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제3장 기적 - 범죄(1)
/범죄/다시 켜진 촛불/기적의 시작
/지선의 야한 꿈/태극기부대/다중 세계의 기억
장기기증 예정일은 어느새 보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동지는 인사동으로 돌아가기를 잊은 듯 불을 켜지 않은 어둑한 병실에서 재희만을 바라보고 있다. 재희는 영원한 침묵처럼 누웠고, 보일 듯 말 듯 이어지는 호흡만이 그녀가 살아있음을 말해준다.
동지는 재희의 병상 곁에 기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재희야, 우린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걸까?'
(오빠, 너무 긴 세월이었어요. 이젠 받아들여야 해요.)
‘재희야, 난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은 너를 구할 길이 있으리라 믿었어. 그러나 이젠 자꾸만 그 믿음이 무너지려고 해. 내가 어떡하면 좋을까? 네가 가르쳐 줄 수는 없겠니?’
(오빠, 영원한 건 없잖아요. 언젠가는 잊을 거예요. 오빠는 너무 오랫동안 나로 인해 오빠의 삶을 희생하며 살았어요.)
‘재희야, 너를 보내고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아!)
재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동지는 재희의 손을 잡고 손등에 이마를 얹었다. 적막한 슬픔이 밀려왔다. 재희를 잃는 상실만큼이나 아프게 찔러오는 것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자책과 끝내 그녀를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한 회한이었다. 단순히 슬픔이란 말로는 대신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불에 덴 통증처럼 가슴속 어디에서 번져 나와 몸 전체로 펴져 나갔다. 동지는 재희의 손등에 이마를 얹은 그대로 그날 밤을 요양병원에서 새웠다.
2016년 5월 20일, 장기기증 예정일을 닷새 앞두고 재희는 요양병원에서 S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기증할 장기는 심장, 간, 폐, 신장, 각막으로 기증 대상자는 모두 여섯 사람이었다. 심장을 이식받을 환자는 재희와 같은 병원에 있었고, 나머지 다섯은 각자의 병원에서 대기 중이었다. 종합병원으로 옮긴 며칠 동안 재희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병원을 찾아와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장기기증을 하루 앞둔 5월 24일에는 신부와 성당 교우들이 병원에 와 임종 전 병자성사를 집전했다. 오후 3시, 병실에는 병자성사에 참석하기 위해 음성에서 올라온 진국 부부와 인사동의 지선과 동지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있었다. 그들 가운데 희경 모녀를 제외하면 누구도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다. 성호를 그어본 적도, 긋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다만 병자성사가 이승에 남은 사람들이 망자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고요한 병실, 잠든 사람처럼 누워 있는 재희의 베개 옆에는 누군가 놓아둔 책 몇 권이 있었다. 신춘 문예에 당선된 그녀의 소설집, 그리고 세 해 동안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넘겼을 국어 교과서들이었다. 짧았던 생이, 그 책들에 눌린 공기처럼 남아있었다.
검은 수단 위에 보라색 영대를 두른 신부가 조용한 걸음으로 들어와 병상 앞에 서고, 교우들은 신부를 중심으로 반원을 이루며 둘러섰다.
신부가 낮고 느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님의 평화가 이 집과, 이 병실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잠시 틈을 두었다가 또 말했다.
“우리는 이 시간, 윤재희 자매를 위해 기도하며 이 모든 순간을 주님께 맡기고자 합니다.”
그 말이 병실 벽에 닿아 천천히 가라앉는 동안, 교우들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우리 여기 다 같이 있어요!”
“우리가 당신 곁에 있어요!”
“그대는 혼자가 아니에요!”
신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낭독은 시편이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신부가 책을 덮으며 덧붙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교우들이 조심스레 응답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누군가는 어설픈 손짓으로, 누군가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성호를 대신했다.
신부가 다시 병상 쪽으로 몸을 기울여 말했다.
“윤재희 자매님, 혹시 마음에 남아있는 두려움이나 내려놓지 못한 미련이 있다면, 이제 모두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비로우십니다.”
이어서 신부가 성호를 그은 뒤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느님, 이 영혼의 모든 허물과 슬픔과 두려움을 당신의 자비로 씻어 주소서…”
기도가 이어지는 동안, 교우들은 저마다의 말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괜찮아요… 이제 다 괜찮아요!”
“미안한 것도, 못다 한 말도… 다 내려놓아요!”
“편히 쉬어요, 부디!”
기도를 마친 신부가 성유병의 뚜껑을 열었다. 병실 안에 오래된 나무 서랍이나 철거해 쌓아둔 침목 같은 옅은 기름 냄새가 번졌다.
신부는 재희의 이마에 성유를 바르고, 손을 들어 십자성호를 그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성령의 은총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이어 그녀의 손에 도유하며 기도했다.
“주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시고 위로하시며, 평화로 이끄시기를 빕니다.”
교우들은 눈을 감고 속삭였다.
“주님, 이 영혼을 받아 주소서!”
신부가 성체를 재희의 머리맡에 놓으며 말했다.
“이 성체는 당신이 주님께 가는 마지막 여정의 양식입니다.”
(아멘) 재희는 신부와 마주 보고 서서 분명한 손짓으로 성호를 그었다.
병자성사의 끝 순서로 신부의 기도가 이어졌다.
“주님, 이제 이 영혼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두려움 없이 당신의 빛 안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모든 성인이시여, 이 영혼을 맞이하여 주소서.”
“아멘”
응답과 함께 병실 곳곳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오고, 교우들이 한 사람씩 침대에 누워있는 재희에게로 다가갔다.
“이제 정말 편히 쉬세요!”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
“사랑했어요!”
말을 잇지 못한 이들은 그녀의 손을 잡거나, 이마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교우 여러분. 부디 안녕히들 계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재희는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을 껴안으며 인사했다. 병실 문밖에 서 있던 인사동 식구들에게로 다가가 지선과 현서, 용학을 차례로 안았다.
진국과 인경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 아주머니… 그동안 감사했어요. 행복하게 사세요.)
복도로 나가 벽에 기대 울고 있는 어머니의 어깨를 껴안았다.
(엄마… 난 미련 없이 가지만, 한 가지 엄마가 마음에 걸려요. 부디… 부디 잘 사셔야 해요. 엄마, 안녕히 계세요.)
마지막으로 재희는 병실 문 옆에 선 동지에게 다가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오빠, 안녕… 사랑했어요. 나보다도 더 오빠를 사랑했어요. 잘 살아요. 그리고 오빠가 원하는 일, 꼭 이루세요.)
동지는 병상 곁으로 다가가지 않은 채, 병실 문 옆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신부와 교우들이 돌아가고, 진국과 인경도 음성으로 떠난 뒤 저녁 7시경, 사설 구급차 한 대가 S종합병원 정문을 빠져나왔다. 구급차는 주택가 골목을 벗어나 창경궁로에서 우회전하기 위해 멈칫거렸다. 그때 조수석에 앉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야구모자를 눌러쓴 청년이 운전기사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자 구급차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흩뿌리며 차량의 흐름 속으로 밀고 들어갔다.
구급차 안에는 환자를 실은 침대가 놓였고 침대 곁에는 흰색 가운 차림의 남자 의사와 여자 간호사 둘이 앉아 있었다. 구급차는 창경궁로를 타고 북쪽을 향해 달리다가 동소문로, 내부 순환로, 북부간선도로를 지나갔다. 구급차는 중랑천을 건너기 바로 전에 오른쪽의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골목에서 돌아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구급차가 들어갔던 골목과 한 블록 이웃한 골목에서 십육인 승 봉고차 한 대가 큰길로 나와, 중랑천을 건너 구급차와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갔다.
젊고 우람한 체격의 청년이 운전하는 봉고차는 내부를 구급차처럼 개조하여 깡마른 여성 환자가 가운데 침대에 누웠고, 곁에는 조금 전 구급차에 탔던 의사와 두 간호사 중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봉고차는 중랑천과 구리암사대교를 지나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올라탔다.
병원에서 환자가 사라진 사실을 알았을 때는 환자를 실은 봉고차가 북한강을 건너 가평휴게소를 지날 무렵이었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사라진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한동안 영문을 몰라 우왕좌왕만 할 뿐, 환자가 누군가에 의해 병원 밖으로 실려 나갔다는 데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환자의 어머니로부터 환자가 외부로 유출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귀띔받고서야 병원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병원 복도와 정문의 CCTV를 확인한 뒤 수배령을 내렸을 때는 저녁 10시가 가까웠다. 병원과 시내 곳곳의 CCTV를 추적하여 문제의 구급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육십 대로 보이는 구급차 운전기사는 사라진 환자를 찾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는 조수석에 앉은 청년이 요구하는 대로 중랑천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주택가의 골목으로 들어가 환자를 내려준 뒤에 바로 빈 구급차를 몰고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에게서 경찰이 얻어낸 단서는 그 젊은 청년의 체격이 우람하고 용모가 잘생겼다는 것뿐이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경찰이 인사동길의 ‘일묵서예’를 찾아왔다. 경찰은 병원 복도 CCTV에 찍힌 간호사 중 한 사람으로 지선을 의심했으나, 지선은 병원에서 환자가 빠져나간 시간에 어떤 남자와 데이트를 즐긴 빈틈없는 알리바이를 제시했다.
동지와 재희의 행적은 중랑천을 건너기 전의 주택가에서 중지되었다. 음성의 조락헌에도 그들의 흔적은 없었다. 희경뿐만 아니라 진국과 인경도 재희가 병원을 떠나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며 속히 그들을 찾아달라고 외려 경찰에 하소연했다.
언론은 초유의 환자 실종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주요 일간지들이 사회면의 머리기사 자리를 할애하였고, 지상파와 종편도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루었다.
보름쯤 후에 동지는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 외딴 펜션에서 체포되었다. 현서가 지선이 준비해 준 의약품과 생활용품 가방을 들고 동지와 재희가 은신해 있는 펜션을 다녀온 뒤였다. 현서가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막 서울로 출발한 뒤에 경찰이 그곳을 급습했다. 현서는 용학을 의심했지만, 용학은 경찰이 그동안 현서와 자기를 미행하였음이 틀림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현서는 구급차에 탔던 간호사 중 하나로 용학은 구급차의 조수석에 앉았던 청년으로 밝혀져 두 사람은 불구속으로 입건 되었고, 지선은 구급차에 탔던 또 한 사람의 간호사로 여전히 용의선상에 있었다. 강원도 해안의 펜션모텔에 고용되었던 전직 간호사는 조사 후 혐의를 벗었다. 재희는 본래의 요양병원으로 돌아왔다.
희경과 미여가 남부구치소의 면회실에서 동지를 만났다. 계절은 유월 말로 접어들어 장마철이었지만, 서울은 아직 비 같지 않은 비가 오락가락할 뿐이었고 날씨는 후텁지근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동지가 희경에게 용서를 구했다.
“덕분에 재희는 아직 살아있고.” 희경이 말했다.
“지내기에는 어떤가요?” 미여가 물었다.
“저는 여기나 밖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다만··· 재희가 걱정될 뿐입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
“여기서도 여전히 그 유체 이탈을 시도 하겠지요?”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상 중에 우연히 찾아올 뿐이니까요.”
미여는 잠시 말을 고르듯 틈을 두었다가 입을 뗐다.
“그 기회가 찾아오더라도 과거의 몸을 빌리는 시도는 그만두었으면 해요. 그건 매우 위험하니까요.”
동지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핸들을 잡은 희경이 말했다.
“미여가 한 말··· 조금은 섭섭하네.”
“알아, 하지만 자칫 동지까지 잃을 수도 있는 거라서···”
“둘 다 구할 수 있다면?”
“가능할까, 과거를 바꾼다는 거?”
“동지는 가능하다고 말해!”
“그 말··· 자기도 믿지는 않았잖아. 그랬다면 장기기증 말은 나오지 않았겠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희경은 짧게 숨을 고르며 한 호흡만큼 생각을 가두었다가, ‘결국 사람은 다르지 않아, 그렇지?’라며 웃었다.
스승이 자리를 비운 며칠 뒤부터 제자들은 수련실에 모여 수련을 이어갔다. 현서는 용학과 단둘의 자리를 원치 않았기에, 수련 시간은 동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 시간에 맞춰졌다.
현서가 용학을 대하는 태도는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그럼에도 용학은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수련을 함께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두 사람 사이에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어 보였다. 용학은 여전히 현서의 주변을 맴돌았고, 현서는 말없이 수련에 전념했다.
수련을 마친 뒤에는 둘은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안국역에서 전철을 타고 반대 방향으로 갈라져 갔다. 현서는 경복궁 방향, 용학은 종로3가 방향이었다. 용학은 그녀가 먼저 전철을 타고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철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말없이 배웅했다.
둘의 생각은 서로 달랐다. 현서는 그에게 징벌적 모욕을 안긴다고 생각하며 그가 지독한 열패감으로 괴로워하기를 기대했지만, 용학의 내심은 그녀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녀를 태운 전동차가 컴컴한 동굴 속으로 꼬리를 감출 때까지 그는 양악의 근육을 자극하는 미소를 숨긴 채, 그녀의 벗은 몸을 떠올리곤 했다.
현서의 차가운 태도에도 용학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데는 그 나름의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년 전에 그녀와 나누었던 사랑의 행위는 불가항력의 일방적인 행위였지만, 적어도 용학이 느끼기에는 그녀의 벗은 몸은 순종적이었고 친밀했다. 그는 그렇게 기억했다. 그런 기억은 그녀가 그에게 보였던 과장된(그가 생각하기에) 냉혹함이라든지 무시하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의 계산 속에 자신감과 확신을 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