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유령

(26회) 제3장 기적 - 범죄(2)

by 해암

범죄(2)








동지가 체포된 후 열흘이 채 안 된 어느날, 진국은 늦은 밤에 남부구치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동지가 의식을 잃어 남부구치소에서 가까운 광명의 종합병원에 후송되었다는 전언이었다.

진국은 쏘나타 승용차의 옆자리에 인경을 태우고 병원이 있는 광명시를 향해 달려갔다. 차 안에서 인경이 전화로 희경과 지선에게 동지의 소식을 알렸다. 지선은 현서를 불러 자신의 제네시스 승용차에 동해와 함께 태우고 광명으로 향했다. 진국 부부가 광명의 종합병원에 도착했을 때 희경과 미여, 그리고 지선과 함께 현서와 동해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의료진은 초기 검사에서 외상이 발견되지 않아 CT와 MRI 촬영 이전에 혈당, 전해질, 약물 반응 등을 확인하기 위한 혈액 검사와 뇌파 검사를 먼저 진행했다. 검사 결과 의학적으로 별다른 이상 소견이 나타나지 않자, 병원은 CT 및 MRI 촬영을 하고, 이어서 갑상샘 기능 등의 내분비 장애와 외부 독소 유입에 대한 검사를 병행했다. 그러나 이튿날까지도 혼수상태의 원인은 밝혀내지는 못했다.

현서와 동해는 스승의 곁에 앉아 조용히 스승을 향해 기력을 투사했다. 시간이 흐르고 두 제자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을 초조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전날 밤 동지는 구치소 안에서 열 번째로 시간여행 기회를 맞았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 그는 옥상 외벽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리고 안채의 낮은 담장을 훌쩍 넘어 광화문광장을 향해 달려갔다. 시간을 단축할 필요도 있었지만, 지선이 모르게 다녀오고 싶었다. 맨발에 시계도 집어 들지 않았다. 이마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서늘한 느낌으로 보아 과거의 몸뚱이를 끌고 가는 것이 분명했다.


옛 의정부터의 코너를 돌아섰을 때, 약 백 미터 앞의 세종대왕 동상 뒤에 재희가 보였다. 그녀는 동상의 뒷계단을 올라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뒤에서 지하 계단을 올라오는 등산모 사내가 보였다.

동지는 온 힘을 다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재희야!”

그러나 소리가 성대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소리는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떨림 속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특이한 점은, 그가 유체 이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이 이전과는 매우 달랐다. 모든 존재가 휘청 흔들리던 순간, 전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강력한 파동을 감지하며 그는 정신을 잃었다.

희미한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토네이도 속의 지푸라기처럼 어딘가로 휩쓸려 가고 있었다. 다른 모든 존재와 함께 암흑의 구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는 혼미한 느낌 외는 아무것도 지각되지 않았다. 휩쓸림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그는 깊은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했다.


동지는 미끄럽고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덕마루에 다다르기 직전에 도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미끄러지면 다시 기어오르고 다시 미끄러지는 고된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언덕은 그의 힘으로 극복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그는 점점 지쳐갔다.

그가 이 세상에는 없는 행위를 반복하는 수렁 속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름과 미끄러짐을 반복하였지만, 그 모든 행위가 시간의 흐름과는 분리된 다른 차원에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인식의 주객관이 번갈아 일어났다. 점차 소진되어 가는 자기 모습이 객관화되어 보였다가 다시 주관으로 환원되어 무중력의 공간에서 어떤 힘의 작용을 하지도 받지도 않은 채 흘러갔다. 그러다가 다시 자신의 존재가 짙은 어둠 속에서 등댓불처럼 깜박거리는가 했는데 마침내 그 깜박임마저 사라진 편안함이 찾아왔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길게 유영하던 어느 순간, 미풍 같은 작은 힘의 작용이 전해져 왔다. 그 힘의 작용이 있고 난 뒤 몸이 조금씩 떠 오르는 상승감을 느꼈을 때, 먼 곳에서 다시 깜박이는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가까스로 팔을 휘저었고 무엇인가 손에 잡혔다. 그리고 문득 깊은 어둠의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제자 둘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기도하는 미여 스님과 아버지, 어머니, 희경 아주머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속속 병원으로 들어오는 아침이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과거의 기억 하나가 새로이 되살아났다. 옛 의정부터를 돌아나간 자리에서 정신이 돌아온 그는 또다시 까닭 없이 서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 일을 지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외벽 계단을 통해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기억이었다.


재희가 사고를 당했던 때는 광우병 파동이 막바지로 접어든 시기로, 나라는 내란을 방불케 하는 폭력과 광란으로 들끓었다. 그런 탓에 재희의 사건은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8년 후, 전대미문의 장기 기증자 도피 사건이 발생하자 오래전에 잊혔던 그 사건이 다시 세간의 이목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신춘 문예에 당선한 미모의 여성과 극강의 비주얼을 지닌 한 남자 사이의 순애보는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더없이 매혹적인 소재였다. 당시의 사건기록이 다시 들춰지고, 언론은 그 이야기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여 내놓았다.

세간의 관심은 ‘동지, 그는 누구인가?’로 옮겨갔다. 그러나 동지의 제자들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피했고, 훈련하는 모습도 보여주기를 꺼렸다. 다만, 동지와 한집에 기거하는 지선은 언론의 취재를 막무가내로 거절할 수만은 없었기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동지가 과거에 동해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동해에게 무극권을 가르쳤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지하철에서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한 일화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곧바로 오래전 뉴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어떤 청년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촉즉발의 순간에 어린아이의 생명을 구해냈던 뉴스였다. 그리고 그 청년이 바로 세상을 놀라게 한 장기 기증자 도피 사건의 장본인이자 보기 드문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무극권의 내력에 대해서는 취재진이 음성 동지의 본가를 찾아가 진국에게서 대강의 정보를 얻어냈다. 중국 흑룡강성에 살았던 동지의 스승은 일제 말기에 일경의 감시를 피해 간도로 떠난 한 남자의 손자였다. 경상도 현풍이 고향인 남자는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간도로 건너가 유랑민으로 살았는데, 간도에서 산 지 5년 만에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한반도는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잠시 머뭇거리던 사이에 6.25 전쟁이 일어나 돌아올 길이 막히고 말았다. 그 후 며느리를 들여 손자 하나를 얻었으나, 마적 떼에게 아들과 며느리를 잃는 불행한 일을 겪은 뒤 손자만 등에 업고 흑룡강성 북쪽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그 손자가 동지의 스승인 무성이었다.

선천성 뇌전증을 앓았던 무성은 열한 살이 되던 해에 그곳의 한적한 강가에서 뱃사공 노릇을 하며 홀로 무술을 연마하던 은둔자에게 맡겨졌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손목을 잡고 그 뱃사공을 찾아간 까닭은 그자의 공력으로 손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는데, 그가 무성의 자질을 알아보고 제자로 삼아 무극권을 전수하기에 이르렀다.


무성은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유골을 안고 할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한국 땅을 밟았다. 그의 나이 서른 때였다. 서울에 정착한 무성은 우연히 갓 태어난 동지를 만나, 아이를 자식처럼 키우며 무극권을 가르쳤다. 진국은 동지가 무성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될 때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운명적인 만남이란 말로 대신했다.

무성은 어린 제자의 소주천을 뚫어주기 위해 자신의 육신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기력까지 소진한 후 죽었다. 스승은 죽기 전에 동지가 이룬 무극권의 성취를 삼성(三成)이라 일러주며, 삼성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권(拳)이 아니라 무(舞)가 된다고 말해주었다.

또 한 가지 스승이 남긴 말은, 결혼하기 전에 꼭 칠성(七成)을 이루어야 한다는 당부였다. 그것은 일찍이 무성이 중국에서 수련할 때 스승인 흑룡강 뱃사공이 일러준 계명으로, 무성은 죽기 직전에 이를 동지에게 전해주었다. 칠 성의 경지를 이루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동지가 묻자, 스승은 마음이 저절로 깨달아 알게 된다고 했다.


동지는 인기 연예인 못지않는 대중의 호기심과 선망의 대상이 되어 갔다. 네티즌들은, ‘그는 도피할 인물이 아니다. 사실관계가 다 밝혀진 마당에 구속 수사할 이유가 뭐냐, 당장 석방해야 한다’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다. 대중의 관심 때문인지는 모르나 동지는 며칠 후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그가 구치소를 나오던 날, 구치소 앞에서의 인터뷰 장면은 신문 방송을 포함한 온갖 매체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는 ‘환자 도피’, ‘동지’, ‘재희’ ‘대왕고래’, ‘포항 여기자’ 등과 유사한 한 두 글자만 쳐도 바로 동지와 재희의 사연이 떴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에 동지에 대한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판사는 동지에게 실형을 선고하였으나, 형의 집행은 유예했다. 세간의 관심도 더위와 함께 서서히 식어갔다.

미여 스님과 진국 부부의 간곡한 설득 끝에, 희경은 재희의 장기기증 동의를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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