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유령

(24회) 제2장 고독한 여정 - 미여스님

by 해암

미여스님







오전에 요양병원을 다녀서 나오는데 병원 앞에 미여 스님이 서 있었다. 스님은 연회색 홑겹 장삼 아래 발목이 잘록한 회색 바지와 하얀 운동화를 가지런히 모으고 서서 요양병원을 나오는 동지를 기다렸다. 문득 오래전 조락헌 목련당에서 보았던 스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님은 그때와 별반 변함이 없어 보였다. 예순 세수가 무색한 희고 투명한 얼굴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자칫 남루해 보일 수 있는 승복이 오히려 산뜻하고 맑았다.

상큼한 미소를 띠며 스님이 말했다.

"조계사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어요.


“인사동길에 계시면 제가 갈 텐데요?”


“저 신록의 빛깔을 좀 보세요, 얼마나 고운지. 이 아름다운 오월의 거리를 동지님과 함께 걸어보고 싶어서 왔어요.” 스님은 손바닥을 펼쳐 들고 주변 풍경을 가리켰다.


골목길을 나와 큰길로 접어들었을 때 스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이 힘들지요?”


“네, ···힘듭니다.”
동지는 아무런 덧붙임 없이, ‘힘들다’고 대답했다.


인사동길의 한 찻집에서 마주 앉아, 동지는 자신이 겪은 유체 이탈과 시간여행 중 과거의 몸을 빌렸던 이야기를 미여 스님에게 들려주었다. 스님은 그의 얘기를 한 마디로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온몸으로 들었다.

동지가 최근 몇 차례 시간여행에서는 유체 이탈의 지속시간이 늘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스님의 눈빛이 묘하게 흔들렸다.


스님은 찻잔을 들어 조금 마셨다. 그리고 조금 오래 침묵의 틈을 둔 뒤 입을 뗐다.

“그 시간여행이란 걸 그만두면 안 될까요?”


“왜 그런 말씀을···?”


“위험하기 때문이에요.”


스님은 잠시 동지의 얼굴을 살핀 뒤 말을 이었다.

“동지님이 과거의 시공을 보는 현상은, 물론 불교적 해석이긴 합니다만, 동지라는 자아가 있어서 과거의 시공에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수·상·행·식’이란 네 가지의 정신 현상이 일시적으로 육신과 분리되어, 지나온 과거 중에 가장 아팠던 시공으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런데 매번 조금씩 늘어나던 유체 이탈의 시간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는 건 어떤 한계에 이르렀다는 신호로 보이는군요. 불가에서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육신을 벗어난 정신 현상이 과거의 시공에서 너무 오래 머물다 보면 육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기도 한다는군요.”


“허공으로 흩어진다는 건···?” 동지가 물었다.


“육신을 떠났던 정신 현상이 돌아와 다시 육신에 깃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육신만으로는 생존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따라서 유체 이탈은 위험하기도 해요. 거기다 과거의 몸에 들어가려고 시도한다면 위험을 더욱 부추길 게 자명합니다. 그런 시도는 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군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듣고만 있는 동지에게 스님이 물었다.

“사람의 정신이 무엇이냐에 대해 불가에서는 매우 독특한 설명을 합니다. 그것을 동지님에게 얘기해주고 싶군요. 조금 지루할 텐데 괜찮을까요?”


동지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사람은 몸과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신은 명(名)이라 하고 몸은 색(色)이라 하여 정신과 육신을 함께 명색(名色)이라 부르지요. 사람의 몸에는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이 존재합니다.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이 그것인데, 여기에다 사유 기능을 포함하여 사람은 여섯 가지 인식 수단을 갖추고 있지요. 이 여섯 가지 인식 수단을 통하여 여섯 가지 인식(認識)이 일어나게 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네 가지 정신 현상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 네 가지 정신 현상을 불가의 용어로 의식(識), 느낌(受), 지각(想), 형성(行)이라 하는데, 보통은 한자어로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 ‘수·상·행·식’이란 네 가지 정신 현상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걸 의미하지요.

사람의 정신 현상을 지칭하는 말로 우리가 흔히 감성이나 이성이나 의지 등의 말을 사용하지만, 불가에서는 사람의 내면에 ‘수·상·행·식’ 외에 따로 감성이나 이성, 의지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그 네 가지 정신 현상과 육신(色), 즉 몸이 결합하여 사람을 구성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불교의 인간관입니다.

불가에서는 이 네 가지 정신 현상과 몸을 통칭하여 오온(五蘊)이라 불러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다섯 가지 경험의 무더기란 의미지요. 이 오온(五蘊)의 결합체를 ‘사람’이라거나, ‘나’ 또는 ‘너’로 부를 뿐, 오온 외에 사람을 움직이고 관장하는 실체적 자아(自我)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으뜸 사상인 무아(無我)이지요.”


거기까지 말한 뒤에 스님은 ‘지루한가요? 그만둘까요?’라고 묻듯이 동지의 얼굴을 살폈다. 동지는 눈을 내리뜬 채 스님의 말을 기다렸다.


스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오온(五蘊) 외에 이것을 주관하는 나란 실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자아 관념을 아견(我見) 또는 유신견(有身見)이라 하는데, 불가에서는 이를 착각이라고 해요. 사람이 그런 착각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아 관념을 배우기 때문이지요.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 ‘아빠’이고, 자기 이름이니까요. 시작부터 갖가지 지시어를 통해 ‘사람’, ‘나,’ ‘너’ 등의 개념을 주입 받으며 자라는 거지요. 그래서 불가에서는, 궁극의 진리를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언어라고 합니다.”


스님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인 후 다시 이어서 말했다.

“불가에서는 윤회를 말하는데, 자아적 실체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윤회하는지 의문이 생기겠지요. 그에 대한 대답은 지금까지의 얘기 속에 있어요. 사람의 정신을 구성하는 ‘수·상·행·식’이란 네 가지 온(蘊)은 제각기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며 변화하는데, 변하기 전과 변한 후의 관계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되고, 이를 상속이라 합니다. 즉 ‘과거생’에서 ‘현재생’으로, ‘현재생’에서 다시 ‘미래생’으로 네 가지의 정신 현상이 상속을 이어간다는 말이지요.

‘나’라고 하는 실체적 존재는 없지만, 네 가지 온의 상속으로 인해 성립되는 윤회, 이것을 무아윤회(無我輪廻)라 합니다. 이와 같은 무아윤회의 개념을 받아들임으로써, 양립할 수 없어 보였던 무아(無我)와 윤회론(輪廻論)이 비로소 나란히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동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설사 스님의 말씀대로 위험이 따르더라도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재희를 저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저니까요.”


“아!”

스님은 들릴 듯 말 듯 짧은 탄식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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