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유령

(41회) 제5장 관악산 유령(幽靈) - 관악산 유령(幽靈)

by 해암

관악산 유령(幽靈)







사당동으로 거처를 옮긴 뒤, 제자들과의 수련 시간이 뭉툭 잘라져 나간 동지의 하루는 매우 단조로웠다. 말을 나눌 사람은 희경과 재희 두 사람뿐이었다. 가끔 제자들이 안부를 물어왔지만, 그마저도 되도록 삼가라고 일러두었다. 바깥세상과 이어지는 통로 또한 희경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희경의 전화기를 빌려 아들과 짧은 안부를 나누거나, 그녀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을 뿐이었다.

국가로부터 어떤 의무도, 책임도 요구 받지 않았다. 동시에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유령 같은 존재였다.


동지의 하루는 아침저녁 수련 시간을 제외하면 온전히 재희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하루 두 차례 그녀의 몸에 기력을 불어넣었고, 그 외의 시간은 재희가 지루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나누거나, 휠체어에 태워 정원을 산책하거나, 성인용 보행기로 재활 훈련하는 그녀를 곁에서 보살피는 일이 전부였다.

오랜 세월 의식을 잃고 누워 지내는 동안 그녀의 몸에는 골격을 지탱 해줄 근육이 남아있지 않았다. 의식을 되찾은 뒤로 조금씩 관절을 굽혔다 펴는 운동을 시작했지만, 아직은 다리 힘만으로는 체중을 감당하기 어려워 성인용 보행기에 양 겨드랑이를 걸치고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오빠, 나… 걸을 수 있을까?”

“당연하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녀가 물을 때마다, 동지의 대답은 언제나 단호했다.


동지는 언제부턴가 자주 야밤에 관악산을 올랐다. 삽시간에 관악산 정상까지 뛰어올라, 불빛에 묻힌 서울을 내려다보노라면 속이 조금은 뚫리는 듯했다.

해가 떨어지면 산속은 완벽한 어둠 속에 묻히고 만다. 동지는 밤의 관악산에서 사람을 만날 일은 없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별난 사람이 존재했다. 가끔 이마에 플래시를 붙이고, 야밤에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관악산 인근에 사는 산 마니아 중에서 주말에 산을 다닐 형편이 못 되거나, 아니면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주중에 한 번쯤은 더 산을 타야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산에서 인기척을 들으면 동지는 상대가 놀라지 않게 순식간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작은 기척마저 다 숨기지는 못했던지 그가 밤에 산을 다니고부터 관악산에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런 소문이 힘을 얻는 데는 늦은 밤의 산속에서 사람의 존재가 비현실적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보였다가 사라지는 그의 움직임이 사람의 그것과는 크게 다른 때문이기도 했다.


그해 봄을 맞기 전에 길 교수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지선에게서 들었다. 광화문 앞에서 단식 중이던 교수를 마지막으로 본 지 삼 년 만의 일이었다.

동지는 일묵서예에서 길 교수를 처음 만난 이후, 그의 깊은 인품과 넓은 식견에 이끌려 마음 깊이 그를 흠모하였고, 두 사람은 나이를 잊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는 죽기 전에 나의 죽음을 전해 들었겠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가슴 한복판이 저릿한 통증으로 조여왔다.

동지는 이따금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의 생각이 흘러 들어가는 미로의 끝에는 대개 재희와 길 교수가 서 있었다.

‘교수님을 만난 시기의 대부분은 재희가 사고를 당한 이후였기에, 나는 그분 앞에서 밝은 얼굴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의 말에 온전히 귀 기울이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그를 떠올리면, 그가 했던 말들은 모두 또렷이 되살아난다. 그는 늘 우리 사회가 떠안고 있는 문제의 뿌리에는 역사 왜곡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교수와 재희가 주목하는 역사의 범주는 근현대사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을 맞기까지의 시기는 공산주의 사상이 세상을 휩쓸던 때였고, 나라 잃은 국민의 지식인층에는 자연스레 공산주의에 물들기 쉬운 토양이 형성되었다.

교수님은, 우리의 경우 근현대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를 넘어, 자유민주주의냐 공산 사회주의냐를 결정하는 체제 선택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보았다. 그런 연유로 그는 근현대사의 해석을 단순한 학문적 작업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과제로 인식하셨다.

그는 내게 ‘교적’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과거 젊은 시절, 교직에 몸담았을 당시 어떤 계기로 그 교적에 가담하였거나, 적어도 가까이서 지켜보았음이 분명하다.

창수는 교적을 알 것이다. 그는 나를 속여 재희와 나 사이를 이간하였고, 박일수를 보호하기 위해 그가 죽었다고 내게 거짓말을 했다.

돌이켜보면 창수는 교적에 뿌리를 둔 변종 조직이거나 동류의 어딘가에 속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살인 청부업자와 함께 나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할 리가 없지 않은가. 고등학교 때, 그는 늘 전교 상위권에 드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아마도 대학에서 좌파 이념에 물들었으리라.


어머니가 나를 낳아주신 친 어머니가 아니란 걸 어렴풋이 짐작한 건 중학교 삼 학년 때였다. 하지만 나는 그 일로 상처받지 않았으며 굳이 더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친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를 짐작하게 된 시기는 십 년쯤 전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 역시 이제 와서 밝히고 싶지는 않다. 그분 또한 사실이 밝혀지기를 바라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나를 길러주신 어머니가 혼란스러워지는 걸 원치 않는다.

내가 나의 출생에 대해 무관심해 보일 만큼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은 좀 더 크고 근원적인 데 있다. 나는 어떤 운명적인 힘에 이끌려 스승님을 만나기 위해 음성 농장으로 오게 되었으며, 스승님의 명(命)을 받아 무극권을 널리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내게 지워진 숙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린 나는 그렇게 믿었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재희를 만났다. 그녀는 나의 삶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한 유일한 인간관계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는 결국은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재희와 나의 관계는 요즘 말하는 ‘썸’이라든지 ‘고백’이라든지 그런 과정이 생략되었다. 생략되었다기보다는 애초에 의식할 여지도 없이 자연스러운 일로서 마치 삼투압처럼 스며든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이 부차적으로 되어버리는 사랑의 열병도 앓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그냥 당연한 존재였다.


내 삶의 본류는 늘 사명(師命)에 있었다. 동해라는 뛰어난 자질을 갖춘 제자를 만나, 그 아이에게 정성을 쏟았다. 그랬었는데, 막상 재희가 불행한 사고를 당하여 더 이상 그녀의 따뜻한 미소를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몰랐던 새로운 진실이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 진실을 나는 등에 찬물을 끼얹듯이 깨달았고, 오랜 세월 그녀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녀는 돌아왔다.


이제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명(師命)을 이어가는 역할에서 한발 물러나고 말았지만, 다행히도 제자들이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내고 있다. 물론 아직 그들에게는 내가 필요하고, 내가 언덕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어떤 힘이 강하게 나를 이끌고 있다. 거역할 수 없는 내 존재의 의미 같은 것이다. 거악, 인간 정신의 진화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투성이 이념, 그 뒤틀린 정신 현상의 산물에 대한 나의 역할을 나는 명징하게 감지한다.

그 이유는, 그것의 존재가 인간의 삶을 피폐의 늪으로 끌고 가는 악이기 때문이고, 무극의 선의를 실현하는 데 역행하기 때문이며, 그 악에 맞서 이겨 내는 것만이 사조님의 예언을 바르게 구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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