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유령

(27회) 제3장 기적 - 다시 켜진 촛불

by 해암

다시 켜진 촛불







그 놀라운 사건은, 2016년 10월 19일 JTBC의 저녁 8시 메인 뉴스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뉴스데스크에는 세련되고 잘생긴 중년의 남성 앵커와 삼십 대로 보이는 여기자가 마주 앉아 마치 일상사를 얘기하듯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는 낡은 태블릿 PC 하나가 놓여있었다.


여기자는 이름만 들어도 왠지 배움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최씨 성을 가진 한 여성의 이름을 몇 차례 입에 올렸다.

“그 여자가 바로 이 태블릿 PC를 사용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쳐왔던 겁니다.”

여기자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태블릿 PC의 모서리를 살짝 두드렸다.


잘생긴 앵커는 매우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비서실에서 연설문을 작성하여 보고하면 대통령은 그것을 이 태블릿 PC로 전송하고, 그 여성이 연설문을 수정하여 보내주면 대통령은 그것을 국민 앞에 나와 읽었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는 건가요?”


“네,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아, 이게 사실이면 정말 나라 꼴이 말이 아니군요.”

잘생긴 앵커는 매우 걱정스러운 얼굴로 짧은 멘트를 날리며 여기자와의 대화를 끌어나갔다.


여기자는 자기의 입을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이름이 알려진, 그 투박한 이름의 여자가 태블릿 PC를 통해 대통령 연설문 수정을 취미로 해왔다고 덧붙여 말했다.


TV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심한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일곱 시간'을 둘러싼 흉측한 소문들에다 또 하나의 치욕스러운 사실이 추가된 것이다. 여행사 통계에 따르면, 그 보도가 전파를 타고난 뒤부터 이미 계약되었던 패키지 해외여행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했다고 한다. 이유는 외국인들 앞에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더는 그녀가 권좌에 앉아 있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뛰쳐나왔다. 첫 촛불은 2016년 10월 29일에 등장했다. 그들은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이것도 나라냐!’라고 쓴 팻말을 들었다.


동지는 옥상에 올라가 광화문광장의 촛불을 바라보았다. 촛불은 빌딩 숲 사이에서 고요한 밤바다처럼 일렁거렸다. 그에게 촛불은 익숙했다. 8년이란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켜지 촛불이지만, 광장과 촛불은 단 하루도 그의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었고, 어쩌면 그것에 매몰된 채 살아왔다는 편이 옳았다.


요양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지의 발걸음은 무엇에 이끌린 듯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주변에는 전단지를 수북이 쌓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젊은이들과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떠들어대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광장의 곁가지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노변의 경계석이나 길바닥에 주저앉아 마치 곧 시작될 축제 마당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들뜬 설렘으로 술렁이었다.

해가 넘어가고 광장에 어둠이 깔리자, 하나둘 붉고 작은 점들이 모여들어 광장은 빠르게 촛불의 물결로 채워졌다. 그 모습은 사막의 밤하늘처럼 아름다웠고, 어둠이 짙어지면서 촛불에 파묻힌 무대는 먼바다의 섬처럼 아득했다. 무대 위에서는 지휘자가 구호를 외치거나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다.

새로 켜진 촛불은 8년 전과는 달랐다. 과거에는 촛불을 든 자와 이들을 막으려는 경찰이 대치하는 형국이었지만, 8년 후의 촛불은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현장에 경찰이 나와 있었지만 교통 정리가 임무의 전부로 보였으며, 경찰은 촛불을 지키는 파수꾼 같았다.


배흥수는 일묵 다실로 들어서자마자 털썩 주저앉으며, 먼저 와 있던 길 교수와 커널 문을 향해 말했다.

“나라 꼴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요즘 같아선 세상 창피해서 살겠습니까?”


“그러게요,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커널 문도 배흥수의 말에 호응했다.


“여자를 대통령으로 뽑는 게 아니었어요! 대통령을 뽑아서 청와대에 앉혀 놓았는데 알고 보니 바깥의 한 무식한 여자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소름 끼치는 일이에요. 젠장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다 우리 잘못이죠. 자업자득인 겁니다!”
배흥수는 화난 목소리로 탄식을 쏟아냈다.


“두 분은 그 뉴스를 액면 그대로 믿는 겁니까?”
길 교수가 다소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 여기자가 제시한 태블릿 PC가 있잖습니까? 그 안에 담긴 자료들도 이미 공개됐고요.”
배흥수가 교수를 힐난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은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세상에는 제 눈으로 본 것도 사실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길 교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교수님께서는 혹시 짚이는 바가 따로 있으십니까? 사람들이 모르는···” 커널 문이 물었다.


“짚이는 게 있다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랄까요. 그토록 분별없이 처신했을까? 하는 의구심 같은 거지요.”


“거기에 무슨 의구심을 가질 게 있습니까. 명백한 물증이 있고··· 아니, 백보를 양보하여 물증이 없다고 쳐도 이름있는 앵커가 검증도 없이 거짓 방송을 하겠습니까?”

배흥수는 길 교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에 길 교수가 입을 뗐다.

“상식을 믿는 자에게 비상식의 창끝을 들이대면 막을 방법이 없어요. 배 선생 같은 분마저도 그럴진대, 대개의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지요. 여담이지만, 그거 기억하세요? 전 재산이 이십구만 원이란 말. 설마 그분이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거야말로 말이 안 되지요. 사실은 이랬어요. 판사가 재산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을 때 그가 잘 모른다고 대답하니까, 지금 지갑 속에는 얼마나 들었는지 아시냐고 조롱 조로 물었답니다. 아주 작정하고 모욕한 거지요. 그러나 그는 정직하게 ‘이십구만 원’이라고 대답했어요. 마침, 그분께서 지갑 속에 든 현금의 액수를 알고 계셨던 거지요. 그랬던 것인데, 전 재산이 이십구만 원이라 했다며 언론이 악의적으로 비틀어서 보도하자 모두 믿었잖아요. 연희동에 자택을 지닌 그의 재산이 이십구만 원이라니,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알 사리를 말이지요.”


“교수님께서는 이 문제를 좀 다르게 보시는군요?”


커널 문이 묻자, 길 교수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들의 실체를 알기 때문이지요. 내가!”


그의 단언에 커널 문과 배흥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노 교수의 격한 어투 속에 담긴 무거운 함축을 감지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삼켰다.


잠시 머뭇거리던 커널 문이 결이 다른 말을 꺼냈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인지도 모릅니다. 언론이 국민 여론을 호도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는가 하면, 반드시 국민이 알아야 할 뉴스조차도 자기들 입맛에 안 맞으면 아예 눈을 감고 숨겨버리니까요.”


“중요한 지적입니다!” 길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언론이에요. 다른 모든 게 오염되고 무너져도 언론만 살아 있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언론이 바로 서 있다면 애당초 무너지는 일조차 없겠지요. 하지만 지금 우린 언론마저 심각할 정도로 오염되었어요.”


거기까지 말한 길 교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고개를 들며 무겁고 또렷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언론의 좌경화는 9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80년대 중반, 대학가를 휩쓸었던 NL파, 이른바 주사파와 PD계열 등 사회주의 혁명 세력들이 있었지요. 그들이 졸업 후 언론계로 진출하면서, 오늘날의 언론 좌경화가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전환점은 1998년 2월, 좌파 정부의 출범이에요. 그때부터 언론 장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커널 문과 배흥수는 입을 다문 채 교수의 말을 들었다. 길 교수는 더욱 단단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갔다.

“좌파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과거 칠팔십년대 해직 언론인들과 좌익 성향의 재야 단체 인사들로 방송사와 관련 기관, 그리고 관변 언론계의 주요 직책들을 모두 바꿔버려요. 그리되자, KBS와 MBC는 낙하산 사장과 언론노조가 손을 잡고,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 간단히 좌경화가 이뤄졌습니다.”

그는 손으로 허공을 그리며, 조직 개편의 깊이를 짚었다.

“사장이 바뀌자, 오래지 않아 방송사별로 국장, 본부장 같은 핵심 보직까지도 싹쓸이 인사 개편이 이뤄졌어요. 차츰 아래의 하부조직에도 당연한 연쇄 반응이 일어났을 테고 말이죠.”


잠시 뜸을 들인 뒤, 교수는 결론처럼 말을 맺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방송의 좌경화는 두 차례 연속된 좌파 정부에 의해 사실상 완결됐어요. 결국 방송은 완전히 다른 조직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후 우파 정부가 두 번 집권했지만, 방송 노조의 조직적인 저항 탓에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어요.”


“신문 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배흥수가 먼저 물었고, 이어서 커널 문이 덧붙여 물었다.

“신문은 그래도 사주가 따로 있으니, 방송과는 여건이 좀 다르지 않았을까요?”


길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맞습니다. 신문은 방송과는 다르지요. 일단 주인이 있는 민간 기업이니까 구조적으로 좌경화가 빠르게 이뤄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좌파 정부가 들어선 이후, 좌익 또는 좌경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신문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는 잠시 숨을 돌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물론 기존 신문사들 내부에서도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지요. 이른바 '진보적 감수성'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 스스로는 시대 흐름에 발맞춘다고 여겼겠지만, 실제로는 서서히 좌경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겁니다.”


커널 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렇다면 신문 쪽의 변화는 방송보다는 늦게 시작된 셈인가요?”


“그렇지요. 신문은 아무래도 내부 권력 교체나 조직 개편에는 시간이 걸렸고, 저항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어요.”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잠시 틈을 두었다.

“좌파 정부는 장장 142일 동안 일천 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해서, 무려 23개 언론사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벌였어요. 그 결과, 총 5천억 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했지요. 일부 언론사 사주는 고발되거나 구속되기도 했어요.”


교수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그들은 이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국세청 간부들부터 먼저 같은 이념을 지닌 인사로 교체한 뒤에야 세무조사에 들어갔어요. 사전 준비가 철저했지요. 그러고 나서 신문사 사주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신문사 인사를 단행한다면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고 딜을 한 겁니다.”


“협박이자 거래군요?”
커널 문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협박을 통한 인사 장악 시도였지요. 내가 이 일을 잘 아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1999년 말쯤의 일인데, 언론계에 있던 한 후배의 부인이 나를 찾아와 울면서 하소연하더군요. 남편이 유서를 써놓고 분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제발 살려달라고 말이죠. 그날 그 후배는 실제로 분신용 시너와 유서를 곁에 두고 ‘죽 쒀서 개를 줄 수는 없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였어요. 나는 급히 그 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후배가 그러더군요. 당시 좌파 정부의 최고 실세 장관과 서울지방국세청의 고위 간부가 신문사 사주를 불러내어 거액의 추징금을 부과하겠다며 얼음장을 놓고는 쪽지 하나를 건넸대요. 그 쪽지에는 신문사의 핵심 직책과 사람의 이름이 씌어있었는데, 여기 적힌 대로 인사를 단행한다면 추징금의 절반을 깎아주겠다고 했답니다.”


길 교수는 말을 멈추고 그 쪽지의 내용을 떠올리려는 듯 손바닥을 펴서 들여다보았다.

“그 쪽지에는 주필, 편집국장, 정치부장, 경제부장, 사장 비서실장, 청와대 출입 기자 등의 직책과 그 직책마다 그들이 요구하는 내정자 명단이 적혀 있었대요. 그 이름들은 모두 특정 지역 출신이었고, 특히 편집국장은 그 실세 장관과 지역적으로 가까운 동향 사람이었답니다.”


커널 문이 낮게 탄식을 불어냈다.
“노골적인 언론사 장악 시도였네요.”


“그렇지요. 그 당시 회사는 적자 누적에, 자본 잠식 상태여서 버틸 여력이 없었다는군요. 그 말을 사주에게서 들은 후배는 고심 끝에 사주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세요. 단, 편집국장만은 절대 안 된다고 하십시오. 만약 그들이 거절한다면 제 이름을 파십시오. 당신들이 편집국장을 꼭 그자로 고집한다면, 조 아무개가 분신할 거라고 전하세요’ 그렇게 말한 겁니다.”


길 교수의 눈빛에 노여움인지 슬픔인지 모를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후배는 실제로 유서를 쓰고, 시너를 준비해 놓았지요. 결과적으로 그자들이 제시한 편집국장은 수석 편집 부국장 직함을 주기로 타협을 보았고, 나머지 일곱은 요구대로 받아들인 겁니다. 그게 당시 언론의 현실이었어요.”


“참 악랄하였군요. 다른 신문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커널 문이 물었다.


길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메이저급 신문사를 비롯한 종합일간지 열 곳 모두, 결국 그들이 내민 쪽지의 인물들을 전면 수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단 한 곳의 편집국장만이 앞서 말한 그 후배의 결사적인 저항 덕분에 다른 사람으로 버틸 수 있었고, 나머지 신문사의 간부진은 예외 없이 저쪽 사람 일색으로 채워지게 된 겁니다. 한 번 그렇게 사람이 바뀌고 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아요.”


길 교수는 깊은 회한을 담은 목소리로 얘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듬해, 2000년 8월에는 그 실세 장관이 언론사 사주 46명을 이끌고 북으로 가서 ‘남북 언론사 공동 합의문’이란 걸 작성하여 김정일 앞에 바칩니다. 합의문에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저해하는 상호 비방 중상을 중단하고, 통일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언론 활동을 하겠다'는 말이 담겨 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모두 건강한 언론 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조항이지요.

선각자들이 지사적 소명감으로 일구고 가꿔온 언론들인데, 몇몇 이념 편향된 권력자의 치밀한 계획과 농간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 겁니다.”


“그렇게 방송도 신문도 모두 저들 수중으로 넘어가고 말았군요.”


“그랬지요. 법조계나 교육계, 노동계 등 다른 분야는 그나마 절반은 살아있다고 봐도 돼요. 하지만 언론이 넘어가게 되면 여타 분야의 살아있는 절반은 큰 의미가 없어요. 맥없이 무력해지고 말아요. 저들이 언론 장악에 사활을 건 이유가 거기에 있지요.”


교수가 말을 마치자, 배흥수도 커널 문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앞에 놓인 찻잔만을 바라보았다.


여자 대통령은 여야 원로들이 청와대로 찾아가 물러나라고 조언하자, 국회에서 적법한 방안을 제시하면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는 이를 외면하고 곧바로 탄핵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언론은 한목소리로 국회가 탄핵을 가결하지 않으면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국회를 겁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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