 휠체어 아래로 허리를 푹 꺾었을 때였다.
성인이 된 오늘 겪은 이 비현실적인 상황은 무섭다기보다는 뭔가 무서운 일이 닥칠 것 같은 불안함과, 그것의 정체를 모르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었다.
세종대왕 동상 뒤에서 정신을 차린 뒤, 시간이 궁금해서 손목을 들어보았으나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인사동으로 돌아가려고 몇 걸음 옮기다가 바지의 왼쪽 호주머니에서 이물감을 느끼고 손을 넣어 보니 시계가 잡혔다. 침대를 박차고 달려 나올 때 소파 테이블에 놓아둔 손목시계를 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으리라. 시계를 꺼내 확인한 시간은 밤 11시 35분이었다.
돌아오던 길에 북인사마당에서 지선을 만났다. 지선은 청바지에 스웨터만 걸친 채 서성거리다가, 그를 발견하자 얼른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어디를 그렇게 급히 다녀오세요?”
“제가 어떻게 해서 나갔습니까?” 그는 도로 지선에게 물었다.
지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계단을 뛰어 내려오시는 소리가 들려 내다보니 이미 현관문을 나가신 뒤였어요. 어디 가시냐고 여쭤봤지만 못 들으셨나 봐요. 저는 이상하기도 하고 걱정이 돼서 여기 나와 마냥 서 있는 거구요.”
그렇게 말하며 지선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얼른 집으로 가셔요.”
지선이 팔짱을 껴 오기는 처음이었지만, 그녀의 행동은 무시로 그랬던 것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그날 밤 그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다독여주었다.
휴대폰이 깜짝 놀란 듯이 신호음을 터뜨렸다. ‘누가 이 시간에 전화를?’ 전화기를 집어 들며 벽시계를 쳐다보니 시간은 12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광화문광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어서야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때였다.
발신자가 ‘재희 어머니’임을 확인한 순간 반가움보다는 불안감이 훅 끼쳐왔다. 이 시간에 ‘잘 있니, 별일 없니’ 물어보기 위해 전화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재희가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분명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동지! 동지야!” 다급한 목소리가 먼 데서 부르는 소리처럼 건너왔다.
“네,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동지야, 재희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있대!”
“아니, 왜요? 무슨 일인데요?”
“모르겠어. 다쳤나 봐! 난 지금 거기로 출발해.”
동지는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무작정 밖으로 뛰어나갔다. 지선이 문을 열고 내다보았으나 이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북인사마당에 나왔을 때 경복궁 너머의 효자로 방향에서 역사책 속의 전쟁터 같은 먼 함성이 들리고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뛰는 편이 나으리란 계산이 섰다. 인사동길에서 서울대병원까지라면 뛰는 편이 오히려 빠를 것이었다.
병원 응급실에 막 도착했을 때, 수술팀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모여들었다. 조금 후에 희경도 뛰어 들어왔다. 희경은 곧바로 뇌수술 동의서에 사인해야 했고, 수술은 다섯 시간이 소요되어 아침 여섯 시경에 끝났다.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대뇌에 출혈이 심하고, 뇌 손상이 있습니다. 코마로 가거나 어쩌면 더 나쁜 상황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수술을 마친 의사가 피곤한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코마라면···?” 동지가 물었다.
“코마란 쉽게 말해 식물인간 상태와 비슷한 겁니다.” 의사의 말투는 단호했다.
동지는 그로부터 사흘 밤낮을 재희의 곁에 앉아 한 손을 그녀의 이마 위에 올려놓고 다른 한 손은 단전에 얹은 채 버텼다. 그의 외양은 깊은 명상에 든 사람처럼 보였다.
뇌수술을 한 지 삼 일이 지났음에도 담당 의사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여러 의사가 번갈아 병실을 들락거렸고, 똑같은 검사를 두세 번씩 반복하고서도 물어볼 때마다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돌아왔다. 닷새째 되는 날 의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으나, 의사의 설명은 ‘처음 보는 현상’이란 말로 요약되었다.
재희는 외부 자극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깊은 혼수상태였다. 동공과 뇌 반응검사 결과로 봐서는 뇌사와 유사하였지만, 자발호흡이 남아있었다. 이런 경우 머지않아 자발호흡이 중지되고 사망으로 가는 것인데, 재희는 특이하게도 자발호흡이 지속되었다.
“시간을 두고 기다려 볼 수밖에 약물이나 어떤 외부적 자극으로 치료할 방법은 없습니다.” 의사가 끝으로 한 말이었다.
동지는 하루 세 번 자기 안에 응축된 기운을 재희에게 투사했다. 그것은 십여 년 전, 그의 스승이 그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스승은 휠체어에 앉아 제자의 몸에 마지막 한 방울의 진기까지 쏟아붓고 휠체어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그날 이후 동지의 몸속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 정신과 육체 양면에서 그가 경험한 변화는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만의 내밀한 체험이었고, 그것이 지금 그가 재희에게 쏟는 노력의 근거이기도 했다.
한 여성이 쓰러져 있다는 제보를 종로경찰서 119상황실에서 접수한 시간은 밤 11시 50분으로, 동지가 세종대왕 동상 뒤에서 정신을 차린 뒤 인사동길로 돌아온 시간과 같았다.
동지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충돌 중에 벌어진 사고인가를 의심했으나 그 의심은 접어야 했다. 보도에 따르면, 5월 31일 밤, 그 시간에 촛불시위대는 경찰의 차단선을 뚫고 청와대 부근까지 진출했다. 그 과정에서 시위대는 경찰버스에 불을 질렀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처음으로 물대포를 쏘았다. 재희의 사고 장소인 세종문화회관과 세종로에는 시위대에서 이탈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배회했을 뿐이었다.
종로경찰서 119상황실의 기록에 의하면, 제보자는 쓰러진 여성을 발견하기 전에 사건 현장에서 한 여성과 두세 명의 남성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남자들을 찾아낼 단서는 찾지 못했다. 목격자도 없었으며, 사건 현장인 세종문화회관 옆 화단에는 범행에 쓰였던 어떤 도구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종로경찰서 119 상황일지에는 제보자의 이름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재희가 사고를 당한 몇 시간 후인 6월 1일 새벽 2시 30분경에 동십자 사거리에서 여대생 하나가 전경의 군홧발에 밟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언론은 그 문제에 집중했다. 재희의 사건은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었기에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