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제2장 고독한 여정 - 뱀의 꼬리를 보다
2014년 10월 28일에 맹골수도의 바닷속에서 295번째의 시신이 수습되었다. 며칠 후, 정부는 더 이상의 시신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2014년 11월 11일부로 실종자 수색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아홉 명의 실종자는 바닷속 어딘가에 남겨 둔 채였다.
국회는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일곱 시간 동안 여자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하느라 말 한마디 없었는지 그 행적을 10분 단위로 끊어서 밝히라고 요구했다.
한편, 어딘가에서는 그 일곱 시간의 의문에 대한 억측과 괴담이 끊임없이 생산되어 나왔다. 새로운 억측과 괴담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진상 조사를 요구하던 때와는 양상이 달랐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거리로 뛰쳐나와 소리치고 위협했다. 그런 일들은 나뭇잎에 붙은 벌레의 알처럼 산란과 부화를 반복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몸집을 불려 갔다.
2015년 봄에 여섯 번째로 시간여행의 문이 열렸다. 어느덧 시간여행의 거리는 7년으로 깊어져 있었다.
북인사마당에서 왼쪽으로 꺾어 광화문 방향으로 걸어가는 재희의 곁을 동지는 바짝 다가서서 걸었다. 창수는 여전히 앞서가는 재희에게 시선을 못 박은 채 50미터쯤 뒤에서 따라왔다. 동지는 창수가 다가오기를 기다려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으나 표정만으로 그의 머릿속 생각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재희는 세종대왕 동상 뒤 10미터쯤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니 창수는 지난번 시간여행에서 보았던 그 자리,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나무 그늘 속에서 재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희가 동상의 등 뒤 지하 계단을 타박타박 걸어 내려갈 때 계단 아래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두런두런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재희는 무사히 계단 아래로 내려섰다.
터널 입구 부근에서 네댓 사람이 야식을 먹고 있었다. 목제 탁자 위에 흰색 플라스틱 그릇들이 빼곡히 놓였고, 그 사이에 소주병이 여럿 보였다. 야식은 파장이었던지 몇 사람은 서 있고 몇 사람은 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나무젓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재희는 사내들 쪽을 힐긋 쳐다보고는 바로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동지도 그녀를 뒤따라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등 뒤에서 전화 신호음이 들려 무심코 돌아보았는데, 라운드 챙의 등산모를 눌러쓴 사내가 젓가락으로 뭔가를 집어 먹다가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사내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재희 쪽을 쳐다보며 무슨 말인가 몇 마디 더 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동지는 얼른 재희에게로 다가갔다.
"재희야, 여기는 왜 들어가는 거니?"
동지는 자신도 모르게 재희의 손을 잡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때 재희가 걸음을 멈추고 뭔가를 쳐다봤다. 재희의 시선이 머문 곳에서 동지가 본 것은, ···낯익었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것은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보았던, 사람과 쥐를 한 몸에 결합해놓은 그림들이었다. 아마 낮에 전시하였다가 비가 내리자 걷어왔을 터였다.
재희의 시선이 멈춘 곳은 그림이 아니라 그림 아래의 어두침침한 바닥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큼직한 단두대 하나가 놓여있고, 그 곁의 어둠 속에 밀랍으로 만든 사람의 머리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절단된 목의 단면에는 붉은 물감을 발라 방금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사람의 목처럼 보였다. 어떤 것은 목에 한발 길이쯤의 철근을 꽂아놓은 걸로 봐서 어디다 세워 둘 전시용인 듯하였고, 어떤 것은 목을 바특하게 잘라 공처럼 발로 찰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목의 주인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무슨 마음으로 저걸 만들었을까? 저걸 만든 사람은 그 대상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 의사를 드러내는 것이었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모욕하고 있었다. 동지는 머릿속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듯했다.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 가운데, 오직 ‘악마’라는 단어만이 얼음처럼 굳어 머릿속을 장악했다.
그때, 눈앞에서 번쩍하는 불빛이 터졌다. 재희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플래시가 번쩍일 때마다 바닥에 쌓아둔 머리들에 뚜렷한 음영이 지며 괴기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번쩍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때 등 뒤에서 “저거 뭐야!”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어이, 이봐! 그거 왜 찍어? 당신 기자야?”
재희는 사내를 힐끗 쳐다보고는 대꾸하지 않은 채 뒤돌아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말을 섞기조차 싫은 표정이 역력했다.
재희가 계단을 서너 걸음 올라갈 때 사내가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씨팔, 왜 말을 안 해! 딱 봐도 기자는 아닌데, 어디다 헛소리하려는 거지?”
‘아니, 저자가?’
동지는 급히 뛰어가 사내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하지만 통할 리 없었고, 그 순간 재희가 잡힌 팔을 홱 뿌리치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사내는 비틀거리며 계단 아래로 밀려나 겨우 버티고 섰다. 사내의 동작에서 술기운이 느껴졌다.
그때 다른 사내 하나가 뭔가 생각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터널 안쪽으로 비척거리며 들어갔다. 라운드 챙의 등산모를 눌러쓴, 조금 전에 전화를 받았던 사내였다.
그때 예의 그 조짐이 찾아왔다. 단막극을 끝내는 신호였다. ‘아, 이런!··· 안돼! 이런, 젠장!’ 동지는 안타까이 부르짖었다.
동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간여행을 하는 동안 방기 되었던 몸에 오슬오슬 한기가 밀려들었다.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단막극의 지속시간은 지난번보다 대략 5분가량 연장 된 듯했다. 이번에도 끝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 사건의 전모를 가렸던 안개가 조금은 벗겨져서 상상으로나마 그날의 사건에 대해 어렴풋이 그림을 그려보게 되었다.
[요양병원]
재희는 아침 아홉 시가 가까우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동지를 기다렸다. 그녀는 멀리서도 그의 발소리를 알아들었다. 아래층 현관에서부터 조용하고도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조금 후에 복도를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어서 와요, 오빠!)
재희는 큰 소리로 인사하며 손을 흔든다.
동지는 의자를 끌어당겨 재희의 침대 곁에 바특이 앉았다.
‘재희야, 어젯밤에 다시 너를 봤어.’
(아, 오빠. 또 그 꿈을 꾸었어요?)
‘네가 나를 알아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 한 번만이라도 내 눈을 바라보며 웃어주면 안 되겠니? 내가 널 만지지 못해도 좋아. 나와 시선을 맞추고 바라만 봐주면 돼!’
(아, 오빠!, 오빠의 꿈은 왜 매번 그럴까요? 하지만 내가 오빠의 꿈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어요. 난 이 병원의 복도마저 벗어나지 못한다구요.)
‘근데 재희야, 네가 그 터널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들어갔더라도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까?’
(사진?··· 그래 맞아! 내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었지. 그 때문에 어떤 남자와 다투기도 했었고. 새로운 기억이 떠오르고 있어. 또다시 오빠가 나의 묻혔던 기억을 되살려 주고 있어.)
재희는 동지의 등 뒤로 돌아가 등에 얼굴을 붙였다.
(오빠는 지하 터널에 있던 사람들과 나의 사고를 연결하여 생각하나 봐. 하지만 난 모르겠어. 난 그냥 궁금해서 거길 들어갔었고, 그 끔찍한 것들이 눈에 띄어서 휴대폰을 꺼내 찍었을 뿐이야.)
‘재희야, 난 그 터널 속에 쌓아놓은 사람의 목과 그림들, 그것들이 예사롭지 않아. 거기 모여 앉아 야식을 먹던 그들은 악마가 깃든 자들이 분명해 보여.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짓들을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난 왠지 그들이 너를 알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들기도 해.’
(아, 오빠는 그렇게 느끼는군요! 난 아직 모르겠어요. 오빠가 나의 기억을 좀 더 되살려 주어야겠어요. 이젠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왠지 내 사라진 기억의 저쪽이 멀지 않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재희야, 멀지 않아 그날의 현장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반드시 봐야 해! 그리고 난 이미 뱀의 꼬리를 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