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유령

(32회) 제4장 혼돈의 계절 - 날조극

by 해암

제4장 혼돈의 계절

날조극/범인의 정체/단식/음모의 끝/아, 대왕고래!


날조극







대통령이 한 무식한 여자의 꼭두각시임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켰던 태블릿 PC에 문서 수정 기능이 없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그 태블릿 PC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던 미남 앵커와 여기자는 세간의 의혹을 해명하겠다며 2016년 12월 8일 저녁 뉴스 시간에 다시 뉴스데스크에서 마주 앉았다.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국회 표결 하루 전이었다.


여기자가 말했다.

“그 여자가 대통령 연설문을 하도 많이 고쳐서 태블릿 PC 화면이 빨갛게 보일 지경입니다.”


그날 저녁 뉴스가 전파를 타자 의혹은 잠재워졌고, 이튿날 12월 9일에 국회는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그해 연말, ‘한국 여기자협회’는 그 여기자에게 ‘올해의 여기자상’을 주었다.


2017년 1월은 유난히 추웠다. 혹한 속에서,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헌재의 판결을 앞두고 광화문광장의 촛불과 태극기의 대치는 극한으로 치달았다.

재판을 받던 최 여인은 자신은 태블릿 PC를 소유한 적도 없고 사용할 줄로 모른다며 그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보여달라고 하였으나 법원은 보여주지 않았다. 한편, 무슨 이유 때문인지 검찰은 문제의 태블릿 PC를 증거물 목록에서 슬그머니 제외했다. 대통령을 탄핵으로 내몰고 법정에 세운 태블릿 PC는 정작 법정에서 증거물로 채택되지 않았다.


태블릿 PC의 약발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대통령과 최 여인이 어떤 단체와 재단의 비리에 함께 연루되었다는 말들이 흘러나와 그것들이 다시 바톤을 이어받아 탄핵의 논리를 떠받치기 시작했다.

어느 국회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최 여인이 여자 대통령의 비자금 수조 원을 독일에 은닉해 둔 증거를 찾았다며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기자회견 후 그자는 최 여인이 숨겨둔 대통령의 재산을 직접 확인해 보이겠다며 인천공항에서 손을 흔들며 출국했다.


특검은 최 여인을 가혹하게 다루었다. 변호사의 입회를 피하고자 2016년 12월 24일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 1시 사이의 한밤중에 검사가 그녀를 협박했다.

“당신과 대통령의 모든 혐의를 인정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삼족을 멸할 것이다. 당신의 딸과 손자도 영원히 감옥에서 썩게 될 것이며, 당신의 일가친척까지도 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될 것이다.”

이 말을 취조실 밖에서 우연히 엿들은 여자 교도관이 서울구치소로 돌아가는 호송차 안에서 ‘어쩌면 검사가 그럴 수 있느냐’라며 최 여인을 위로했다. 특검은 그 사실을 부인했으나, 취조실의 CCTV 화면을 보여달라는 변호인단의 요구는 거절했다.


촛불시위에는 정치권의 좌파 세력과 교육계, 노동계, 대학가의 이념단체와 교수들까지 합세했다. 언론은 실황 중계를 맡아 전 국민의 시선을 촛불에 묶어 놓았다. 이들은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한 손에는 ‘이것도 나라냐!’라고 쓴 팻말을 들었다.

사회자가 ‘세월호!’하고 선창하면 군중은 ‘일곱 시간!’이라고 외쳤고, ‘이것도!’ 하면 ‘나라냐!’라고 외쳤다. 광장을 뒤흔든 그 외침의 메아리처럼 진실은 속절없이 흩어져 갔다.

분노한 촛불의 맨 앞줄에는 반체제 세력의 수장과 그 수하들이 양복 차림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구호에 맞추어 주먹으로 허공을 찔러댔다. 그들도 퇴로는 없었기에 정신 줄을 놓아버렸는지, 초등학생을 연설자로 등장시켜 헌법 조항을 들먹이게 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언론은 만약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반드시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연일 헌법재판소와 국민을 겁박했다.


태극기 집회 인파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서 2017년 2월 25일에는 한 장소에 모인 인원으로서는 사상 최대라는 말이 나왔다. 그 며칠 후 31절 98주년 기념일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1주 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러나 언론은 촛불에만 카메라를 비췄으므로 국민 대다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주목받지 못한 태극기 군중은 애국가를 부르다가 목이 메어, ‘동해 물과 백두산이’ 해놓고는 더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울먹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창수는 시청 앞 광장에서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애비다. 너 지금 뭐 하냐?”


“무슨 일 있으세요, 아버지? 저는 취재차 시청에 나와 있는데요.”


“시청이라고? 잘 됐다. 나도 지금 거기로 가는 중이다. 아마 곧 도착할 모양인데 잠깐 얼굴 볼 시간 되것냐?”

‘아버지가 여긴 왜 오시는 거지?’ 창수는 의아했지만, 곧 짚이는 바가 있었다.


두 부자는 시청광장, 세월호 천막 뒤에서 마주 섰다.

“아버지, 제발 이러지 마세요. 교회에서 버스를 임대해서 태극기 흔들러 가자고 선동한 거죠? 왜 그런 데 휘말려서 쓸데없는 수고를 하십니까? 몸도 성치 않으신 분이. 아버지도 혹시 일당 받고 오셨어요?”


아버지는 기가 막힌 듯 한숨만 연거푸 몰아쉬다가 낙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니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모르겠다. 내가 너를 잘 못 가르쳤다.”


“아버지, 정신 좀 차리세요. 진실을 바로 보셔야죠. 지금 아버지는 중요한 걸 놓치고 계세요.”


“에라이, 등신 같은 놈아! 너희 젊은것들은 모두 니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지? 늙은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멍충이들이고. 하지만 이놈아, 틀렸어. 늙은이들이 말을 조리 있게 못해서 그렇지, 몰라서 그런 게 아니야. 이 나이 먹도록 겪을 것 겪으며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눈으로 보고 몸으로 살아서 알아. 단지 몸이 따라주지 않고 기억력도 희미해서 그걸 말로 조리 있게 풀어내지 못할 뿐이야.”


“아버지,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까지 하신 분 아닙니까. 아버지 세대가 안다고 믿는 것들, 그게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걸 왜 모르세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저를 좀 믿어주세요. 부탁입니다.”


“이놈아, 그 좋은 머리로 좀 더 생각해 봐라. 너희가 전교조 교사한테 왜곡된 교육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걸 나는 수십 년이나 이 두 눈으로 지켜봐서 안다. 나보고 조목조목 증거를 대고 따져서 선은 이렇고 후는 저렇고, 얘기하라고는 하지 마라. 그렇게는 못 한다고 내가 말했지.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그리고 뭐? 일당? 참, 어처구니가 없구나. 여기 오는 사람들, 버스 타면서 두 끼 김밥에 간식에 음료수까지 각자 3만 원씩 내고 타는 거다, 이놈아! 그리고 너 저기 군중 속에 들어가서 자세히 한 번 봐라. 늙은이들이, 여기 행사 경비에 보태라고 오히려 꼬깃꼬깃 천 원짜리 몇 장이라도 내놓고 있어. 어디서 모자란 소릴 듣고와서 지껄이는 거야! 제대로 알고 말해야지, 이놈아!”


“아! 아버지!”


“됐다, 그만하자. 내가 너를 보자고 한 이유는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다. 대관절 신문이나 방송은 왜 보도를 그따위로 하는 거냐?”


“····”


“내가 지난 주말에도 여길 왔었다. 그때 여기 모인 태극기 인파가 광화문광장과 시청 앞 광장을 다 메우고도 자리가 모자라서 남대문 일대까지 꽉 찼었어, 저쪽 종로 길에도 종각까지 사람이 꽉꽉 들어차서 백만이 더 된다고들 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십만은 넘을 게 확실해. 그런데, 신문에 나온 사진 봤냐? 전체를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고, 모두 사람들 코앞에다 카메라를 갖다 대고 찍어서 그저 늙은이 수십 명이 옹기종기 모여 태극기를 흔드는 모양새더구나. 방송은 아예 보도조차 없고. 그런데 저녁 뉴스를 보니까, 촛불은 여기 광화문광장의 절반도 못다 채운 걸 멀리서 찍어서, 더구나 밤에 촛불까지 들었으니, 규모가 어마어마한 것처럼 보이더구나. 신문이고 방송이고 똑같았어. 이건 누가 봐도 의도적인 게 빤히 눈에 보여.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뭘 보여주고 뭘 감췄는지 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왜 이러는 거냐? 언론이라면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맞는 거 아니냐. 언론이 이래도 되는 거냐? 너희 신문사도 똑같았어. 기자가 누구냐, 혹시 너냐?”


“전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러냐··· 그나마 다행이구나.”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신문과 방송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해악적이고 비뚤어진 사회 일각의 현상을 언론이 굳이 보도할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이죠. 언론의 양심이자, 어쩌면 애국심일 수도 있는 겁니다. 언론도 결국은 사람이니까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 이젠 그만 하세요. 아버지가 이렇게 하시는 건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겁니다. 전 이제 할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합니다. 다음부터는 제발 여기 오지 마세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부탁입니다.”

창수는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바로 등을 돌려 천막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는 아들의 등을 향해, 반쯤 울먹이며 말을 더듬었다.

“아니, 저놈이··· 저, 저··· 죄는 너희들이 짓는 거야, 이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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