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유령

(23회) 제2장 고독한 여정 - 이제 보내주렵니다.

by 해암

이제 보내주렵니다.







잠에서 깬 희경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등과 목뒤가 축축했다. 침대 시트에서도 눅눅한 습기가 손바닥에 전해졌다. 꿈속에서는 땀이 날 만한 일은 없었다. 긴장하거나 무섭거나 고통스러운 마음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몸은 달리 반응했다.

재희가 남동생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햇빛이 강렬해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일 만큼 눈이 부신 곳이었다. 아이들은 고립된 투명한 방 안에 있고 자신은 밖에서 구경하는 구도였다. 무엇 때문인지 그녀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지 못한 채 바라만 보았고, 두 아이는 나란히 서서 웃고 있었다. 마음에 고요한 슬픔이 배어들었지만, 특별히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날을 시작으로 희경은 이따금 비슷한 꿈을 꾸었다. 재희는 늘 다섯 살이었고 동생은 세 살이었다. 동생은 세 살 나이로 전 생애를 살아버렸기에 더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꿈속에서 재희는 동생을 업거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다섯 살 누나가 세 살짜리 동생을 업기란 현실에서는 어려울 테지만 꿈속의 재희는 천연덕스럽게 동생을 업었다. 남매는 늘 웃고 있었는데, 햇볕을 등지고 서서 웃는 모습은 햇살처럼 하얗게 바래서 눈이 부셨다. 희경은 여전히 꿈속에서 아이들 곁에 다가가지 못했다.


동생과 함께 자랐던 삼 년 동안 재희는 늘 동생을 끼고돌았다. 일부러 동생을 야단치는 시늉을 하면, ‘엄마, 얘는 아직 어리잖아. 쪼그만 게 뭘 안다고 야단을 쳐?’라며 아주 정색하고 엄마를 나무랐다. 다섯 살 누나가 동생을 역성드는 게 신기하고 귀여워서 자주 ‘야단치기 놀이’를 하며 놀았다. 슬픈 추억이었다.

아이가 세 살 때 바이러스성 유행병으로 죽은 뒤로 희경은 아이의 죽음이 순전히 자기 책임이라며 자책하고 살았다. 아이를 잃고 이 년쯤 지난 때에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과 그 여자의 관계가 시작된 시점이 아이를 잃은 후라는 걸 확인하고는, 그녀는 이혼서류를 준비해 미련 없이 도장을 찍었다.


희경의 집에서 세 여인이 하룻밤을 보내던 날, 희경은 아이를 잃은 때로부터 재희가 사고를 당한 후 8년 동안의 얘기를,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어루만지며 조용한 선율의 독주곡을 연주할 때처럼 풀어놓았다. 얘기 도중에 그녀는 몇 차례 출렁이는 마음의 파고를 가라앉히기 위해 말을 끊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더 늦기 전에 보내 줘야겠어요. 그것이 재희를 위하는 길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끝으로 얘기를 마쳤을 때 희경은 어금니를 깨물며 입술을 심하게 떨었다. 잠시 후, 누군가의 입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왔고, 그것을 시작으로 세 여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뒤에 인경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동지는 알고 있어요?”


“아직은 몰라요. 말을 못 했어요.”


“동지는 아마 펄쩍 뛸 거예요. 8년이 짧은 세월인가요?”


“맞아요. 누구도 그렇게는 못 해요.” 희경도 인정했다.


병원에서 재희의 장기기증 의사를 타진해 온 때는 지난해 겨울, 희경의 꿈에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재희가 사고를 당한 후 의료진의 판단은 일관되게 그녀가 의식을 회복할 가망이 없다는 쪽이었다. 그럼에도 희경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데는 모성의 미련도 있었지만, 동지의 특별한 능력에 대한 기대 역시 큰 몫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8년이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점차 그녀의 마음에 그 기대에 대한 회의가 생겨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며칠 후, 요양병원]


“동지야!”

희경이 조심스럽게 동지를 불렀다.


“네, 어머니.”


“저기··· 우리 이제 그만하자!”


동지는 대답 대신 희경을 바라보기만 했으나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짐작했다.


“며칠 전에 대학병원 담당 의사와 만났어. 그분은 한결같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셔.”

그것은 동지도 익히 아는 바였다.


“그분이 장기기증 의사를 타진 하더라. 재희와 나는 오래전에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해두었거든.”


“그만하세요, 어머니!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동지는 단호했다. 그 문제라면 더는 대화조차 원치 않는다는 말투였다.


“재희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동지가 나보다 더 간절할까?”

희경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은 깊고 단단했다.


“재희가 듣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동지는 급히 재희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들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만약에라도 재희가 듣는다면 하는 불안한 마음이 스쳤을 뿐이었다.


(그래요, 오빠. 난 들을 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 말이 맞아요. 너무 길었어요. 오빠도 이젠 나를 잊고 오빠의 길에 전념하세요. 그리고… 우리 엄마를 부탁해요. 엄마에겐 아무도 없잖아요.)


“며칠 전에 보호자 동의서에 사인을 했어.”

희경의 목소리는 이미 모든 걸 놓아버린 사람처럼 담담했다.


장기 기증이란 말이 나오고서야 동지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과거 수정’의 가능성과 그간에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희경에게 털어놓았다. 동지가 유체 이탈을 통해 재희의 과거 모습을 지켜본다는 사실은 희경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날의 사고 자체를 지우려 시도한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희경은 동지의 말을 끊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얼굴로, 아주 오랜 침묵 속에서 무거운 무언가를 껴안고 있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그날 오후, 동지는 대학병원 담당 의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가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환자가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8년 동안 희경과 동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의사는 두 사람에게 평상의 삶을 찾아주고 싶어 했다.


“10년 이상 코마 상태였다가 깨어난 사례도 있지 않습니까?”

동지가 물었다.


“물론 그런 사례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이 존재했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기적일 뿐이지요. 그리고 그 기적이란 것도 사실은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전해지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재희는 지금 살아있고, 저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장기기증 문제는 없었던 일로 해주십시오.”


“보호자께서 동의를 철회하실 수는 있습니다.”

의사는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동지를 바라보았다.


요양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지의 발걸음은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그날은 마침 세월호 사고의 2주기였다. 분향소에 가까워질수록 공기에는 짙은 향냄새가 배어 나왔다. 시청광장으로부터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지나 광화문 해치마당 입구에 이르기까지 늘어선 추모객들의 긴 행렬이 보였다. 그들의 옷깃과 백팩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줄을 선 시민들은 희생자 사진 아래 국화 한 송이를 놓고 향을 피운 뒤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어떤 여인은 조문을 마치고 돌아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분향소 앞에 설치된 유리 배 안에는 시민들이 접어서 넣은 노란색 종이배가 3분의 2가량을 채우는 중이었다. 어린아이 하나가 까치발을 들고 투명한 유리 배 속으로 종이배를 밀어 넣는 모습이 보였다.


분향소 옆에 세워 둔 여러 개의 게시판에 시민들이 글을 적었다.

‘일 년 내내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녔다.’

‘자다가도 너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데 아무것도 해줄 게 없구나.’

‘오늘은 먹기도 미안해서 아침을 거르고 분향소에 왔다.’ 등의 글들이 보였다.


다른 게시판에는 대통령에 대한 증오가 마그마처럼 끓어 올랐다.

‘아이들이 죽어갈 때 일곱 시간 동안 네년이 뭘 했는지 밝혀라!’

‘그 시간에 ОО과 호텔에서 뭐 했니?’

‘프로포폴 맞고 잠에 취했니?’

‘성형시술 받느라 몰랐니?’

‘90분 동안 올림머리 하느라 바빴니?’

‘굿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니?’

‘네년 방에서 나온 비아그라는 누가 먹는 거니?’ 등의 매우 외설스럽고 자극적인 말들이 난무했다.


세월호가 좌초한 직후 일곱 시간 동안 침묵했던 대통령이 그 일곱 시간 동안 뭘 했는지는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청와대에서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침묵하는 사이에 사태는 점점 혼탁한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었다.

온갖 뜬소문이 날개를 달고 전국의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다. 세월호가 좌초되었던 그 시간에 여자 대통령은 내연남과 호텔에 있었다는 낯 뜨거운 소문이 먼저 나돌더니, 그 시간에 내실에서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소문, 관저 마당에서 굿을 벌였다는 소문 등이 뒤를 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문은 자꾸만 변신을 거듭했다. 프로포폴 주사를 맞고 취해서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느니, 올림머리를 하느라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느니, 비아그라가 그녀 관저에서 나왔다는 말까지, 괴담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수많은 유튜버가 시중에 떠도는 괴담을 그럴싸하게 편집하여 전파했다. 주류 언론마저도 유튜브를 카피하여 보도하기에 이르자 루머는 더 이상 루머가 아닌 사실로 굳어졌다. 사람들은 떠도는 루머가 딱히 미스터리 일곱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그녀가 해왔던 일상사로 믿기 시작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던 사람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그 한마디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민심의 흐름은 손 쓸 여유도 없이 밀어닥치는 쓰나미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분향소의 길 건너편에서는 기십 명의 사람이 모여 ‘세월호 농성장 철거’를 외치기도 했다. 어떤 ‘어머니회’에서는 광화문역 7번 출구 앞에서 ‘세월호 농성장 철거’라 쓴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기자회견'을 했다,

KT 본사 건물 앞에서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세월호 선동세력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광화문 불법 천막 즉각 철거하라!’, ‘세월호 왜곡 선동 즉각 중단하라!’, ‘세월호의 정치적 악용을 규탄한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쳐댔다. 이처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수자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빠져 있었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뿐이었다.


동지가 인사동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국대사관 앞을 지날 무렵에 세월호 농성장에는 한 노인이 천막들을 차례로 돌아보며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헌팅캡을 쓰고 쥐색 점퍼를 입은 노인은 입성이 깨끗하고, 마른 체격에 자세가 반듯했다. 농성 천막을 모두 돌아본 노인은 광화문 방향으로 걸어가 옛 의정부터 앞에서 안국역 쪽으로 꺾어 들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지가 일묵서예 현관 앞에 막 도착했을 때, 전화 신호음이 울렸다. 희경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재희의 장기기증 날짜가 5월 25일로 확정되었다고 말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서 장기기증에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기증 일자를 확정한 것이었다. 그 말은 곧, 재희를 떠나보내야 할 날이 39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의미였다.


“선생님, 다녀오셨어요?”

지선이 반갑게 인사했지만, 동지는 '네' 하고 건성으로 인사를 받고는 고개를 떨군 채 이층 계단을 밟았다. 계단을 반쯤 오르던 그가 걸음을 멈추고 지선을 돌아보았다.

“다음 달 25일이랍니다.”

어느새 충혈된 그의 눈은,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도와드리겠습니다.’하고 누군가 말해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듯했다.

25일의 의미를 아는 지선은 이층 동지의 방으로 따라 들어가 보지만, 그가 원하는 말을 해줄 수 없는 그녀로서는 손을 모으고 앉아 울음만 삼킬 뿐이었다.

그 시간 수련실에서는 세 제자가 수련 준비를 마치고 스승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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