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제1장 악연 - 길교수의 옛 친구
길태선 교수는 탑골공원 정문을 들어가기 전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곳을 언제 와보았는지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맞배지붕 정문을 지나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서문 담벼락 너머로 노인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이었다.
약속 장소인 팔각정 계단은 이미 노인들이 차지하여 빈자리가 없었다. 그들은 복잡한 줄 속에 서 있기보다는 그늘에서 쉬다가 끝물에 따라붙으려는 나름의 계산을 한 듯했다.
태선은 팔각정에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자, 동문 쪽으로 조금 옮겨 오동나무 아래의 돌의자 하나를 골라 앉았다. 화강석을 네모지게 깎아 만든 돌의자는 등받이가 없고 딱딱해서 앉기에 불편했지만, 눈에 잘 띄는 곳이라 그냥 앉기로 했다.
지난밤, 태선은 50년 동안 소식을 모르던 옛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 세월 소식이 끊겼던 터라 지금까지 살아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간혹 옛 추억을 떠올릴 때면 그는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뚜렷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노인 하나가 공원으로 들어와 팔각정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태선과 눈이 마주치자 곧장 그에게로 걸어왔다. 태선은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허리가 꼿꼿하고, 헌팅캡 아래로 백발이 어깨까지 가지런히 흘러내렸다.
“길 선생, 오랜만이오!”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옛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석홍 선생? 선생은 나를 알아보나 본데, 난 아직도 영 모르겠소.”
태선은 망설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나야 저명한 교수님을 어찌 모르겠나. TV에서도 봤고, 선생 저서에서 사진도 봤지.”
그와 악수까지 하였지만, 태선은 여전히 그가 낯설고 거북했다. 20대 중반의 3년, 그 짧고 강렬했던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이라기엔, 눈앞의 남자는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차츰, 마치 천에 물이 번지듯이, 그의 옛 얼굴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말하거나 웃을 때의 입모습과 그것의 움직임이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주었다. 여드름 자국이 숭숭하던 뭉툭한 콧방울과 돌출된 광대, 그에 비해 좁은 하관과 두툼한 입술, 퍼즐은 조금씩 아귀를 맞추어 가다가, 어느 순간 칠십 대 중반의 노인과 이십 대 중반의 젊은이가 철컥 아귀를 맞추었다.
한 번 아귀를 맞추고 나자, 그때부터는 진도가 빨랐다. 그것은 해묵은 오해가 어느 날의 말 한마디로 풀렸을 때나, 꿈속에서 가위눌렸다가 간신히 빠져나올 때 같이 숨이 탁 터지는 시원함을 동반했다.
“그래, 맞아! 이 선생이 맞아! 웃고 말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그제야 맞춰져, 과거와 지금의 얼굴이!”
태선은 큰 소리로 외쳤다.
50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많이 변해있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눈빛이었다. 그는 매우 강렬한 눈빛을 지녔었고, 그 눈빛을 끊임없이 밖으로 뿜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50년 만에 보는 그의 눈빛은 오랜 영적 수련을 겪은 사람의 그것처럼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헌팅캡 그늘에 가려진 눈은 웬만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다.
얼굴의 빛깔도 낯설었다. 기억 속의 그는 검게 거슬린 얼굴인데, 눈앞의 그는 표백제에 오래 담가둔 천처럼 바랜 얼굴이었다. 깊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50년은 긴 세월이었다. 태선은 문득 그간 석홍의 삶이 상상 이상으로 녹록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세. 점심 먹어야지.”
태선이 정문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저 탑은 유명한 탑이잖아. 그런데 왜 유리 틀 속에 넣어뒀지?”
석홍은 감회에 젖은 얼굴로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쳐다보았다.
국보 2호이며 극치의 남성미와 여성적인 아름다움까지 함께 내장한 위대한 조형물을 밋밋한 유리 부스 안에 가두어 둔 것이 석홍은 못마땅한 눈치였다.
“비둘기들이 똥을 싸대서 그랬나 본데.”
태선이 유리 부스 위에 묻은 비둘기 배설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유리 부스 주변에는 비둘기 네댓 마리가 돌아다니기도 했다.
팔각정 곁을 지나며 석홍이 말했다.
“이곳 팔각정에서 기미년 3월 1일에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로 했었지. 실제로는 인사동 태화관에서 했지만.”
“맞아, 일경과의 충돌을 우려해서 그랬다고 들었어.”
“그런데 이승만의 동상이 있었던 자리는 어딘가? 4·19혁명 직후에 끌어내려지는 사진을 신문에서 봤었는데.”
석홍은 줄곧 그 생각을 한 사람 같은 얼굴로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혹 저 손병희 선생 동상 자리에 계셨나?”
태선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사람은 탑골공원의 동문 골목을 지나 수표로에 있는 ‘종로 진낙지’ 집에 자리를 잡았다. 홀에는 노인 몇 사람이 앉아 식사 중이었다. 그 시간 수표로의 노인들은 대개 주변의 기원에서 바둑을 두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거나, 간혹 낙원상가의 실버영화관에서 옛 영화를 본 사람도 있었다.
“여기 낙지갈비탕 둘하고, 막걸리 하나 주세요.”
태선이 식사를 주문하고는, ‘막걸리 괜찮은가?’ 하고 묻자, 석홍은 ‘한 잔 정도는 괜찮지.’라고 대답했다.
“종로는 노인들 천국일세. 여긴 뭐든지 싸거든. 영화관은 이천 원을 받고 이발도 삼천 원이면 돼.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
“다 끝난 노인처럼 말하는군. 한때는 저명한 교수님께서.”
“무슨 소용인가? 이제 다 똑같은 노인일 뿐인데.”
“길 선생은 등이 굽었어. 운동을 해야겠어. 등 근육을 길러야 해, 직립 근 말이야.”
“우리 집 김 여사가 하는 소리를 이 선생한테서 듣는군. 이 선생은 운동 많이 하나 보지?”
태선이 석홍의 등을 쳐다보았다.
“맨손 턱걸이를 하게나. 철봉에 매달려 하는 턱걸이는 이제 어려울 테니까. 맨손으로 팔을 아래로 끌어내리면 돼.”
“이렇게?”
태선이 팔을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끌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그렇지. 등을 좀 더 뒤로 젖히고, 철봉을 목이 아니라 가슴에 걸친다는 기분으로 깊숙이 끌어내려야 해.”
그때 주인 여자가 갈비탕 둘과 막걸리 하나를 쟁반에 받쳐와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태선이 막걸릿병을 따서 노란색 양은 대접 두 개에 반쯤 채워 따랐다.
“자, 먼저 목부터 축이지!”
50년 만에 술잔을 마주 댄 두 사람은 목이 아닌 입술만 살짝 적신 뒤 잔을 내려놓았다.
태선이 수저통에서 젓가락과 숟가락 두 벌을 꺼내 한 벌을 석홍 앞에 가지런히 놓으며 물었다.
“그래 일본에서는 어떻게 살았나?”
“뭐, 그럭저럭··· 그 사이 가끔 들어왔었어. 길 선생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였지만.”
“아, 그랬었군. 그 일 후에 이 선생은 일본으로 가고, 1년 뒤에 난 우연한 기회를 만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 대략 20년쯤 미국에서 살았어. 그쪽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왔기 때문에. 그 후라면 연락이 됐을 텐데 왜···”
귀국 후에 연락하지 왜 안 했냐고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석홍은 좀 길다 싶게 태선을 응시했다. 가라앉은 눈빛 그대로 많은 생각을 눈빛에 담아 밀어내는 듯했다.
태선은 알 듯 모를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식사를 계속했다.
식사 후, 다시 탑골공원으로 옮긴 두 사람은 이번에는 서문 쪽의 나무 벤치를 찾아 앉았다.
석홍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길 동지!”
“····”
“교적을 잊지는 않았겠지?”
“아니, 이제 와서 교적이라니?”
“교적은 살아있네. 그 후 많은 변신을 거듭하면서. 그동안 성과도 많이 이루었지!”
석홍은 지난날을 회상하듯 잠시 침묵의 틈을 두었다가 말했다.
“물론 앞으로 할 일이 더 많겠지만.”
“자네는···”
태선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말고 석홍을 쳐다보았다.
석홍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시 말을 이었는데, 석홍의 말을 듣는 동안 태선은 연신 짧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선생! 자네 이런 말 위험하다는 거 알 텐데? 난 오래전에 떠난 사람이네!”
태선이 유일하게 한 말이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 거 아니겠나? 남쪽 사회는 이미 예전과 달라. 자네가 신고하더라도 나를 잡아갈 사람이 있을까? 외려 자네만 시대착오적이고 실없는 늙은이로 매도당하고 말걸?”
석홍은 얼굴에 미소마저 띠며 말에 거침이 없었는데, 어느새 50년 전 그의 눈빛이 되살아 나 있었다. 석홍은 그 눈빛으로 태선의 미간을 태워버릴 듯이 노려보았다.
“오래전 그날 밤, 그분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오셔서 하나하나 손을 잡아주셨을 때, 우리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잊었는가? 그때 우리에겐 목숨 따윈 서 푼어치도 아니었어!”
석홍이 손을 뻗어 태선의 손을 잡았다.
“내 부탁 하나 들어주게! 아니, 부탁이 아니네. 이건 조선 반도를 위해서, 그리고 자네를 위해서도 꼭 해야 할 일이네!”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에 힘을 실어 말했다. 그중에서 ‘자네를 위해서도’라고 할 때는 태선의 손을 아프도록 움켜쥐었다.
커널 문과 배흥수는 일묵다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태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위 군중들이 공산 혁명 구호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뒤엎고 혁명으로 결집하자.’라고 쓴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무슨 총련이니 무슨 연맹이니 하는 NL 계열들인데,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태선이 자리에 앉자마자 커널 문이 다급하게 건넨 말이었다.
배흥수도 거들었다.
“이 정도면 내전 아닙니까? 외신 기자들이 찍어서 내보낸다면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 내전이 일어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광화문에서 안국동, 종로3가, 종로2가, 종각까지 온통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경찰버스가 불에 타고 난리도 아닙니다.”
“그러게 말이오··· 나도 봤어요.”
유독 어두운 얼굴로 긴 한숨을 내쉬는 태선의 목소리에서 울음 같은 떨림이 전해졌다.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인가를 하던 교수가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보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주권자인 국민이 지혜롭고 이성적이지 못할 때는 대책 없이 허약해지고 맙니다. 자유민주 사회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허약성이자 딜레마지요. 자유, 평등, 정치적 관용 등의 가치가 실현되면 될수록 반체제 세력도 그 효과를 함께 누리게 되니까요.”
두 사람은 입을 다문 채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수결도 마찬가지예요. 이는 자유민주 체제의 의사결정 원리지만, 공산주의나 파시스트 세력이 다수결을 무기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더라도 그것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이 성립합니다.
국민 동의도 그래요. 때로는 체제 존속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마저도 국민 동의의 벽에 부닥쳐 포기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니까요. 반체제 세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보호막 속에서 세력을 키우고,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체제를 위협합니다. 만약 합법적, 평화적 방법으로 체제전복이 어려울 때는, 주저 없이 군중 동원을 통한 폭력적인 방법으로 선회합니다.”
교수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목기침을 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반체제 세력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알리고자 하여도, 언론의 주도권을 그들이 장악하게 되면 모든 게 막혀버리고 말아요. 체제 존립에 가장 위험한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때 커널 문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반체제 세력은 민주화운동이나 인권운동, 환경운동, 노동운동 등으로 정체를 위장해서 뻔히 보면서도 속수무책입니다. 그리고 더욱 답답한 것은, 이들의 정체를 모르는 대중은 오히려 이들에게 동조하고 박수 치기도 하니까요.”
길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거기다가 많은 지식인들마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체제 활동까지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